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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단풍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1.11.26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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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벌레 울음소리 산기슭 풀어낸다 
제 갈 길 가다 말고 주춤대던 갈바람이 
사는 건 혼돈이라고 어둠을 부추긴다 

골짝으로 흘러가는 계곡물 지즐대고 
온 산에 달빛 들어 색이 색을 덧입힌다
할 말을 삼켜가면서 나도 한창 익어갔다 

더 이상 참지 못해 온몸으로 토해내는 
내 안의 속울음이 어찌 이리 붉었으랴, 
이제는 눈을 감아도 환하게 탈 수밖에
                
                   「단풍단풍」 전문

 

작년 올해 단풍이 무척 아름다웠다. 코로나로 세계가 몸살을 앓는 동안 자연이나마 아름다울 수 있어 고맙기 그지없다. ‘코로나19’ 덕분에 공기가 맑아져 맑은 햇빛을 많이 쐰 탓일까. 


우리 동네에는 은행잎 가로수가 유난히 많은데, 아침마다 노랗게 은행잎이 지천으로 깔려 있다. 바람을 맞아 나무에서 은행잎이 흔들리는 모습은 마치 노랑나비가 하늘하늘 춤을 추는 듯한 환상에 젖는다. 예전에 다니던 학교 교정에도 은행잎이 아름다웠는데 올해도 예외는 아니겠지? 교정 뒤뜰에서 바람에 팔랑이던 노란 은행잎도, 햇빛에 반짝이는 단풍잎도, 땅에 떨어져 땅별처럼 빛나는 단풍잎도 너무나 고왔는데… 잠시 추억을 불러온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먼 산에 눈이 닿으면 붉은 단풍산이 참으로 예쁘게 다가온다. 가까이 산허리를 돌아갈 때면 예전에 썼던 다음 시조도 떠오른다. 


“이마 맞댄 하늘이 눈부시게 푸르른 날/ 산허리 돌아가다 문득 눈 준 차창 밖/    화들짝, 놀란 청산이 붉디붉게 다가왔다// 누군가의 가슴속에 단풍 든 적 있었을까/   저리도록 아름다움 심어준 적 있었을까/ 지나온 나직한 삶들 돌아돌아 뵈는 날//    명치끝을 아려오는 저 고운 황홀처럼/ 누군가의 가슴속을 물들일 수 있었다면// 
 아, 정녕 청산별곡 속 나의 생도 푸르리”


그렇게 누군가의 가슴을 물들일 수 있었다면, 나의 생은 헛되지는 않았으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빨갛게 물든 단풍을 보면 ‘더 이상 참지 못해 온몸으로 토해내’는, 어쩌면 그것은 ‘내 안의 속울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리도 붉은 울음을 속으로 울고 있다면 그래, ‘이제는 눈을 감아도 환하게 탈 수밖에’ 없겠다. 생이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연소하며 가는 것이니, 탈 수 있는 한 태우고 또 태우는 수밖에……. 


마지막 단풍철이다. 비라도 한 번 오면 단풍들은 낙엽이 되어 떨어질 것이고, 앙상한 나목의 모습이 보일 것이다. 겨울로 한 발짝 더 다가서고 있다. 김장도 해야 하고 겨우살이 준비를 해야 할 때다.

 

 

김민정 시조시인/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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