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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에 젖을 때 가장 향기로워지는 남루한 눈물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2.01.2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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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향을 향하는 나그네가 된 사람이 있다. 추운 골짜기를 지날 때마다 뜨거운 가슴을 파묻고 있는 그리운 사람이 있다.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비밀스러운 사람이 또 하나 있다. 얼음장을 깨고 눈길 위에 발자국으로 정을 온전히 쏟아놓는 사람아. 네가 가는 길마다 푸른 새싹이 돋고 눈물의 꽃을 만드는 사람아. 남루한 세월을 지나왔어도 이마에 가장 깨끗한 햇빛이 내린다. 


허름한 세월이 누더기가 되어도 밤하늘에서 별빛이 내리나니 그 사람이 나에겐 가장 소중하다. 남산 제비꽃이 오던 길로 다시 온다고 한다. 소녀의 이름으로 노래를 부른다. 


귀한 약재나 귀여운 꽃들은 추운 골짜기에서 자란다. 매서운 눈보라를 견뎌내야 아름다운 꽃이 된다고 한다. 


노루기와 얼레지 꽃이 북향을 향하는 산에서 자란다. 열악한 주위 환경이 이들에게 약이 되는 지도 모른다. 꽃이 된다는 것은 고통과 인내가 필요하다. 봄 산에서 제일 아름다운 꽃은 얼레지다. 


꽃과 잎의 크기에 비하면 뿌리는 아주 깊숙이 파묻고 있다. 추운 겨울을 견뎌내기 위해 땅의 기운을 깊숙한 곳에서 올린다. 얼레지 꽃잎을 오므린 모양은 새의 부리 같기도 하고 햇빛을 보기 전에는 대부분 꽃잎을 오므리고 있다가도 한낮이 되면 날개를 활짝 펼친다. 
햇살이 포근하다 싶으면 꽃잎을 뒤로 완전히 뒤집어 벌림으로써 마치 하늘로 날아갈 듯하다. 얼레지는 넓은 잎 두 장이 땅속줄기에서 올라오는데 이 두 장이 있어야만 꽃이 핀다. 또한 얼레지 씨앗이 땅에 떨어져 싹을 틔우려면 대략 7년 정도가 있어야 된다고 한다.

지난 세월을 미련 없이 저버리면서 몇 년 휴식기를 갖는다. 세월이 수상하면 어느 날 갑자기 잎이 돋고 꽃을 피운다. 깊은 숲에서, 높은 산에서, 돌자갈이 많은 곳에서 가장 깨끗한 얼굴로 핀다. 그리 흔하지 않은 야생화라 만나면 반갑지 않을 수 없다. 


심심유곡에 누가 돌보지 않아도 화분에 심어놓은 것처럼 귀엽게 핀다. 등 뒤에서도 아름다운 사람이 되자. 지나가는 자리마다 향기를 품을 수 있는 꽃이 되자. 언덕 위에 따뜻한 바람이 불면 꽃이 되는 사람. 어느 쪽에서 보아도 아름다운 사람. 


남루한 삶이 되더라도 한 그루의 나무가 되자. 바라보던 마음의 자리가 한 그루의 야생화가 되자. 그 뿌리의 비밀을 알 수 없으나 봄비에 젖는 얼굴이 되자. 이른 봄을 기다리는 사람만이 그 봄의 향기를 맡는다. 


얼레지 꽃이 봄바람에 흔들이고 봄비에 젖는 일은 가장 향기롭다. 세월 앞에 점점 몸이 연약해지고 눈빛은 엷어지더라도 생의 처음 보는 야생화가 내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설레는 일인가. 


남루한 세월 속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아도 그 자체가 꽃이 된 얼레지.
 
                                                                                                                      신복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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