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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유의 영역에서 너의 눈빛은 나를 맑게해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22.04.2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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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안다는 것은 기껏 해봐야 내 옆에 동무 몇 사람이다. 늙어가면서 지혜를 얻는다고 해도 길가에 곧 날아 올라갈 민들레 씨앗보다 못하다. 내 몸속에 보랏빛 씨앗 하나를 아직도 이름을 못 짓고 있다. 
새로운 세계를 알기 위해 어학을 공부하지만 이 세상은 알 수 없게 변해가고 있다. 깨달음은 저 산 넘어 희미하게 밀려오는 산 능선을 바라보지만 눈을 지그시 감을 수밖에 없다. 


길 위에 풀숲 이슬은 반짝이는 날에 거의 오전 한나절이 가버린다. 아침에 쉼 없이 지져대는 새 소리도 세참을 먹고 있는지 조용하다. 한 무더기의 이름은 가졌지만 저마다의 이름이 없는 꽃. 
이름을 지어주기 위해 들길에서 가만히 앉는다. 솜털 같은 작은 꽃이여. 이 생애에 한 번이라도 마주 치는 일이 있었냐고 물어본다. 온 몸통으로 움켜잡은 씨앗 하나를 너에게 이름 하나 짓지 못했다. 


가지를 뻗어 결코 하늘로 가지 않으리. 내 이웃들과 함께 살면서 이 지상에서 이름을 불러보겠다. 금창초 야생화는 가지는 옆으로만 뻗고 꽃은 하늘을 향하고 있다. 꽃방석을 만들어 놓은 것처럼 꽃 전체의 함성소리가 하늘을 열리게 한다. 남부지방에 자라는 다년초로서 햇볕이 잘 드는 곳에 흔히 자란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개나물과 비슷하나 조개나물에 비해서 주로 남부지방에 살고 있다. 줄기는 옆으로 눕고 전체에 곱슬곱슬한 털이 많다. 한방에서는 관절 통증을 완화하는 데 약으로 쓴다. 조골 세포로 흡수되는 과정의 비율을 조절하여 관절 통증이나 뼈 질환 환자에게 증상을 호전시키는 효과가 있고 종양의 발달을 억제하는 항암제로서의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쑥갓꽃 옆에서 호미 소리가 난다. 들판의 보리꽃들은 고요한 봄 바람소리를 만들고 금창초 피어 있는 고갯길에서 애기붓꽃이 여리게 피어있다. 세월은 내 등 뒤에서 떠밀고 있다. 산천은 내 온몸을 둘러싸여 초록의 마음을 가지라고 한다. 


내 등뼈는 점점 굳어지지만 내 몸 안에 이름 없는 꽃씨를 안고 있으면 온 세상이 푸르다. 야생화 한 그루가 어느 날 들어와 있네. 가만히 앉아 자세히 보니 금창초다. 생각하니 자연스레 사라진 것이 많다. 
그동안 잊고 있었는데 언제 떠나고 없다. 젊은 날에 그것이 고통스러웠다. 약속을 지켜지지 않는 것에 많은 고뇌에 빠졌다. 이제는 있어야 할 것만 채운다. 부족한 것은 부족한 대로 그 자리에 여분이 있으면 별빛 같은 푸른 꽃을 넣는다. 


내 안에 야생화 한 그루는 운명을 갈라놓는다. 내 자유의 영역에선 하고 싶은 일은 내 몸에 꼭 필요한 존재다. 없는 것을 갈망하고 희망하는 시절은 부재한 것들에 대한 불평이 많았다. 지상에서 펼쳐지는 가장 편한 금창초 들꽃이 순간 스쳐 가는 눈빛도 마음과 정신을 맑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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