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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틈사이로 산바람이 지나갈 때 내가 흔들려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22.04.29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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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는 우선 그 이름부터 정답고 친근한 민중의 풀이다. 백성의 꽃, 민중의 꽃이라는 뜻이다. 
민들레는 풀밭이나 논둑이거나 길옆이거나 마당 귀퉁이거나 가리지 않고 심지어는 콘크리트 바닥 틈새에까지 뿌리를 내린다. 참으로 모질고 질긴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들꽃이다. 


도심 가운데서도 사람들의 발길에 밟히며 먼지와 오물을 뒤집어쓰면서도 노란 꽃을 방긋이 피워내는 민들레는 서럽고도 모질게 살아온 우리 민초들의 삶을 그대로 닮았다. 민들레는 겨울에 잎이 말라 죽어도 뿌리는 살아 있는 여러해살이풀로 그 뿌리가 땅속 아주 깊게 내려간다. 줄기는 땅바닥에 붙어 있을 정도로 작지만 뿌리는 땅속 2m가 넘게 내려가는 것도 있다. 생명력의 근원이 바로 이 뿌리에 있다. 


뿌리 깊은 식물은 좀처럼 죽일 수가 없다. 민들레 뿌리는 웬만큼 잘라내도 다시 살아난다. 따라서 잔디밭을 가꿀 때 가장 애먹이는 풀이 민들레다. 원체 뿌리를 깊숙이 내리고 있어서 완전히 뽑아낼 수도 없고 풀 깎는 기계로 밀어서 목을 잘라버려도 이튿날이면 더 많은 꽃이 피어난다. 


모가지가 잘리면 몸통에라도 붙어서 기어이 꽃을 피우고야 마는 지독한 생명력을 지닌 풀이다. 민들레는 봄을 알리는 꽃으로 첫손가락에 꼽히지만 반드시 봄에만 피는 것은 아니다. 서양민들레 같은 것은 3∼11월의 긴 기간 동안 계속해서 피고, 눈보라가 쌩쌩 몰아치는 한겨울에도 날씨만 따뜻하면 양지쪽에 조그맣게 꽃을 피운다. 민들레꽃은 낮에만 피고 밤에는 잠을 잔다.

 

아침 첫 햇살을 받으면서 꽃다발이 천천히 열리고 꽃잎이 벌어졌다가 해지고 어두워지면 꽃잎을 오므려 닫고 움츠린다. 그리고 날이 흐리거나 비라도 내리면 꽃이 피지 않는다. 연꽃, 튤립, 나팔꽃 등과 같이 밤이면 잎을 오므려 마주 포개어 잠을 자고 아침이 되면 활짝 편다. 이처럼 민들레가 해 뜨는 동안에만 꽃을 피우는 것은 민들레 꽃잎 뒤에 달린 물주머니 때문이다. 


햇볕이 없을 때에는 물주머니에 물이 가득 차있어 꽃잎을 밀어 올리므로 꽃잎이 닫히고, 햇볕이 쬐면 물주머니의 물이 증발하여 꽃잎을 받치는 힘이 약해져서 꽃잎이 활짝 펴지게 되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민들레는 3백여 종이 분포하지만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것은 흰민들레, 민들레, 산민들레, 좀민들레, 키다리민들레, 서양민들레 등이다. 그런데 보통 도시 근교나 길옆, 잔디밭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애석하게도 서양민들레다. 서양민들레는 유럽에서 들어온 것인데, 토종보다 적응력과 생명력이 더 강하여 토종을 쫓아내고 있다. 산에서 자생하는 민들레는 꽃잎이 수수하게 핀다. 꽃잎들 사이에 틈이 있다. 산바람이 지나갈 수 있도록 공간을 비워놓았다. 산에서 피는 꽃들은 이처럼 간결하면서 여유롭다. 삶의 방식이 부족한 듯이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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