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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실을 풀어다가 작은 인연의 끈을 이어주는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22.06.30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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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류꽃 뚝뚝 떨어지고 그 자리에 하얀 치자 꽃이 피었다. 봄이 한참 지났는데 사랑초는 대지의 향기를 풍긴다. 


한참 있다가 없어지면 생각나는 꽃들이 많다. 어린 날에 보이지 않다고 나이가 지긋할 때 보이는 꽃들이 많다. 어린 날에 이런 꽃들이 있었을까 하는 야생화도 많다. 봄에는 얼레지 꽃, 여름에는 자귀나무 꽃, 가을에는 쥐손이풀 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지난날에 나에게 관심이 많았던 친구가 지금 새롭게 생각난다. 그땐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정이 많았던 친구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 이런 친구는 지금 어디에서 살아도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꽃들이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고 은은하게 향기만 전해와도 무슨 꽃이 피었지 하며 주위를 두루 눈길을 준다. 몸 전체의 면역력이 약해지고 세포가 점점 줄어져감에 따라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할 때다. 


그것은 예전에 없었던 감각을 찾고 싶은 거다. 사람은 변하고 사랑도 변한다. 그러나 자연은 내 운명의 길동무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길동무는 길에서 핀 들꽃이다. 노을에 비긴 길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으면 생각은 한 없이 깊어지고 마음은 고요해진다. 
자귀나무 꽃이 저녁노을에 비긴 꽃나무 전체가 아름답다. 생각이 가득 차 있을수록 이 나무를 보고 있으면 하나의 상념으로 수렴한다. 자귀나무를 짜구대 나무, 귀신나무라고 부른다. 꽃잎이 연분홍 실을 풀어놓은 것처럼 멀리서 보나 가까이 보나 아름답다. 향기도 과일향기처럼 은은하다. 생나무도 불에 달 타서 땔감으로 사용됐으며 타는 연기로 피부 가려운 곳에 대면 효험이 있다고 한다. 


여름날에 잎이 밤이면 잎이 안으로 접힌 식물이 드물다. 그런데 자귀나무 잎은 한곳으로 모아진다. 이 잎을 말려 베개를 만들어 베면 부부간의 금실이 좋아진다고 한다. 자귀 꽃은 지난날에 지나온 그 길에서 피었다. 스쳐 지나온 인연을 다 알 수는 없지. 그러나 어렴풋이 기억나는 사람이 있지. 아마 이런 사람이 있기 때문에 지금 내가 있는지도 모르지. 


선한 관계 속에서 살기란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관계가 유지하고 산다는 것은 나무가 향기를 피우듯 향기 나는 사람이다. 
그 마음속에 잔잔한 미소를 짓게 하고 한 그루의 야생화가 되어 길가에서 걸음을 멈추게 한다. 


지금까지 나 혼자 걸어온 것 같지만 마주치는 선한 이연들이 길이 되었기 때문에 지금 자귀 꽃 옆에 서 있다. 아주 예쁜 분홍 실을 풀어다가 작은 인연의 끈을 이어주는 자귀 꽃. 비가 오면 꽃잎들끼리 얼굴을 맞대는 순간 푸른 대지는 더욱 푸르다. 살아있는 것들이 더욱 생각나게 하는 꽃. 이제 스스로 묵혀두었던 것들이 서서히 들쳐진 날에 분홍 실타래 꽃잎이 파란 하늘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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