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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으로 지독하게 살아남아 하늘 끝에서 꽃으로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22.07.14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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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에서도 저녁때가 되면 붉은 하늘이 내려온다. 낮 동안 아무리 햇빛이 채워진다 해도 쓸쓸하기만 하다. 
지나간 자리에 초롱초롱한 풀꽃들이 빛을 내고 있다. 아침이면 이슬이 불을 밝힌다. 붉게 달구었던 양철지붕은 소낙비 같은 열정이 있었으리. 지붕은 한참 퇴색되어 가고 먼 산을 바라보는 마을도 고요하기만 하다. 


서까래에 대못은 지나온 세월이 있었는지 잘 뽑히지도 않는다. 지난날에 보리밥 바구니가 걸려있었을 것이고 보리밥 쉰내가 나도 당장 먹을 것이 있다는 생각만으로 마음을 다독이었다. 
텃밭에 쑥갓 냄새와 하얀 쌀밥을 상상만으로도 지난날의 향수가 밀려온다. 살려는 의지가 더 강했던 달개비 꽃은 소가 뜯어 먹어도 소의 똥에서 달개비는 싹을 다시 돋게 한다. 


잎을 따서 물기가 있는 곳에 던져놓아도 살아남는다. 닭의장풀, 닭의밑씻개, 달개비라고 불린다. 꽃잎이 닭의 볏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풀밭, 습기가 있는 땅, 길가 등 어디에서나 잘 자라는 1년생 풀꽃이다. 


약효는 열을 내리고 이뇨 작용이 있고 당뇨병에도 쓰인다. 마당가에 상춧잎 넓적하게 펼쳐질 때 노란 쑥갓 꽃이 향기롭다. 가끔 초롱꽃도 보인다. 이슬을 머금고 핀 달개비 꽃은 혼자 외롭게 피어있을 때 별빛이 내려온다. 산길 따라, 물길 따라 산 능선이 이어지는 생명은 모진 생명력이다.

 

1년 초로 유한하지만 삶의 역사를 보면 무한한 세계이다. 이 세상의 아름다운 사람은 작은 풀씨를 머금고 강물처럼 굽이 돌아가는 것이다. 이 땅에 가난한 마음으로 풀꽃 하나 피우는 일은 마음과 마음이 이어진다. 온 몸으로 지독하게 살아남는다. 그러나 하늘 끝에서 꽃으로 남는다. 보리밥 바구니는 추녀 끝에서 생명의 끈을 놓지 않는다. 한 세월을 대못은 버티고 있었다. 그래서 뽑힐 때 통곡을 하는지도 모른다. 별똥이 사선을 그으며 이 지상으로 내려온다. 이 세상을 사랑할 것이 많아서 사선으로 떨어진다. 이 지상에서 초롱꽃이 어느 별로 가면 무슨 꽃으로 필까. 아주 작은 풀꽃 세상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깨끗한 공기로 맑은 물을 실어 날린다. 


이 물을 먹고 다시 공기주머니를 만든다. 물길을 쉼 없이 가기 위해서는 몸을 가볍게 만들어야 한다. 
풀꽃 같은 세상에서 나를 다시 찾기 위해 풀씨가 되어도 좋으리. 후드득 빗방울이 지붕을 때린다. 세월이 갈수록 소리가 더 커진다. 오래된 빈집들이 더 크게 우는 것은 주위가 조용하기 때문이겠지. 마당에 달개비 꽃이 흔들리는 데에는 아직 슬픔이 남아서 그렇겠지. 


지독한 슬픔의 눈으로 말을 하는 달개비 꽃은 어린 눈망울처럼 핀다. 지난 과거가 슬프다고 말할 때 마음 끝까지 움직이고 살아왔네. 아주 작은 풀꽃 세상에서 그 넓은 세상을 보아왔다고. 아주 깊은 심연을 느껴왔다고 초롱 달개비 꽃이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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