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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지르지 마라! 그 넓은 꽃잎을 접는다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22.07.28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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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길이 없다. 오늘 아무 목적 없이 길을 떠난 사람들과 함께 가는 바람은 나의 친구다. 매일 길을 떠난 사람들과 정직한 자연은 질서 속에 자유로움으로 오늘 새로운 옷을 입게 한다. 
날카로운 가시나무도 8월에 언덕에선 아주 부드러운 풀잎이다. 바람이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초록의 눈망울이 일렁인다. 여름에 꽃들은 강인하다. 그래서 빗물에 흠뻑 젖어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매일 길을 떠나 것도 또 다른 눈물을 흘리기 위해서다. 지성과 이성은 늘 한계에 부딪친다. 부딪쳐 깨어지고 다시 자연의 한 장 위에 글을 쓴다. 덧칠한 무수한 것들은 벗겨내기 위해 바람과 함께 노래를 부른다. 


함박꽃보다 더 크고 엄마 꽃보다 더 작은 꽃자리는 마음의 향수다. 아주 슬프지도 않고 너무 기쁘지도 않은 엄마의 자리에 아름다운 꽃이 핀다. 말이 없는 엄마는 부용의 꽃보다 더 크고 한없는 마음은 부드럽다. 
묻혀두었던 기억이 꽃이 되었고 아직 여물지 않은 열매는 다음 계절을 기다리게 한다. 멀리 있으나 가깝게 보이고 가깝게 있으나 그리 크지 않아 항상 내 옆에 두고 싶다. 화단에 한두 그루 심어 본 것도 세상의 욕심을 버리고 어느 것 하나라도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다. 


부용꽃은 옛 민화에서 많이 보인다. 옛 여인들은 뜰 안에 부용꽃을 보면 외로움을 달랬다고 한다. 나무에 비해 꽃이 엄청나게 크다. 균형의 미는 절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꽃잎 하나로 볼 것 같으면 주위와 잘 어울린다. 꽃잎이 얼마나 부드러운지 손으로 만지면 꽃잎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다. 바람이 세게 불어도 꽃잎이 흔들리지 않는다. 바람이 지날 때마다 흔들림 없는 꽃자리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바람이 지날 때 살며시 흘려보내는 유연함 때문일 것이다. 


연약하지도 않고 강하지 않는다. 부용화를 뜰 안에 포용하는 것도 조용한 미소를 띠는 데에 있다. 게으른 듯하나 서둘지 않는다. 남에게 관대하면서 자기에게는 철저하다. 한 줄로 선 접시꽃 보다는 자유롭기 위해서 자기 몸부터 자유롭다. 바람도 자유롭기 매한가지다. 그
러나 꽃잎 앞에선 한눈팔지 않는다. 하얀 부용화는 흰색을 띠고 있지만 그 속에 열렬한 눈망울이 숨을 쉬고 있다. 


부용화가 있는 그 자리마저 꽃물이 되었다. 소낙비에 온몸이 젖어 그 자체가 꽃이 되었다. 소리를 지르면 그 넓은 부용꽃도 접는다. 별안간 나타난 분홍 꽃 부용이 내 가슴을 덮고 남았다. 그는 여유로운 꽃이다. 
자유로운 꽃이다. 서서히 길을 떠나도 너무 늦지 않게 그를 만나리. 꼭 보고 싶은 곳만 보아도 그 남음은 한이 없다. 


부용화 만지지 마라. 보는 것만으로 너무 충분해 영원히 눈이 떼어지지 않는다. 내가 먼저 길을 떠나가도 너는 아직 떠나지 않고 있으나 장차 길을 떠날 땐 그 길은 끝이 없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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