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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흔들리면, 가을이 첫발걸음을 떼는 거야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22.08.25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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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높게 열리면 꽃의 자리가 더욱 커진다. 긴 모가지를 흔들며 가을을 노래한다. 비옥한 경작의 꽃이 아니라 꽃이 자랄 수 없는 땅에서 꽃이 된다. 


그 많던 개울물도 하나도 남김없이 내보내야만 꽃이 된다. 가을의 꽃들은 어설프게 붙어있는 살들을 빼내야 꽃이 된다. 그 넓은 들판에선 승자가 있으면 패자도 있다. 그것을 경계하는 선상이 가을의 꽃이다. 운명 위에 운명의 꽃들이 춤을 춘다. 


살아온 만큼만 나의 운명을 사랑하노라. 영원한 생명이 나를 춤추게 할 순 없다. 오늘 바람에 흔들리는 순간만이 나의 기쁨이다. 촘촘하게 엮어진 소리가 내 옆에서 음악이 된다. 곧 가을의 꽃들은 귀 기울린다. 낮에는 바람의 소리부터 밤에는 까박이는 별의 소리까지 듣는다. 


마음의 뜻을 간소하게 정리하는 데에는 잘 들어야 한다. 모든 것은 그냥 이루어지지 않는다. 본연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계절이 맞이한 꽃을 본다. 꽃은 이미 내 안에 들어와 있어 가을의 소리를 듣게 하는지 모르지. 한들한들 코스모스에서 가을의 소리를 듣자. 


사랑하는 일도 듣는 데에서 완성될 수 있듯이. 노란 목이 휘어질수록 사랑의 소리가 깊어진다. 가을의 첫 음은 코스모스다. 


시든 꽃잎도 첫 음처럼 되돌아간다. 피고 지는 일은 꽃이 아니면 볼 수 없기에 인생에서 단역이라도 내 역할을 다하자. 꽃 피우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냐. 꽃 지는 일도 그렇게 함부로 하는 일은 아니다. 매일 시작과 끝은 나로 인한 일이다. 꽃은 바로 내 앞에 있다. 꽃잎 떨어진 눈물도 내 안에 있다. 오늘 주된 이야기는 내 안에서부터 일어난다. 이것은 듣고 행하는 데에서 하루가 갈무리된다. 


외부로 드러나지 않을수록 잘 듣는 데에 익숙하다. 코스모스가 왜 그렇게 춤을 추는지는 가을의 첫 음을 내기 위해서다. 
고요한 풍경 하나 품고 산다. 지나쳐 버리면 마음에 남는 풍경. 고요한 바람 가운데에 멈춰있는 노란 코스모스를 보면 그곳에 머물고 싶다. 코스모스 꽃은 6월~10월경 가지와 원줄기 끝에 1개씩 핀다. 


꽃잎은 6~8개로 연한 홍색, 연분홍색, 백색이다. 주로 황색 꽃잎이 많다. 코스모스 열매는 수과로 털이 없으며 끝이 부리 모양이다. 원산지는 멕시코이며 꽃말은 질서다. 요즘 관광지에서 많이 기른다. 꽃이 피고 지는 일이 한 두 번 이더냐. 지나버리면 잊어버리면 그만이지. 


그래도 못 잊는 꽃이 있다면 그냥 듣고만 있다가 눈물 흘리는 꽃. 그 흔한 꽃이라도 내 곁에 없으면 꽃이 아니다. 
내 작은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용한 풍경 하나 그려주는 친구 같은 꽃. 넘어가는 햇살 잡아놓고 있는 하얀 담장에서 너를 그리워하며 가냘픈 운명 위에 꽃이 되나니 너는 아직 살아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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