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시작과 끝, 온몸을 태워 한 곳에 머물던 너에게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22.09.08 08:27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찾아온 것들이 나를 멈추게 한다. 가을 스산한 바람이 그렇다. 나날이 변해가는 풍경도 이때만큼은 우두커니 나를 바라보게 한다. 물리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나 변해만 간다. 멈춰있는 것들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가을 풍경만은 그대로 변한 것 없이 흘러만 가는 듯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봄이 가고 여름을 지나 가을이 왔다. 실상 보이는 것들은 얼마나 변하겠느냐 쉽지만 가을이란 붉은 색에서 한참 동안 머무른다. 살아온 만큼 붉은색이 더욱 진해졌을까. 
가지가 휘어져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그 진한 눈물을 나 혼자만이 훔쳐볼 수밖에, 아마 이런 가을의 느낌이 나를 나답게 만든 지도 모른다. 능금꽃, 하얀 꽃 어느새 빨갛게 익었다. 


작년 가을 그 자리에서 서 있으나 낯선 가을이 서성이게 한다. 가을이 운명처럼 왔다할지라도 그 운명을 사랑하기에 가을 꽃 앞에 섰다. 모든 흐름을 모를 일이야. 그런데 가을바람의 한 점은 알 것 같아. 누구도 보지 못한 곳에 머물고 있으니 그곳을 참마 그냥 지나갈까 봐.


 열렬히 사랑하다가 멍이 든 가슴들은 한 번쯤은 힐끗 쳐다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 끝내 울어버린 가을. 세월 속에 더디 오고 더디 가는 것 중에 또한 잠깐 지나간 것도 그렇게 사무치게 그립다. 가을은 시간의 예술이다.

 

사랑은 세월의 행위이다. 한데에 모아서 노래하리. 가을의 꽃들을 기억하리. 모두가 사랑의 역사이기 때문에 오히려 흔적이 없으면 가슴에만 살아가리. 상사화와 꽃무릇은 꽃과 잎이 나는 시기가 다르다. 가을에 꽃이 진 후 잎이 돋는다. 겨울과 봄을 넘기고 잎이 사그라진다. 맨땅에서 꽃을 기다렸다가 벼가 익을 무렵 꽃이 핀다. 이른 봄에 꽃대를 얼른 올려 꽃을 피우는 녀석들은 많은데 가을에 이렇게 피우는 식물은 드물다. 꽃과 잎이 만날 수 없어 상상화라고들 많이 부른다. 꽃이 진 후에 잎은 오히려 영양분을 안 쓰게 돼 건강하게 자란다. 그런데 인간의 마음은 그런 것이 아닌 듯 쉽다. 


좀 더 덜 먹고 못 살더라도 서로 정을 나누고 살아가라고. 가을을 타는 사람들은 정이 많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서로 연결해 보려는 데에는 정뿐이다. 온갖 세속의 계절을 넘어서 영글어가는 가을을 정열적으로 꽃피우는 행위는 정이다. 가을의 정은 세월을 뒷걸음치기도 하고 멈추기도 하면서 너무 빨리 가버린다.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한 일이 있더라도 장차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운 정이 있으리. 


지겹도록 사랑하다가 지쳐버리면 여울목에서 자잘하게 부서진 정을 나누리. 세월이 가면 어디에 있든지 상관없다. 그러나 정만큼은 정열적인 가을 꽃 옆에 두겠다. 시작과 끝의 모든 행위가 바로 너야. 너의 온 몸을 태워 어느 한 곳에 머물게 한 것도 너야. 세월이 점점 야위어 가면 마음 한 편에  부족한 정을 채우리.

저작권자 © 완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