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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여름가을겨울이 얼마나 기뻤으면 빨갛게 알알히 박혀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22.10.06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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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집 외로이 늙어가고 있다. 창호지는 누렇게 변했고 찢어진 창살 사이로 집 안이 보인다. 
그 길었던 세월은 간데없고 마당에 잡초만 무성하다. 이제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군불을 지피며 마음의 온도를 올릴 때다. 


얼굴에 빨갛게 비쳐온 그 사람은 이맘때이면 다시 찾아온다. 외딴집 혼자 세월을 보내는 것도 살아있기 때문에 그 쓸쓸함이 보인다. 가을의 무게는 가을볕의 충만함이다. 
따가운 햇살이 오히려 마음을 살찌우기 위함이다. 가을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한 계절은 마음의 보약이다. 좀 더 가깝게 온 가을을 눈으로 만질 수 있어서 아름답다. 생명은 땅 위에서 충만하고 아름다운 꿈들은 파란 하늘색에 나타난다. 


7월에 빨갛게 피어 그 에너지가 여기까지 왔다. 자연은 어디 하나 미천한 부분이 없다. 모두가 필요한 존재들이다. 살아있으므로 간절함이 있을 것이고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살아남아 하나의 열매가 된다. 
가을의 무게는 보는 사람의 느낌에 따라 다르다. 유심히 가을의 무게에 있을 때 그 깊이가 있다. 곧 있으면 빨간 알들이 터진다. 그때 이름 없는 주인이 와보면 얼른 알아볼 수 있도록 얼굴을 펼 것이다. 


눈을 질끈 감고 석류 알 먹다가 금방 생각나는 사람도 어디에서 순식간의 세월을 보내고 있겠지. 날씨가 살살해져가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영롱한 가을빛 속에서도 슬픔은 점점 커지고 있다. 기쁨과 슬픔의 간격이 열매와 열매다. 너무 빨리 가면은 간격은 멀어진다. 왼딴집처럼 천천히 가자. 이제 세월에 달라진 것들이 더 친숙하다. 


세월의 그늘이 있어야 생생함이 보인다. 생명이 영글어지는 것도 천천히 변하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담장 넘어 옛집도 주인의 세월만큼 천천히 변해가고 있다. 그리운 세월을 촘촘하게 박혀 놓았다. 뿌리에서 천천히 올려 가지마다 충만하게 채웠다. 느리게, 꾸준히 땅과 하늘이 만나는 순간은 그 간절함이 있다. 그래서 이루어진다. 


물질의 이동뿐만 아니라 마음의 이동도 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천만분의 일의 마음의 교차에 의해 영롱한 열매를 가졌다. 마음과 마음의 간격에서, 기쁨과 슬픔의 교차에서 아름다운 열매가 됐다. 반반씩 옆에 앉아 있자. 


서로 그늘이 되고 빛이 되자. 석류꽃 떨어진 곳에 이렇게 아름다운 마음들이 모였다. 석류 알 떡 벌어진 소리가 간격이다. 
그것이 피고 되고 살이 된다. 그것이 기쁨이고 슬픔이다. 얼마나 기쁨이 넘쳐났으면 알알이 박혀놓았을까. 얼마나 진실을 모아놓았으면 투명한 알들을 만들어놓았을까. 충만한 계절은 가장 깨끗한 것들로 채운다. 기도하는 진실한 마음이다. 가득가득 채워 넣었지만 겸허한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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