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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마음 위를 걸을 때, 내 마음도 내려 놓는다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22.10.20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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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봄 산에서 꾸임없이 나를 표현했다. 그 꽃길을 걸으면서 모든 생물의 움직임을 보았다. 가을은 보는 것이 아니라 눈을 감고 느끼는 것이다. 가을은 나를 두고 떠나는 것이다. 


낙엽 지는 소리도 없이 듣는 것이다. 지나온 봄 산에서 꿈꿔왔던 모든 것들을 낙엽 위에 내려놓는 것이다. 옷깃을 여미고 느린 강물 따라 굽이굽이 돌아가면서 저무는 해를 바라보는 것이다. 


낙엽이 한 잎 한 잎 쌓이면서 내 마음의 추억도 그렇게 쌓이고 있겠지. 가을은 작은 것에 집착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한 눈으로 보는 데 있다. 그렇기 위해서 눈을 감고 상상으로 들어가면 된다. 


슬그머니 실눈을 뜨고 가을 풍경을 본다. 여러 장의 수채화를 그릴 수 있다. 가을은 추상적 계절이다. 두 눈 크게 밝히고 보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눈으로 보고 가만히 앉아있으면 가을 풍경이 보인다. 지난 푸른 들판은 한 가지 색으로만 보였다. 
지금은 오색으로 물들였다. 낙엽은 가장 진실하다. 땅으로 돌아갈 땐 사람이든 생물이든 가장 진실해진다.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땐 가장 깨끗해지는 법이다. 뽀송뽀송한 날씨도 한몫한다. 빨래줄에 하얀 옷이 나부낀다. 조금만 움직이면 아름다운 가을 계절이다. 한 사람을 나보다 사랑해본 적이 있느냐고 생각하는 계절이 가을이다. 가을은 진실만이 통하는 계절이다. 


어떤 사물을 구체적으로 보지 않아도 된다. 그냥 눈을 감고 생각만 하여도 아름답다. 한가로운 계절에 나를 바라볼 수 있어서 좋다. 낙엽을 책갈피에 넣는 것도 나와 직접 대면하는 시간이다. 시집을 읽고 혼자 노래 부르는 것도 나와 직접 대면하는 시간이다. 낙엽이 차곡차곡 쌓인다. 그리 가깝게 있지 않아도 된다. 낙엽이 점점 떨어진다는 느낌만 가지고 있으면 된다. 마음이 차분한 상태에서만 아름다운 풍경이 보인다. 낙엽은 영원히 떠나는 것은 아니다. 


후대의 생명을 위해 한 알의 밀알이 되는 것이다. 한 나무에서 물을 퍼 올리고 꽃을 피우고 햇빛에 광합성을 하고 열매를 맺게 했다. 여기까지 오기까지 쉬지 않고 노력했다. 가을은 상상의 계절인데 상상력을 키우는 데 노력하는 사람은 향기가 있다. 물과 빛에서 가을을 영글었다. 


물질에서 마음과 정신의 영역으로 변환했다. 공기와 빛이 상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꿨다. 얼마나 오묘하고 아름다운 계절인가. 낙엽 위에 걸을 땐 마음이 편안하다. 특히 소나무 낙엽이 있는 산길은 마음이 포근하다. 고실고실한 산길에서 가만히 마음을 내려놓고 싶다. 가을 들판을 바라보면서 멍하니 앉아있어도 좋다. 피곤한 몸을 아름다운 풍경이 와서 어루만져준다. 계절 따라 떠나는 사람이 아니라 아름다운 사람이 추억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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