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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숙 씨 “그분들은 향기를 옮기는 우아한 나비 같아요”

지역사회 재능기부로 빛나는 '함께가요 빙그레 갈꽃섬 봉사단'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2.11.04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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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녀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묻는다.
"할머니, 눈은 어디에서 오는 거예요?" 
손녀의 말에 할머니는 추억에 잠긴 얼굴로 마을에 첫눈이 내리게 된 사연을 들려주기 시작한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은 영화, 눈 내리는 밤의 '가위손' 의 시작 장면.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가위손 에드워드는 얼음으로 된 여주인공인 킴을 만들며 날개를 달아주는데, 단지 사랑으로 킴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만은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 킴의 날개는 세상에 대해 자신의 마음을 여는 것. 이는 내가 풍경을 바라보지만 풍경이 나를 보는 것과 같은 것으로 내가 너를 어떻게 만나야 하는 지,  그건 사랑으로써, 그의 보이지 않는 순수한 날개가 결국 킴의 날개가 되는 것이다. 
함께 하늘을 날 수는 없었지만, 에드워드는 홀로 자신의 성안에서 킴을 생각하며, 겨울이면 어김없이 눈을 뿌린다. 눈을 맞고 있는 지금, 한 소녀가 이 눈이 누구에 의해 휘날리고 있는 지를 알고 있기에.


그 소녀가 내리는 눈을 맞으면서 행복해 하는 모습을 생각한다. 
소녀에게 있어 지금 내리는 눈은 기다림, 물론 기다림만은 아니다. 내리는 눈을 맞으며 한 없이 순수해지고 행복해지는 자신을 느끼는 것.
애드워드는 생각한다. 겨울을 애타게 기다리며, 그 기다림의 기도가 사랑이 되어 눈으로 내린다는 것을.


그리고 마냥 좋아할 소녀의 웃는 모습을.
세상에 행해지는 모든 예술과 문학, 종교와 사랑의 궁극의 것은 바로 저것.
시인이 연필로써 아름다운 시를 선사한다면, 화가는 붓을 통해 그림을 노래하고, 첫눈보다 더 순수한 사랑을 가졌지만 그 사랑을 만질 수 없는 남자, 에드워드는 가위손을 통해 사랑을 그려내고 있다. 


자신의 손에 쥔 게 연필이냐? 붓이냐? 가위냐만 다를 뿐, 타인을 향한 열린 어루만짐으로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 그 사랑의 온전함으로, 우리는 무엇도 소유할 순없지만 그 사랑으로 지금 이 순간이란 영원을 가질 수 있는 것.
그 영원 속에는 진정한 내가 있고 소유의 너머에 진정한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

 

 

지난 호, 본지 1면 미용봉사 사진을 소개됐던 김민숙 씨.
사연을 소개했던 민숙 씨는 올해 53살로 노화 이목리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타지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다 고향으로 내려와 현재 자신의 이름을 내건 김민숙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다.


처녀 때 고향으로 내려와 이곳에서 남편을 만났다고 했다. 남편은 광주가 고향으로 현재 노화파출소에 근무하는 윤진현 경위. 윤 경위는 민숙 씨의 아름다운 미모와 심상에 반해 민숙 씨를 아는 동생에게 소개해 달라고 하면서 둘은 그렇게 만나 사랑을 싹틔워 결혼하게 됐다고.


미용 재능 기부는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됐냐고 물었더니, 민숙 씨는 "사회가 발전할수록 대도시나 교통이 발달한 지역의 경우 요양원 또한 빨리 들어가,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보다 편한 노년을 보내는 것과 달리 노화도와 같은 섬지역의 경우, 요양원이 들어오지 못해 병원에도 못가고 집 안에 누워 계시는 분들 많았다"고.


또 "아무리 병들고 연로한 할머니들이지만, 자신의 초췌하거나 지저분한 모습을 타인에게 보이고 싶지 않는 건 같은 여자로서 십분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머리만 손봐주면 그래도 마음에 큰 위안을 얻게 될 것이란 생각에 미용재능기부를 하게 됐다"고.


"그런 말이 있잖아요! 지금의 젊음이 노력으로 얻은 상장이 아니듯, 지금의 늙음도 누군가의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인간이 슬픈 건, 초라해진 자신이 누군가에게 소외될 때 인간 존엄 또한 사라지는 것이기에 우리가 하는 재능기부는 먼저 살아 온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란 생각으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봉사는 내가 대접을 받고 싶은 대로, 내가 대접을 받고 싶은 그 방법대로, 내가 원하고 나의 취향과 나의 기분과 내가 익숙한 그 느낌대로,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그 사람이 받고 싶은 대로, 그 사람이 원하는 방법으로, 그 사람의 취향과 기분과 익숙한 그 느낌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장 기뻤을 때에 대해 민숙 씨는 "한 장애인이 장애인 시설에도 못가고 집밖에 나오지 못하면서 굴방 같은 방안에서 정말 원초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에 눈물이 날만큼 안타까웠는데, 처음 만날 때 아이는 그동안 받았던 설움 때문이었는지 경계심 또한 강해 우리를 제대로 보지도 않았다"고.


"하지만 만날 때마다 관심과 사랑으로 이름을 불러주며 함께하자, 어느 날 그 마음이 열렸는지 이름을 불렀을 때 아이의 얼굴이 보름달처럼 환하게 밝아지는데, 기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그리고 '함께가요 빙그레 갈꽃섬 봉사단'에 함께 해주고 계시는 분들, 박재웅 방범대장님은 쌀 기부도 해주면서 봉사활동에 참여해주고, 노화읍사무소 민원실에 근무하는 이현우 님, 현우 님은 자신의 몸도 불편한데도 사진 찍기 등에 재능기부해주네요. 완도신문에서 기회가 되면 심층 취재 부탁합니다"

 

 

 "미라리 주부 이혜영 님은 굉장히 열심히 사시면서 봉사에 참여해주고 있으며,  박성규 군의원님도 열렬한 응원, 김찬호 이장단장님, 드럼 치시는 노일영 님, 보길도에서 양식장을 운영하며 색스폰의 재능을 기부해주고 있는 권재철 님, 난타 단장을 맡고 있는 김혜옥 님, 박일로 님, 라인댄스 회장을 맡고 있는 문윤진 님, 명상학교의 신정순님과 공형철 과장님. 이밖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주고 있는데, 지난 추석 때 공연 반응이 엄청 좋았어요"  


"이 분들에게서는 행복의 향기가 뿜어져 나옵니다"
"화려한 복장과 비싼 향수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기가 아닌 그 자체로서 향기로운 사람들"
"그저 바라만 보아도 가슴이 따스해져 오는 사람들, 말이 없어도 어색하지 않고 단순하면서 소박한 사람들, 하지만 그 분들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엔 잔잔한 강물이 흐르고 이름 모를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고 노화보길 해변으로 밀려오는 하얀 그리움 같은 사람들이지요" 
"보아서 즐겁고, 상쾌한 향기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그 분들은 향기를 옮기는 나비 같아요"


 "노화 보길에서 산다는 것만으로도 참 많은 설움을 가지고 산다고 생각합니다"
"의료, 교육 문화 전반에 걸쳐 불평등한 삶을 살고 있지요. 많은 관심 가져 주시고, 행정적 지원도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세상은 더없이 각박해져 가고 있다. 
이는 우리 안의 온기, 사랑이 사라져 가고 있는 말과 같다. 사랑이 사라져 버린다면 우리들의 삶은 얼마나 딱딱하고 메마를 것인가. 


그 메마른 땅에 그들의 재능기부는 생명이 약동하는 소리를 전하며 자연이 선사하는 아름다운 음악을 선사하는 것과 같다.
그 아름다운 소리가 점점 우리 곁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요즘, 그들은 내가 너를 어떻게 만나야하는지, 영화 가위손의 애드워드가 그랬던 것처럼 하얀 눈송이를 우리에게 뿌려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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