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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늦가을의 풍경, 넌 나보다 그윽하다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22.11.04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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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은 내가 살아온 날보다 길다. 어느새 감잎 떨어져 서리가 내리듯 나이 육십이 되었는데도 늦가을은 내가 살아온 기억보다 길다. 초등학교 첫봄소풍을 기다리는 밤은 설레는 봄길이었다. 


그 봄 길은 산으로 산으로 이어졌고 꿈길 같은 아름다운 봄 산이었다. 수많은 봄여름이 지나갔고 육십의 늦가을 산에 이르렀다. 잎이 다 떨어진 산감이 유심히 빛난 늦가을은 내가 살아온 삶보다 깊다. 


나이 육십에 아무것도 이뤄놓은 것도 자랑할 것도 없다. 
다만 늦가을에 대해 깊고 완연한 품에서 만족할 뿐이다. 
쪼그리고 앉아 들꽃을 보는데 어서 서둘러 가자. 


이제 그만 가자. 
들판에는 아직 나락이 남아 있다. 밭에는 끝물을 달고 있는 고추가 가을 햇빛과 놀고 있다. 채소밭엔 무가 한창 자라고 있다. 가을 무 채지가 생각난다. 아직 나뭇잎을 달고 있는 가을은 그만 가자고 한다. 늦가을은 침묵한다. 인생을 말하려면 조용히 눈을 감고 앉아 있으라 한다. 


산 너머 산국화는 하얀 미소를 띠고 있다. 엄마의 얼굴처럼 손을 가만히 잡는다. 들판 끝에선 쑥부쟁이도 아이의 소리처럼 재잘댄다. 밭 언덕에선 노란 감국이 가을 오후를 물이고 있다. 


벚꽃이 가을 잎을 간신히 달고 있다. 이른 봄에 꽃들과 여름날에 버찌 열매들은 제 갈 길로 어느새 가버렸다. 찬비를 맞으며 가을의 쓸쓸함으로 시를 쓰고 있다. 벚나무는 기관지염과 빈혈, 설사를 약으로 쓰인다. 전립선 질환 효능도 있다. 벚나무 열매 버찌는 포도당과 과당, 사과산과 구연산 등이 들어 있어서 피로에 지친 몸에 활력을 주고 식욕을 돋우며 불면증이나 감기 증세에도 좋다고 한다. 서양에서 체리로 부르고 우리는 버찌라고 한다. 


국어 교과서에 어린아이는 버찌가 동전으로 알고 사탕을 몇 개 집어 들고 버찌를 가게 주인에게 건넨다. 동심을 알아챈 가게 주인은 사탕값으로 쳐 주었다는 기억이 난다. 
버찌를 새가 물어 옮기면 새로운 보금자리가 된다. 자연은 혼자 이루어지지 않는다. 동식물의 개체가 많을수록 자연은 건강하다. 또한 자연은 정신과 마음을 건강하게 한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아주 작은 풀씨를 본다. 오늘 살아있다는 증거가 간신히 이어지는 생명이다. 


멀리서 형형색색 단풍을 보고 가까이에선 지난 계절에서 이어지는 낙엽의 삶을 본다. 소담스럽게 익어가는 호박에서 느림의 미학을 느낀다. 멈춰있는 낙엽에서 죽음을 생각한다. 그래야 다시 태어난다. 아침저녁 기온 차이가 진한 꽃향기가 된다. 늦가을은 투명한 날씨다. 


그걸 통해 늦가을의 꽃이 보인다. 산국화는 시들어가고 있다. 
쑥부쟁이와 감국은 지금 한창 향기롭다. 매일 거울을 보지 않더라도 투명한 늦가을을 보니 이게 진짜 거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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