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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경란 팀장님, 그 친절함과 배려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뉴스後, 노화전복축제의 명물 최석규 씨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2.12.02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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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똥구리는 자신의 말똥을 굴리기 위해 최선할 뿐 용의 여의주를 탐하지 않듯, 여룡도 여의주를 가졌다하여 저 말똥구리를 비웃지 않는다. ​
겸손하기가 가이 없으면서도 긴 여운을 남기고 있는 저 아름다운 말은 조선후기 실학자, 책에 미친 바보, 이덕무가 했다.


이덕무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 
일단 그는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서얼이었고 가난했으며 몸이 약해 공부하기 어려웠지만 어릴 때부터 매일 책 읽을 양을 정해 1시간에 10번, 하루에 50번씩 읽었다. 


담벼락에 해시계를 그리고 공부할 시간이 되면 아이들과 놀다가도 들어와 반듯한 자세로 책을 읽었다. 
평생 읽은 책이 약 2만 권, 베껴 쓴 책만도 수백 권이 넘었다. 그러나 신분의 한계, 물질과 건강의 어려움은 그의 평생 숙제였다. 30대 후반에 규장각 검서관으로 임용될 때까지 직장이 없었고 서얼에 너그럽지 않은 시선은 다재다능한 그에게 큰 짐이었을터.


그런 점에서 위의 말은 서얼의 자격지심에서 나온 말일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 이 순간에 대한 자기 몰입.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진인사대천명하겠다는 의지의 발로로 보는 게 더 타당해 보인다. 


그렇기에 요즘으로 치면 비단 옷에 좋은 집 고급 승용차을 타고 다니면서 남들의 이목과 평판에 휩쓸리기 보다는 자기 스스로의 자존감과 긍지를 갖는 게 더 중요한 일임을 말하고 있다. 


결국 이덕무의 이 말은 양반가인 연암 박지원과 여러 학자들 사이에서도 인용되고 있는데, 이는 좋은 글 하나는 하나의 소리라는 것이고 그 소리는 마음을 움직이는데, 마음과 소리가 한 몸이 되어 천년동안 이어지는데 그 만큼 나는 나답게, 매순간 최선의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이야기해 준다.

 
이번에 소개할 인물 또한 그런 삶에 부합해 보였는데, 이번주도 5면에 소개할 인물을 찾느라 전전긍긍하던 차에 지난달 29일 화요일 아침, 모르는 번호의 전화.


받았더니, 말에 힘이없고 알아듣기 힘든 어투였지만 들리는 단어 중엔  "노화 전복 축제" "완도신문"


그 말에 혹시 석규 어르신 아니신가요?했더니, 맞단다. 그는 서울의 향우회장과 이야기 할 기회가 있어 신문에 나왔다고 자랑했더니, 향우회장도 보았다면서 그러면 신문 2장을 구해 액자에 넣어 하나는 노화읍사무소에 두고 또 하나는 석규 어르신 집에 놓으면 어떻냐는 말을 전해 들었다고.


그러면서 신문을 구하고 싶다고 했다.
그 말에 ‘완도신문이 무어라고!(그 보단 기자의 글이 무어라고)’는 생각과 함께, 이러면 가치를 부여할 수 있겠다는 것. 가치가 부여되는 일이 인간상의 인연이다.
신문사를 방문하면, 뒷이야기를 더 듣겠다 싶어 나올 수 없냐고 물었더니 배가 뜨지 않아 신문을 가지러 올 수 없단다. 인연이다 싶었는데, 아쉬웠다.
요즘 의회의 회기라 취재차 의회에 들렸더니 동향인 박재선 의원이 있길래, 석규 씨에 대해 물었다. 


박 의원은 "형님이라 부르기도 하고 아재라고 부르기도 한다. 서스럼없이 농담도 주고 받는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를 곧잘 놀리기도 하지만 그의 마음을 들여다 보면, 그에겐 누구나에게 없는 다정함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다정한 이야기들은 결코 뻔하지 않고, 하나하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고유하다. 각각의 다정들에서 얻은 작고 소중한 감정의 총합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빛의 온도를 만들어 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의 눈빛은 참 따뜻하다"고 했다. 

 

최석규 씨. 1960년생으로 올해 63세.
서넙도에 거주하는데, 스스럼없이 무직이라면서 국민기초생활수급자라고 했다.
가장 어려웠던 순간이 언제였냐고 묻자, 석규 씨는 "개인적으로는 어머님을 여의었을 때가 가장 슬프고도 힘들었다"고 했다. 


"항상 효도하기 위해서 노력했는데, 어머님은 늘 내 걱정 뿐이었다. 정정하신 어머님 모습을 생각하면 가슴이 정말 많이 아픈데, 가끔씩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삐쭉삐죽 흐른다"고. 


기뻤던 순간에 대해서 그는 코로나19가 지속된 기간에 다행히 완도 장보고수산물축제가 열려 주민들이 야외에서 즐길 수 있는 체험행사가 개최되어 주민들이 만족스러웠던 행사였다고. 또, 코로나19 속에서도 사회적거리두기로 인한 주민 간 단절이 심각한 때에 열린 긍정적인 효과의 축제라고 생각되는데, 개인적으로도 아주 즐겁게 즐긴 우리 지역의 축제라고 했다.


고마웠던 사람은 누구냐고 물었더니, 여러 명인데 모두 말해도 되냐고하길래, 좋다고 했더니, 가장 먼저 "신우철 군수님과 박옥남 여사님"부터 꺼낸다.
그리고 "이홍용 노화읍장님을 비롯한 강길동 민원팀장님은 읍사무소 방문 시 저는 물론 모든 주민들에게 친절한 모습으로 대해 주십니다"


"그 분들은 작지만 따뜻한 배려로 주민들에게 큰힘이 되는 것을 실천하고 있는데, 따듯한 자리와 차를 대접해 주시는 친절함에 아주 감사합니다" 
"김성수 신지면장님 역시 항상 따뜻한 말로 맞아주시고, 주민 곳곳을 들여다 보며 소외된 주민들에게 관심을 가져 주시는 점은 대단히 감사합니다" 


"완도군청 위생관리팀 지경란 팀장님은 노화보건지소 팀장 시절, 주민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도움을 참 많이 주셨으며, 제 개인적으로도 친절함과 배려에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민원에 대한 적극적인 응대로 그때를 기억하는 주민들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며 코로나19가 3년 간 지속되고, 사회적거리두기가 시작되면서 마을 주민과 함께하지 못했던 때가 참 안타까웠다고 했다. 다행히 야외 마스크가 해제되고 노화 전복축제가 개최되면서 노인 경로의 날 등 다양한 행사가 열려 주민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어 기쁜 한 해로 마무리 할 수 있었다고. 


마지막으로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주민들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모두 힘을 합쳐 잘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데 자신은 미약하지만 주민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어디서든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세상을 보면 하나의 꽃잎, 혹은 길 위의 한 마리 벌레가 도서관의 모든 책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또 누군가에게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처절한 현실이 되는데, 우리들의 눈 앞에 사라져가는 소중한 것 중 하나가 반딧불이가 있다. 


흔히 개똥벌레라고 불리기도 하는 반딧불이는 개똥을 먹어서 이름이 그렇게 지어진 게 아니다. 
반딧불이 특성상 습한 곳을 좋아해 낮 동안 따뜻한 개똥이나 소똥 밑에 숨어 있다가 밤에 빛을 뿜어내는 모습을 보고 선조들이 붙인 이름이다. 


반딧불이는 애벌레 시절에 깨끗한 냇가의 다슬기 등을 먹고 살면서 에너지를 모아놨다가 성충 때는 이슬만 먹고 사는데, 이들이 각성해 밤하늘을 날게 되면 그 불빛들은 숲 하나를 마치 거대한 우주로 만든다. 


그들의 불빛은 암흑의 우주를 밝히는 별빛이다. 
콕 박혀 미동조차 하지 않는 붙박이별, 일정한 속도로 예상 가능한 궤적을 남기며 이동하는 살별,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져버리는 별똥별들로 황홀경을 연출하는데, 그의 미소를 그들의 황홀경을 보는듯하다. 


반딧불이 하나를 살린다는 것은 흙과 물과 공기를 살리는 일이며 이는 곧 거기에 기대어 사는 수많은 생명, 궁극적으로 인간을 살리는 일이다. 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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