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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걸 버리고 씨주머니만 남기는 시간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22.12.15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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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걸어오는 길이 있다. 그러나 그 길은 누가 대신 해주지는 못한다. 요즘 풍경은 자기가 지나온 길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이젠 내 안에 있는 것들이 막힘이 없이 흘러가야 한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들이 많아서 새롭게 채워야 한다. 지난 세월에서 살았던 흔적들이 두런두런 말을 걸어온다. 두루뭉술하게 안으로 채우라고 한다. 좀 모자라도 되니 그런대로 살아가라고 한다. 
겨울나무는 밖에서 가져오지 말고 네 안에 묵혀두었던 아름다운 것들을 살려보라고 한다. 말로만 다 할 수 없는 법. 사랑도 그렇고 미움도 그렇다. 묵묵히 너의 안에 숨겨 놓아라. 외롭고 슬픈 마음이 있다면 더욱더 그렇다. 이런 길도 너의 길이다. 외롭고 슬픈 마음이 네가 이 지상에서 견딜만한 존재를 말한다. 


겨울나무 위에 계요등 열매도 자기 길을 가고 있다. 여름에 꽃은 아주 작다. 모든 게 하나의 마음에서 수많은 열매가 연다. 시간은 모든 이들에게 평등하게 흘러간다. 하지만 누구에게 열렬한 희망은 반드시 다르다. 이런 노고와 수고가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진지도 모른다. 


계요등은 잎사귀에서 닭똥 냄새가 난다. 닭 계를 붙어 이름을 지었는지도 모른다. 다른 나무를 타고 5미터 올라가 간다. 12월에 갈색으로 씨앗이 남아있다. 우리 야생화의 이름은 생활에서 자주 사용되는 말들로 지었다. 지나버린 시간의 흔적을 보면서 화려하게 꽃피는 시절만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밖에서 끌어와서 내면에서 싹을 틔울 수 있지만 안에서 시작하여 안에서 만드는 방법은 깊이 있는 깨달음이다. 수많은 시문학, 예술에서 스스로 자연을 선택하고 순간 속에서 영원을 발견했으랴. 겨울은 온전하게 보이는 풍경이다. 


어느 하나를 보면 모두 보이는 세계다. 삶은 대리인이 없다. 자기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자연은 사계절 변화 속에 스스로 삶을 선택했다. 그리고 온전한 열매가 되기 위해 꽃을 피웠다. 모든 세계가 그러듯 동글다고 생각한다. 꽃도 그렇게 열매도 그렇다. 


우리가 밝고 있는 지구도 둥글다. 지금 낮달도 둥글다. 스스로 판단하여 둥글게 돌아가는 세상이 동글게 된다면 더 좋은 지상이 되지 않을까. 지는 해도 좋다. 동그란 마음에서 마음으로 흐르니까 항상 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외롭고 쓸쓸한 마음이 그리움이 될 때가 많다. 


그래서 저렇게 많은 씨주머니를 달아 놓았다. 
늘 푸르고 푸른 잎들이 그리움의 주머니를 만들었으니 더 멀리 보는 세상으로 가겠다. 태곳적부터 삶과 죽음의 경계가 있었다. 


이 경이로운 삶에서 스스로 선택한 하나의 씨앗이 되겠다. 그동안 계절이 쓰다듬어 주었다. 이젠 내 안에서 다독일 때가 왔다. 수수하고 착한 본성이 지니도록 은은한 향기만 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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