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168억원짜리 너구리 라면과 맞바꾼 엠바고

도시재생 168억 확보, 금일읍 화목리에 국내 최대 해조류 산지 거점 조성

  • 김형진 기자 94332564@hanmail.net
  • 입력 2022.12.23 10:54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민선 8기 핵심사업인 해양치유 운영을 공단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군 직영으로 할 것인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 이를 군수에게서 직접 듣기 위해 지난달 22일 군수실을 방문했을 때. 

 

군수 비서실엔 2명의 여성 공무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농심에서 생산하는 너구리 라면이 담긴 박스를 안고 있었다. 눈길이 갔던 건, 박스보다도 그들의 들떠보이는 모습. 그 모습이 '무언가를 한껏 자랑하고픈' 것처럼 보였는데, 반짝이던 별빛이 가득한 밤하늘을 처음 보던 어린아이처럼, 어른이 되어서도 그때가 지워지지 않는 것처럼.


박스에 쓰인 글귀를 보자, '도시재생 뉴딜 사업' 선정축하와 함께 '(주) 농심에서 보냈어요'
뭡니까? 했더니, 우측 공무원의 말이 마치 명마의 말발굽 같은 경쾌함으로 "이번에 완도군이 도시재생 뉴딜 사업 선정 168억을 확보했는데, 금일읍 화목리에 국내 최대 해조류 산지 거점 조성합니다"고 했다.


그 청량한 말 뒤론 또 다시 수 천마리의 나비떼가 향기로움을 쫒으며 따라다니는 듯 했다. 
금일은 다시마의 고장이라 농심과 ESG 경영차원에서 연계되면 좋았을텐데라고 혼잣말을 했더니. 


"그랬어요! 농심이 ESG 경영으로 참여했습니다"
"이 라면은 농심에서 보내 온 것이구요"
젊어 보이는데, 말길을 알아 먹는다.
일하는 공무원이라는 뜻이다.


20세기까진 패권 중심의 시대로 자유를 중시해 나만 잘살고 잘먹으면 됐던 승자독식의 시대, 하지만 21세기는 그 자유가 평등이 돼 가는 시대로, 함께 가지 않으면 나 또한 살 수 없게 됐다. 일류들의 핵심 키워드도 이것인데, 글로벌 경제 속에서 온실가스 감축이란 기후변화에 참여하지 않거나 ESG 경영을 꽤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가 됐다. 농심의 ESG 참여는 그걸 읽고 실행하고 있는 것인데.
그럼, 기념으로 사진 한 장 찍자고 했더니, 기분이 좋아서인지 쉽게 응했다. 


완도군청 홍보팀이 이런 게 약하다. 결정적 순간에는 처음과 끝의 모든 게 담기기에 그 순간의 표정을 포착해 이를 군정 홍보에 써야 하는데, 아무래도 의전에 더 신경 써야 하니 어려운 측면이 있겠다. 
사진은 1면에 써도 무방해 보였다.


보도를 하겠다니, 여직원의 말 "정부 발표가 안나 보도하면 안된다"고 했다. 
단독보도나 특종은 기자에게는 생명인데.
나중, 정제돼 군에서 보도자료를 내게되면 그땐 가치를 상실케 된다. 가치가 더해지려면 어떤 형태로든 기자의 눈으로 확인케 한 후, 특종으로 보도케 해야...
그럼 엠바고할터이니, 한 박스를 줘라.
그랬더니, 정색하면서 "안돼요"  


그 뒤론 거리를 두려는지 눈도 안마주친다. 옆에 있던 안환옥 해양치유담당관이 무슨 말이라도 해줄 줄 알았는데, 자기 일 아니라는 듯 먼 산만 바라보고.
정적과 함께 드는 생각은 '그럼, 승부인가'

 

잠시 후, 군수실 문이 열리자 그들을 따라 들어가 사진 한 장을 찍겠다면서 찍은 사진이 윗쪽의 우측 사진. 


사진에 찍힌 군수의 표정은 그 큰 눈이 안보일만큼 신나 보였고 감정 상태가 어떠한지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사실, 군수의 입장에선 완도는 전체가 섬 지역으로 이뤄져 있고 수도권에서 거리가 가장 멀어 교통 의료 물 문화 등 전반적으로 불리한 상황, 그런 상황이라면 지역 소멸은 더욱 가속화될 수밖에 없어 어떡해서든 외부 자본을 지역으로 끌어오는데 방점을 찍으려 한다.


한 두번의 유행하는 정책으론 어림도 없다. 일단 가져와야 한다. 군수가 자본을 가져오면, 이제 공무원들이 그  자본을 외부로 유출되지 않게 정책적으로 선순환시키는 과제에 몰두해야한다.
이게 안된다면 지역소멸은 빨라질 것이다. 


신우철 군수는 "다시마를 전국 대비 70%를 넘게 생산하는 금일읍에 해조류 6차 산업 거점을 조성하여 고부가가치의 해조류산업 발전을 도모하고자 해조류, 섬, 해양 관광 등을 도시재생 모델로 삼아 공모 사업을 준비했다"고 했다.


"특히 40년 넘게 금일 다시마를 구매하며 인연을 맺은 ㈜농심과 해조류 특화 상품 기술 컨설팅, 홍보 마케팅을 지원하는 업무 협약을 체결하는 등 실무 역량도 총동원하였다"고.


국토교통부에서 22개 자치단체 사업을 평가하여 완도군이 최종 선정되는 쾌거를 이뤘다고 했는데, 군수의 말이 그냥저냥한 보도자료로 나오면, 크게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들뜬 군수와 달리, 그렇게 흥겹지는 않았다.
그래도 군수에 대해 칭찬을 해줘야한다. 
저 너구리 라면 한 박스를 얻어가려면.
승부는 항상 취해 있을 때다. 그게 승부 호흡.  
"보도할랍니다"
그러자, 정색하는 신 군수. 


"안됩니다. 아직 정부 발표가 안나와서"
그 말에 "기자가 보고도 기사를 쓸 수 없다면, 자괴감이 큽니다. 직접적인 보상도 없고..." 
그 말에 저 라면을 가지고서 뭔가 계획이 있었을 것인데, 여성 공무원의 얼굴은 낮빛이 어둡다.


모든 순간이 다 아름다울 순 없다. 
순간 순간 아주 가끔씩 아름다울 뿐. 
하지만 그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숨죽이고 인내하며 기다린다. 모든 삶이 꽃길이고 모든 시간이 대낮처럼 밝을 순 없다. 하지만 우리의 가슴은 별빛을 볼 수 있기에 희미한 별빛이라도 그 별빛을 보면서 나의 별자리를 만들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존중이라는 것 또한 무작정 윗사람들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견과 아이디어를 가지고 선명하게 부딪치거나 격렬히 반대하거나 아니면 뜨겁게 지지하는 것. 그런 태도로 굳세고 당당하게 매 순간 씩씩하게 일하며 그것이 틀리지 않는다는 걸 믿고 실천하는 것. 그런 후 생각해 보는 것이란 내가 지금 가진 모든 것을 퍼붓고, 그를 완전하게 연소시켰는가?다. 


모든 건 그것이 문제다. 


그게 또, 168억원을 가져올 수 있었던 단초였을 것.
사진 속 여성공무원들은 지역개발과 도시정비팀 주정화(오른쪽) 주무관과 차정진 주무관(왼쪽)이다. 

 

그리고 너구리 라면은 옳았다. 완도의 다시마 때문에.    

저작권자 © 완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