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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소리(bullshit)'가 판치는 세상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3.01.01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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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의 발달과 스마트폰 보급의 확산으로 언론이 생산하는 각종 뉴스를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접하기 보다는 포털사이트를 통해 유통되는 뉴스를 실시간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아졌다. 내 경우를 봐도 종이 신문을 안 본지가 여러 해가 됐고, 대신 필요한 뉴스와 정보들은 그때마다 포털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뉴스서비스와 SNS를 통해 다양한 뉴스를 신속하게 접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SNS를 활용한 정보의 전달속도가 빨라지면서 편리하기는 하지만, 사실 여부가 정확히 확인되지 않은 가짜뉴스가 확산됨으로써 사회혼란을 초래하는 등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가짜뉴스는 대부분의 사실 속에 약간의 거짓을 섞어 진실을 왜곡하는 경우가 많아 가짜뉴스 여부를 쉽게 구별해내기가 매우 어렵다. 


가짜뉴스가 판을 치는 것은 언론사 입장에서 보면 보다 많은 조회 수를 유도하여 수익이 높아지기 때문이며, 가짜뉴스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확산되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개소리가 우리 사회에서 판을 치는 여러 원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개소리는 돈이 된다’는 사실이다. 인터넷의 발달과 소셜미디어의 활성화로 언론 환경이 급속히 바뀌면서 종이 신문의 영향력은 점점 줄어들고 있고, 이로 인해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제목으로 독자들의 클릭을 유도하는 ‘클릭 장사’를 통해 이윤을 창출해야 하는 언론매체 앞에 놓인 유혹은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가짜뉴스라는 미끼다. 


신문사들은 신문 판매 부수가 줄어드니 기자 수도 점점 줄이고 있어, 전례 없이 적은 예산으로 신문을 만들어야 하는 매우 열악한 환경에 직면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꼼꼼히 사실을 확인하고 검증하여 신뢰할 수 있는 기사를 작성하는 것보다는 개소리라는 미끼를 물더라도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다면 손쉬운 그쪽을 선택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는 사회의 병폐현상을 진단해서 주목을 받고있는 책이 있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이자 방송인으로 유명한 영국의 제임스 볼(James Ball)이 쓴 책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Post : Truth, How Bullshit Conquered the World) = 진실보다 강한 탈진실의 힘>에서 찾을 수 있다. 저자의 책 제목에 나오는 'bullshit'는 통상 '허튼소리'로 번역되지만, 번역자가 굳이 '개소리'로 번역한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개소리'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조리 없고 당치 않은 말을 비속하게 이르는 말'로, '허튼소리'·'헛소리'·'횡설수설'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비슷한 뉘앙스를 풍기는 단어인 'hot air(헛소리, 허풍)'는 '의미가 없거나 진실하지 않은 단어'를 뜻한다. '개소리'란 단어는 비속어로 여기고 있어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단어는 아니다. 


이 단어가 우리들에게 던져주는 의미는 무엇이고, '거짓말'과는 어떻게 다를까? 거짓말(lie)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내어 말을 하는 것' 또는 '사실·진실을 염두에 두고 전략적으로 꾸며낸 말'이다. 반면에 개소리(bullshit)는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조리 없고 당치 않은 말' 또는 '진실이나 거짓 어느 쪽으로도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허구의 담론'으로 구분된다. 


진실과는 거리가 먼 개소리가 주요 국가의 정책 결정과 집행, 지도자 선정 및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영역에 깊숙히 파고들어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으로 각종 뉴스나 의견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이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고 믿고있다. 하지만 저자는 대중이 믿고있는 사실 중 상당수가 진실이 아닌 개소리이고, 개소리가 얼마나 많은 판단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를 미국과 유럽의 구체적 사례를 들어 폭로한다. 


개소리는 우리들의 가장 취약한 부분, 즉 사람들이 ‘믿고 싶은 사실’을 교묘하게 파고들어 판단력을 흐려놓는다. 무의식적인 욕망을 겨냥해 그것이 명백한 개소리일지라도 사실로 믿고 싶게끔 만드는 것이다. 저자는 은밀하고도 다발적으로 행해지는 이런 음흉한 계략이 왜 우리 삶을 위협하고 있는지, 우리의 삶 속에 얼마나 깊고 넓게 퍼졌는지, 해결해 나갈 방법은 무엇인지를 살핀다. 


미국과 유럽 사회의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고, 정치·경제·심리 등 분야를 넘나드는 탁월한 분석은 몰입도를 높이며, 미디어와 언론 생태계에 대한 이해를 도와 세상을 조종하는 각종 이념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개소리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공포와 두려움이라는 약점을 교묘하게 파고드는 전략이라 할 수 있다. 개소리는 사람들이 분노할 만한 타이밍과 모두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어떤 이벤트가 다가올 때 등 적절한 시점에 등장하여 인간의 약점을 파고들어 경제적 이득이나 권력의 획득, 특정 이념의 확산 등 원하는 다양한 것을 얻는다. 개인이 크고 작은 피해를 입는 것은 물론 잘못된 정책으로 다수의 삶이 불편해지는 것도, 국민의 기대를 져버리는 수준 미달의 지도자가 뽑혀 한 나라가 휘청거리게 만드는 것도 모두 개소리의 영향력 때문이다. 


개소리를 확산시키는 매체는 다양하다. 우리가 일생생활에서 손쉽게 접하는 소셜미디어를 비롯하여, TV뉴스나 신문·잡지 등 레거시 미디어는 겉으로는 가짜뉴스를 비판하면서도 실상은 제대로된 검증도 하지않고 개소리에 휘둘리거나, 어떤 경우에는 그것을 적극 이용하기도 한다. 우리가 이런 유형의 기사를 쓰는 기자들을 ‘기레기’라는 부르면서 손가락질을 하게 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정치인·미디어·독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지침을 제시한다. 나의 편향된 신념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고, 정보를 섣불리 공유하기에 앞서 한 번 멈추고 진실인지를 살피며, 각종 팩트체크 채널에 주목해서 진실이 무엇인지를 판별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의도를 모두 이해하고 실천하는 일이 결코 쉽지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책의 여러 내용 중 “진실의 가장 큰 적은 거짓말이 아닌 개소리를 믿고 싶은 당신의 마음이다!”라는 문구가 가슴에 와 닿는다.

 

 

이승창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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