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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기다리는 삶은 꿈 속에서도 은하수로 흘러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23.01.20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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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도 별이 뜬다. 하늘에만 하늘 악보가 있는 게 아니다. 지상에서도 하늘 악보가 있다. 봄을 기다리는 삶은 꿈속에서도 은하수가 흘러간다. 지상에서 쓴 언어들은 추상적으로 쓰인다. 


그러나 자연과 우주는 똑같은 게 하나도 없다. 각자의 모습들은 순간이 지나가면 또다시 오지 않는다. 가장 정직한 모습이 오늘을 창조해 간다. 작년에 봄까치꽃 속에 빨간 광대나물꽃이 피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분명한 것은 전체 모습은 다르리라는 생각이 든다. 


매일 변해가는 모습들이 순간이 모인 것이다. 들길을 가다가 우연히 마주 친 야생화들도 운명처럼 살아왔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사람과 사물에서 보이지 않게 흐르고 있다. 가장 소중하고 아끼는 물건을 줄 수 있다는 것도 자기만의 즐거움이다. 


이른 봄에 피는 꽃들을 위해 지난 가을에 떨어진 나뭇잎이 덮고 있다. 순간순간이 이어져 생명이 되나니 여기에도 보이지 않는 사랑이 있었으리라. 자연과 우주는 시간에 따라 형상이 변한다. 
이것은 상당히 구체적이다. 소원 하나 이루어지기 위해선 머리카락 하나하나 세어가야 한다. 길을 가다가 풀꽃 같은 야생화를 보기 위해서 걸음을 멈추고 자세히 들어다 본다. 


하늘에서만 악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서의 풀꽃 속에 별이 빛난다. 은하수처럼 흘러가는 큰개불알 꽃은 모여서 핀다. 광대나물도 함께 핀다. 잔뿌리가 많은 이 야생화는 흙을 자잘하게 부순다. 햇빛이 가늘게 들면 꽃잎을 연다. 이른 봄에 피는 꽃들은 햇볕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꽃잎에서부터 에너지 발산을 막는다. 이 꽃이 지고 나면 수선화가 새 봄님처럼 나온다. 


노란 은 술잔에 그리운 임을 가득 채운다. 내버려 두어도 스스로 꽃이 된다. 올봄에는 울지 않겠다. 길가에 앉은 푸른 꽃들은 울지 않으려고 하늘을 본다고 하여도 나오는 눈물을 어찌 멈춰지겠는가. 눈물샘이 많은 봄까치꽃은 밤새 참았다가 이른 아침에 꽃잎을 연다. 광대나물은 사랑의 이정표를 세운다. 사랑과 미움을 이미 알아버린 것 이외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꽃을 가늘게 피우는구나. 


쪽빛 하늘 가운데서 서러운 듯 붉게 핀다. 마음에 강물을 두고 시냇가에 실버들이 자란다. 이곳에 내 눈물이 자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길을 가다가 쪼그려 앉아 각각의 이름을 불러본다. 


삶의 여정이 여기까지 당도했으니 안빈낙도라고 말할 수 있으나 또 다른 이정표를 향하여 떠난다. 몸은 지상에서 살아도 마음은 하늘에 있다. 하늘에서 꽃을 피우고 눈물주머니에 가득 채운다. 눈물샘이 없이 길가에 야생화가 보이지 않는다. 삶의 의미는 눈물이다. 눈물로 꽃을 피우듯 천상에서나, 지상에서나 은하수의 강물로 흘러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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