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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만큼은 나만의 것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3.01.20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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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을 경험하였습니다. 반년도 채 되지 않은 인연이었지만 언제나와 같이 어른인 척, 멋있는 사람인 척 하지 못하고 내 마음의 간도 쓸개도 다 내어주었습니다. 


어쩌면 어떠한 관계라고 정의하기 전에 상대방이 어떤 종류의 사람이며 어떻게 나에게 상처 입힐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고 싶은 마음에 급급해서, 새로운 등장인물에게 관심과 애정을 받는 것에 눈이 부셔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결국 상대방은 마음 한구석에 생채기를 선물하였습니다. 


어쩌면 계속 함께하면서 생겼을지도 모르는 생채기들을요. 그것은 나를 무력하게 만들었습니다. 
내 생각과 감정이 두려워 나의 작은 방에 혼자 있는 것조차 무섭게 만들었으니까요. 하루 온종일 다른 사람과 시간을 보내며 나의 감정을 자신으로부터 따돌리는 사람들을 한심하게 여겼던 저를 말입니다. 


혼자 느끼는 그 쌀쌀함이 겨울의 웃풍과 합쳐져 칼바람처럼 느껴지니 계속해서 귀를 막고 있을 수 밖에는 없었습니다. 연말을 핑계로 매일을 나가 웃고 떠들며 체력을 소모하고는 집에 돌아와 겨우 잠이 들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크리스마스 전날이 되었습니다.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기로 했던 친구는 빙판길에 넘어져 발목이 부러지는 사고로 수술을 해야 했고 대략 일주일만에 스스로와 시간을 보낼 계기가 생겨버린 것입니다. 
그것이 너무 두려워 어찌해야 할까 떨리던 저는 또 다시 귀를 막기 위해 책을 꺼내었습니다. 


그때는 무엇이 두려워 귀를 막았는지조차 모르고 있었죠. 그 책은 고등학교 때 지금보다도 한참 어리숙했던 저에게 책의 의미를 가르쳐주셨던 선생님께서 선물하셨던 것으로, 책 첫 장에는 ‘우리의 소중한 우정을 위하여...’라는 손글씨가 여전히 남아있었습니다. 


순간 예체능을 꿈꾸며 움직임을 좋아하고 지긋하기를 어려워하던 17살의 저에게 ‘화가 났을 때든 눈물이 났을 때든 그 감정에 머물러봐. 충분히 머물고 스스로가 그 감정을 충분히 느꼈다고 생각하면 그때 빠져나올 궁리를 할줄 알아야 해.’라고 하셨던 말씀. 


늘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감정에 머물러라-하고 이야기하시던 선생님의 말씀에 내가 지금 감정으로부터 도피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눈가리고 아웅을 하고 있었구나. 내가 나의 목소리를 피해 귀를 막고 있었구나. 


그 순간 뇌의 길 한 곳이 턱 막힌 것 같던 기분이 순식간에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은 크리스마스날 누구에게 급하게 만나자고 할까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나에겐 소중한 친구인 내가 있었으니까요. 다시 일어나는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오래 걸리는 것처럼 보여도, 나에게는 너무 빠르게 느껴져도 그 결정은 저의 것이니까요.


결국 좋아질 거라면 빨리, 단번에 좋아지는 것이 여러모로 낫지 않겠나, 시간을 죽여가며 할 일도 제대로 못해 감정 낭비로 오래 자책을 이어나가면 그것도 습관이 되어 고치기가 어렵지 않을까 자책도 하고 걱정하고는 했습니다. 


그 걱정 속에는 좋아지기를 행복해지기를 바람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시간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그 자리에서 털어내고 인정하고 수용하며 주어진 길을 힘차게 다시 걷기 시작할줄 안다면 누군가 쫓아오지도 않을 허상의 시간은 잊어도 되지 않을까요? 


나에게 주어진 길은 내가 살아있는 한 언제나 존재합니다. 지름길이든 험한 길이든 걸을 수 있는 길은 언제나 반드시 발 앞에 있습니다. 주저 앉을지 걸을지 뒷걸음질 칠지, 고민하느라 길이 보이지 않을 뿐이죠. 잘했든 못했든 지나면 어느덧 끝은 와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시간은 머릿속에 모래를 뿌려 기억을 흐리게 만듭니다. 그러니 나만의 시간을 따라 앞장서서 길을 찾아 걸으면 될 것입니다.

사진=완도군청 관광사진 공모작/별의 시간

 

 

김지현 님은 완도고 재학 중 본보 청소년기자로 활동했으며, 2021학년도 서울여대 국어국문과에 입학했다. 그녀의 별빛 같은 눈망울은 모두가 잠든 사이, 별들의 가장 깊은 시간 속으로 날아가 별빛이 감춰놓은 그 신비로운 반짝임을 누군가의 가슴에 뿌려 주려고 그렇게 반짝이는 것.
아름다운 국문학도가 되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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