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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도, 아무리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 김형진 기자 94332564@hanmail.net
  • 입력 2023.02.02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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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한 독성,
숨을 쉴 수가 없군요
이럴 줄 알았다면
방독면이라도 썼어야 했는데
사지가 마비될 것 같아요 
더 마시게 되면, 심장이
녹아내릴 것만 같구요
미친 이별이 닥쳐 온 걸까요?
아직은 두 번의 피를 쏟고
애간장이 뒤틀려야
껴안게 될 것인데요
누구도 본 적 없고 들은적 없이 
정분이 났다는 소문이예요
아, 당신은 버선발로
어떻게 뛰쳐나왔래
한겨울, 첫봄의 살내음이
이리도 진동한답니까!

 

 

저런 꽃이 피었더라면 이런 시적 표현이 있을 수 있었겠다. 
그런데 3번을 갔었는데도 안피었다(위 맨 우측사진). 도로변을 가다 우연히 만난 꽃도 반갑고 이쁘겠지만, 꽃이란 모름지기 찾아가 보는 게 더 맛이다.

 

 

빠르면 1월 중순경에도 봉우리를 터트렸을텐데, 2월 초인데도 감감무소식. 홀로 신흥삼절이라 칭했다. 해질녘에 듣는 범종 소리에 공양주가 지어낸 점심 공양, 그리고 홍매화. 타 지역의 경우, 매화 핀 소식이 들리는데 예전 같으면 피었을 매화가 완도는 아직이다. 


매화하면, 퇴계와 두향의 애틋하고 애절한 사랑이다. 

 

 

퇴계는 매화를 끔찍이도 사랑했다. 매화를 노래한 시만 100수가 넘는데, 천원권의 퇴계 옆에 피어난 꽃이 매화다.
매화를 사랑하게된 건, 단양군수 시절에 만났던 관기 두향 때문이었다.
48살의 퇴계와 18세의 두향. 


시와 서, 거문고에 능했고 특히 매화를 좋아해 퇴계의 곁에서 거문고를 타며 퇴계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게 한 여인.
그러나 9개월만에 또 다른 부임지로 가야하는 퇴계. 
두향으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변고. 짧은 인연 뒤에 찾아온 갑작스런 이별은 두향이에겐 견딜 수 없는 충격. 이별을 앞둔 마지막 날 밤, 마주 앉았다.

 

죽어 이별은 소리조차 나오지 않고
살아 이별은 슬프기가 가이 없네


두향도 말없이 붓을 들었다. 

 

이별이 하도 서러워 잔 들고 슬피우네
어느 덧, 술이 다 하고 님마저 가는구나
꽃 지고 새우는 봄날을 어이할까요

 

한없이 슬프지만 너무나 멋드러지고 아름다운 필담. 
둘은 70세의 나이로 퇴계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21년 동안 단 한 번 만나지 않았다. 
이별 선물은 두향이가 준 수석 2개와 매화 화분 하나. 나이가 들어 자신의 모습이 초췌해지자, 매화에게 그 모습을 보일 수 없다면서 매화 화분을 다른 방으로 옮기라고 했고, 세상을 떠날 때 마지막 한마디는 "저 매화에 물을 주어라"였다.


어디 만나야만이 사랑이겠는가! 만나지 못했기에 그 애틋함이 천년을 사는 것.


매화하면 “오동나무는 천년의 세월을 늙어가며 항상 거문고의 소리를 간직하고, 매화는 한평생을 춥게 살아가더라도 결코 그 향기를 팔아 안락함을 구하지 않는다”
세한지절에 피어나는 꽃. 눈부신 나신으로 혹한의 얼음을 뒤집어 쓰고도 한 밤을 지샐 만큼 그 자태가 더욱 고혹스러운 꽃. 벚꽃을 닮기는 했으나 벚꽃처럼 야단스럽지 않고, 배꽃과 비슷해도 배꽃처럼 청상스럽지가 않다.


군자의 그윽한 자태를 연상시키는 그야말로 격조 있는 꽃이 바로 매화인데, 그래서 최고의 미인과 군자에게 칭해지는 꽃으로 옛날에 장원급제하면 머리에 매화를 꽂았다. 청빈한 선비라면 결코 가난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올곧은 선비는 지조를 자신의 생명처럼 소중히 여겼다.

 

 

그래서 생각나는 이가 불세출의 신필, 김홍도다.
그를 두고 “그 생김생김이 빼어나게 맑으며 훤칠하니 키가 커서 과연 속세 사람이 아니다”라는 증언도 있고, “아름다운 풍채에 도량이 크고 넓어 작은 일에 구애되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신선 같았다”는 말도 들린다. 


미술뿐 아니라 음악도 즐겨 꽃 피고 달 밝은 저녁이면 거문고 한두 곡을 연주하며 홀로 즐겼고, 즉석에서 한시를 남길 정도로 문학적 소양도 갖고 있었다고.


단원의 그림에 대해 전하는 기록을 보면, 집의 사람이 말하길 “매일 밤 베갯머리에서 말을 모는 소리가 들리고, 또 당나귀의 방울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떤 때는 마부가 발로 차서 잠을 깨웠으나, 그 까닭을 알 수가 없었죠.” 
“하루는 막 잠들려 할 무렵에 어렴풋하게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는데, 그 소리가 병풍에서 나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김홍도가 그린 풍속화 병풍이었다. 


​단원은 때론 끼니를 걸러야 할 만큼 가난했지만 항상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매화나무를 팔려고 하는데 단원은 그 매화가 썩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돈이 없어 살 수가 없었다. 


이때 마침 어떤 사람이 그림을 청하고 그 사례로 3천 냥을 주자, 단원은 2천 냥으로는 매화를 사고 8백 냥으로는 술 여러 말을 사다가 친구들을 불러 매화를 감상하며 술을 마셨는데 그 술자리를 매화음(梅花飮)이라 했다. 


그리고 남은 2백 냥으로 쌀과 나무를 집에 들였으나 하루 지낼 것 밖에 안 되었다고 한다. 화선(畵仙)다운 고결한 인품을 말해주는 일화다.


한 장의 그림을 그리면 몇 천냥씩에 팔 수 있는데도 스스로 가난을 택한 자유로움.
초심 보다 더 숭고해진 마음이 이런 것으로 기다림이 멈춰선 실존의 순간, 훌륭하게 아름답다. 이는 천대받고 모욕 받을수록 즐거움을 아는 사람, 자신을 칭송하고 따르는 사람들은 오히려 자신의 길을 방해하는 도적으로 여긴다.


중상과 모략 등의 온갖 수단으로 괴롭히고 헐뜯고 욕하고 해치며 괄시하는 사람을 은인으로 여겨, 그 은혜에 머리칼을 잘라 짚신을 삼아 갚으려 해도 다 갚기 어려워 하는 군자 중의 군자.


그러한 자만이 언제 어디서든 고되고 천한 일을 찾아 스스로 행한다. 
그게 문사가 가는 길이고, 그리움에 다가가는 방식.


보장과 확중을 추구하지 않는 단정함으로, 보장과 확중을 떠난 단호함으로, 보장과 확중을 놓는 담대함으로, 절대적인 궁지에 더한 강인함으로, 이김에 집착하지 않으며 결정됨에 후회란 없다.
불편을 사랑하는 2023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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