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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원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3.02.09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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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이 까매지며 몸이 뒤로 기우뚱하며 기절하던 날이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당직으로 밤을 새고도 바빠 아침을 먹지 못한 채로 수술에 들어갔던 탓일까. 


컨디션 난조로 가빠오던 숨은 얼굴의 대부분을 가리는 마스크 때문에 더욱이 턱 막혔던 것 같다. 눈 떠보니 당직실 한켠에 포도당 수액을 꽂고는 누워있었다. 쌀쌀한 것 같지만 은근 다정해서 친하게 지내는 설아쌤이 상태가 괜찮은지 확인하러 왔다. 
“그러게 아침은 먹고 수술 들어가라니깐.”


“하하... 그러게요. 늘 안먹고도 괜찮으니깐 오늘도 괜찮을줄 알았나봐.”
“혁현쌤 아니였으면 일어나서 등 꽤나 아팠겠어?”
“혁현쌤이요?”
“응, 채원씨 쓰러지는 순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달려와서 잡아주던데?”


 혁현은 마취과로, 수술할 때 늘 세심하게 일을 하는 편이라 함께 수술방이 잡히는 날은 채원의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그 혁현쌤이 잡아주셨구나... 평소에 수술방 이외에는 마주칠 일이나 연결점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함께 일하기 편한 동료’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고마우니 밥이라도 사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수술이 끝나고 혁현이 보이길래 얼른 말을 걸었다.


“이번에도 기절할까봐 걱정했죠? 제가 그때 인사를 제대로 못한 것 같아요.”
괜히 기절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장난을 치듯이 말을 꺼냈다. 오 혁현씨 키가 꽤 크구나?
“아유, 아니에요. 그럼, 저, 맨입으로 고맙다 하지 말고 맛있는 거 사줘요.”


혁현씨 강아지 상이구나. 무의식적으로 빤-히 쳐다봤다. 
빤히 쳐다본게 괜히 미안해 서둘러 말을 꺼냈다.


“그럼 내일 아침 7시 반에 옆 건물에 있는 도넛 가게 괜찮아요?”
“네, 좋아요.”
그날 밤 채원은 거의 자지 못했다. 평소에 자주 말을 섞어보지도 않았던 혁현이 이상형과 가까운 탓도 있고, 어색하게 웃는 모습이 괜히 귀여웠던 것 같기도 하고. 연애를 오래 안했더니 외로워서 이러나. 나이 먹고 남자 때문에 잠을 못자다니. 
“여기 사람 없죠?”


괜히 어색해 아무말이나 던졌다. 
“도넛의 시대가 끝난 것 같아요. 저 건너편의 베이글집은 인기던데. 기름과 설탕의 시대가 끝나다니 아쉬워요.”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뱉고 있는거지. 그냥 입을 다물어야 하나.
8시 수술이 시작되기 전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혁현 특유의 부드러운 웃음 때문에 처음보다는 마음이 편했다. 정리를 하고 들어오는 길에 그에게 새로 들어오는 극장으로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다. 다음엔 혁현씨가 사라고. 그는 성큼 대답했다. 좋다고. 선을 넘은 제안인 것 같아서 신경 쓰였는데 아니였나보다.


“데이트예요.”


일부러 쐐기를 박았다. 그냥, 그의 눈에서 ‘데이트인가?’하고 묻는 것 같아서. 수술이 있어 병원으로 먼저 돌아왔다. 데이트할 땐 무슨 영화를 봐야하지? 로맨틱 코미디? 요즘 핫하다는 도마뱀 애니메이션? 옷을 갈아입으면서도 계속 생각이 났다.


해당 글은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중 ‘김혁현’ 파트의 헌정글입니다. 주인공이 없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 혹은 주인공이 50명쯤 되는 소설을 써야겠다는 마음으로 탄생했다는 일화를 가진 책 피프티 피플은 연관이 있는 듯 없는 듯한 주인공 50명의 이야기로 엮인 책입니다. 


그동안 글을 쓰며 시를 추천하였듯이 해당 책을 추천하고 싶어 헌정글을 써보았습니다. 
우리도 피프티 피플처럼 수많은 주인공들 속 한 명임을 기억하며 글을 마칩니다. 

 

 

김지현 님은 완도고 재학 중 본보 청소년기자로 활동했으며, 2021학년도 서울여대 국어국문과에 입학했다. 그녀의 별빛 같은 눈망울은 모두가 잠든 사이, 별들의 가장 깊은 시간 속으로 날아가 별빛이 감춰놓은 그 신비로운 반짝임을 누군가의 가슴에 뿌려 주려고 그렇게 반짝이는 것.
아름다운 국문학도가 되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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