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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빛 꽃잎 속에 일렁이는 가장 깨끗한 눈동자로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23.02.09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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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산 숲길에서 지금까지 지나온 삶을 잊어도 좋으리. 봄 산에 앉아 저 강물을 바라보다가 약간 슬픔에 잠겨도 좋으리. 
풀잎 뿌리 닿는 개울가에서 잠깐 머물다 떠나가도 좋으리. 이유 없이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봄 산의 일이진대 그것이 기쁘거나 슬프지 않네. 무덤가에 엉겅퀴 꽃도 수 천년 바위처럼 피었네. 


봄 산에 아주 여리게 피는 꽃도 약간의 봄비만 있으면 족하다. 서로 잊지 말자고 다짐하여도 봄 산은 통하지 않는다. 제 혼자만이 살다가 상처가 있다면 그것은 나의 원죄에서 일어나는 일이거니 슬퍼하거나 화내지 않는다. 봄 산에 나무와 꽃들은 누구에게서 기쁨과 슬픔을 찾지 않는다. 만난 사람도 없이, 헤어짐도 없이 그러나 약간의 추억만 있으면 된다. 


외롭지만 내 마음에서 보석이 된다. 아직 봄은 기다리는 중에도 내 마음에서 별이 된다. 쓸쓸한 나무 곁에 기댄 꽃망울도 가장 깨끗한 눈동자다. 나무와 나무, 꽃과 꽃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힘을 느꼈다. 


서로 밀고 땅기는 힘이 아름다운 공간을 만든다. 이것은 자기만의 질량을 가졌을 때 가능한 일이다. 자기중심의 가치를 가지는 일은 아무리 작은 꽃이라도 활짝 웃는다. 봄 산은 가치중립적이다. 


타인에서 즐거움을 찾지 않는다. 사랑하다가 지쳐있을 땐 내게로 돌아와 봄 언덕을 만드는 것이다. 바람과 구름이 만나는 날엔 언젠가 제 갈 길로 가겠지. 이것은 슬퍼하지 않고 물이 되는 일이다. 약간의 눈물만 있으면 봄 산은 겸허하게 움직인다. 백합과의 여러해살이 풀인 이 산자고는 낮은 지대 초원이나 양지쪽 언덕, 산지 숲 나뭇잎들이 피기 전에 주로 핀다. 이른 3월부터 난초 모양 긴 잎이 나며 꽃대를 길게 뻗어 우윳빛 꽃잎을 피우는 데 그 크기가 검지 마디 정도로 작아 앉아서 바라봐야 보인다. 


산에 꽃들은 그리 복잡하게 피지 않는다. 가장 깨끗하고 단순하게 핀다. 이것이 오히려 위로받는다. 봄 산은 누구를 기다리지 않는다. 스스로 찾아와서 봄 산이 된다. 스스로 봄이 되는 사람이 아름답다. 자기 몸 안에 온갖 봄이 되는 사람은 서두르지 않는다. 


그 안에 아름다운 봄꽃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남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데에는 그 안에 충만함이 있기 때문이다. 
봄 산이 우리를 품는다. 나무와 꽃, 꽃과 나무 사이에서 눈동자를 맑게 한다. 봄 산은 온몸의 전율을 느끼게 한다. 


어느 날 봄 산에서 누워있는 나는 지난 세월이 아름답게 한다. 가장 부드럽게 핀 산자고를 닮아가고 있다. 이젠 봄 산을 떠날 수 없는 건 그동안 세속의 세월 때문은 아니다. 이직은 봄 산을 기다리는 마음이 있단다. 봄 산 안에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마음의 중핵을 키우는 것이지. 그래야 내 마음을 지키는 힘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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