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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마을 최고의 장고잽이 김재임 해녀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3.02.16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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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꿍딱 꿍딱~~~″
소안면 미라마을 최고의 장고잽이라는 김재임 해녀를 완도문화원 해녀 교실에서 만났다.


″내가 열여섯살 때 였당가!" 
"어린 가시나가 그때 물질을 배웠는데 얼마나 추웠는지 몰라라! 그래도 그때는 전부다 그렇게 물질을 했지라!" 
"재밌읍디다"


"바다속에 들어가면 딴 세상 만난맹키로!" 
해산물이 워낙 많아서 재미가 있었다고. 

소안이 고향인 김씨는 어릴 때 가족과 함께 고향을 떠나 부산에서 살다가 다시 마을로 돌아와 16세에 마을 앞 해변에서 물질을 배웠다고 한다.
″처음 할 때는 제주도 해녀들이 입은 하얀 두건을 쓰고 홑 껍덕 적삼(소중이)을 입고 물질을 하였다" 


"보통 30분 정도 물질을 하면 추워서 밖에서 몸을 따뜻하게 해야 했다."
"제주도는 해안마다 불턱이 있어서 불을 피우고 휴식을 취하였는데 여기는 그렇지 못하여 추위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그때는 지금처럼 고무 옷(슈트)이 없었지만 나이가 꽃다운 나이로 몸이 건강하였고 마을에 친구들이 많아 재미있었다.″

 
물질을 시작하고 10년 정도가 지나(1960년대 말) 고무 옷(슈트)을 입었다고 한다. 
″언젠가 한 번은 제주도에서 원정 물질 온 해녀들이 전부다 검정색 고무옷을 입고 왔습디다" 

 

"이야기를 들어본께로 물에도 잘 뜨고 춥도 안하다고 그러드라고″ 
당시 고무 옷(슈트)은 해녀들에게 신천지이자 혁신적인 옷이었다고 한다. 뜨거운 여름에도 소중이 하나를 입고 바다 깊이 잠수해야 하는 해녀들은 항상 추위와의 싸움이었는데 고무 옷(슈트)을 입고부터는 추위를 걱정 할 필요가 없어 물질을 시작하면 보통 4시간 정도 쉬지 않고 물질이 가능해졌다고 한다.


″나도 제주도의 해녀에게 부탁해서 바로 고무 옷(슈트)을 두벌 주문했어" 
"그란디 이제나 오까, 저제나 오까 눈이 빠지게 기다려도 옷이 안와, 그래서 잊어 불고 있었는디 우체국 소포로 물건이 왔어 들뜬 마음으로 입어 볼라는데 옷 입기가 징하게 힘들어,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고무옷이 혼자 입기가 힘들거든″


나이가 20대 후반이었지만 고무 옷(슈트)을 입고부터는 물질 솜씨가 몰라보게 달라졌다고 한다. 전복도 많이 잡을 뿐 아니라 큰놈을 잡고 해삼이나 성게도 많이 잡아 물질을 할 때 마다 망사리을 가득 채웠다고 한다. 


″지금도 생각이 생생한디 고무 옷을 입고 처음 물질을 다녀와서는 깨끗이 빨아서 말리고 보자기에 싸서 장롱에 보관했당께.″


김씨가 젊었을 때는 미라마을에 해녀가 12명 있었는데 물질을 같이 다녔다고 한다. 그래도 해산물이 많아 물질을 갈 때 마다 망사리가 가득찼는데 지금은 같은 바다에서 세사람이 해도 망사리를 채우기가 어렵다고 한다. 바다가 오염도 됐지만 그만큼 자원이 고갈됐다고 한다.


″우리 아저씨하고 금슬이 좋았는데 부부싸움을 하는 이유가 술이었어. 젊었을 때 물질을 나가면 보통 소주를 대두병으로 2개씩 가지고 다녔는디, 물질이 끝나면 별이 뜰때까지 소주를 마시다 집으로 돌아오곤 했어" 그때는 그날 잡은 제일 큰 전복으로 안주를 했는데 그것이 물질과 일상생활에 대한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다고.


김씨는 전복이 크면 클수록 달큼한 맛이 돌면서 술이 취하지도 않고 날마다 마실 수 있었다고 한다. 여든이신데 물질을 언제까지 할 생각이냐는 질문에 우문현답이 돌아왔다.
″언제까지 하기는 언제까지 해? 내가 힘 있을 때까지 하제″


 
다도해해양문화연구원 유영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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