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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표적이 영혼에 와 닿았을 때 당기게 되는 것들

6년째 어려운 이웃을 위해 1천만원 기부, 고금전복종자협회 손형민 회장

  • 김형진 기자 94332564@hanmail.net
  • 입력 2023.02.16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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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중, 인물 사진만을 보고서 혹여나 그에게 원한을 가진 이라면 왜 완도신문이? 이런 인물을 실었지! 눈살부터 찌뿌리며 심지어는 구독을 취소하는 이도 있겠다.
가끔, 김정호 대표와 이런 말 저런 말을 나눌 때가 있는데, 어느 날은 어떤 이에 대해 말하길, 주위에선 돈과 관련해 피도 눈물도 없는 비정한 이라고 알려진 인물을 이야기하면서 "그런데 완도신문이 정말 어려워 인쇄비도 주지 못하며 전전긍긍할 때, 선뜻 천만원을 보내줬다"고 했다.


"이후, 돈 달라는 말 한마디도 없이, 이자 한 푼 요구하지 않았다"고 말을 하길래, 그때만 해도 '그렇군' 했었다. 한 번은 또, 김 대표가 갑자기 "진도 쪽에 경매 물건이 나왔는데, 이를 사겠다"는 말을 넌즈시 건넸다. 


그 말을 함께 듣고 있던 이가 "돈도 없으면서 무슨 건물을 사요! 또 알지도 못한 일까지 빚을 내 하려느냐"면서 도시락을 싸와 따라다니며 말릴마냥으로 손사레를 쳤다. 
그 말을 듣고서, 호랑이가 배고프다고 풀을 뜯을 일은 없을텐데, 한편으론 뭔가 있구나! 싶었다.


김 대표의 말인즉, 신문사 운영이 어려우니 원룸 경매 물건을 사서 그 임대료를 받아 신문사 운영에 보태고 싶다는 말이었다. 
호랑이가 풀을 뜯는 건, 자신의 굶주림을 해소하기 위해 사회적 인식이 불편한 일까지 서스럼없이 하는 것이지만, 공의를 지향하는 신문사를 존속시키기 위해 풀을 뜯는 굴종 정도는 감수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한편으론 경매에 문외한인 김 대표가 혼자서 그 일을 한다는 건 무모하겠으나, 그 이면에는 김 대표와 완도신문을 도우려는 누군가 있겠다 싶었다.
불투명한 모험에 김 대표가 도전할 정도라면, 그 사람을 무척이나 신뢰하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언젠가 김 대표에게 천만원을 보내줬다는 그 사람이었다. 그는 왜, 자신의 돈까지 투자해 김 대표에게 경매 임대를 권했을까? 그건, 한 번만 돕는다면 순환이 될 수 없어 다시 어려워지겠지만, 지속적인 재원 마련의 방편을 돕는다면 완도신문의 운영이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지 않았을까. 


가장 실전적인 판단, 이는 전쟁을 해본 이다. 
또 이해관계도 없는데, 완도신문을 돕고자하는 것.
그렇다면 이 사람은 누가 뭐래도 의(義)다. 
의를 가졌다. 의라는 건 절체절명의 순간, 자기를 버리고 본질을 선택하는 것과 같다. 


쉽게 이해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산 속 깊이 있으면 오히려 산 전체의 모습을 제대로 보기 어렵다. 인생의 의미는 인생보다 큰 역사의 거울에 비춰 보아야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이고, 역사적 사건의 의미는 전체의 역사 또는 역사보다 더 높은 종교나 깨달음의 초월적 위치에서 보아야 진면목을 알 수 있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끝도 가보지 않는 사람이, 누군가를 이해한다거나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알기란 어려운 일. 


한 때는 혁명과 변혁을 꿈꾸며 맹약했던 사람들이 이런 이유와 저런 이유로 하나둘 떠나고, 광야에 홀로 남아 마지막까지 이룰 수 없는 싸움을 한다는 것.
그 숭고한 변혁의 꿈에 동참해 준다는 것. 


그 잘난 추사 김정희가 세한도를 남기며 비로소 했던 말 '가장 추운 시절이 된 뒤에야 송백이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음을 안다'고.
그거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생각을 그리하고 있었는데, 최근 고금면 네이버밴드에 올라 온 소식 중, 6년째 남몰래 조용한 기부활동을 하고 있는 기부자가 있어 화제라는 글이 올라왔다.
주인공은 대영수산 손형민 대표(고금 상정출신, 고금중 19회 졸업, 위 사진). 


고수영 면장에게 보도자료를 요청했더니, 고 면장의 말은 서로 친구사이이긴 한데, 손형민 대표가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꺼려해 보도자료를 내지 못하고 그 마음이나마 전하기 위해 밴드에 올렸다고 했다. 


고 면장은 손형민 대표가 관내에 기부활동을 한 지는 벌써 6년째이지만 그 동안 기부한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왜냐면 손형민 대표는 본인의 이름을 누구에게 알리기 위한 홍보의 목적이 아니라 순수 고향을 사랑하고 관내 소외계층과 불우이웃을 돕고자 조용히 기부물품만 전달되길 원했기 때문이다고 했다. 


매년 천만원 상당 현물(쌀)로 기부를 해 왔지만, 올해는 쌀보다는 소외계층의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자 현금지원을 위해 현금으로 기부를 하게 됐다고 전했다. 
밴드에 올라 온 소식이면, 이미 세상에 공표된 것과 같으니, 그의 사진과 함께 보도자료를 내달라고 했지만, 손 대표의 사진은 오지 않았다. 


고수영 면장의 말 "간곡하게 설득하였지만 손 대표 본인이 극구 반대하고 더구나 현재 중국에 있어 찍을 수 가 없었죠"
대신 손 대표의 사진이 없으니 물아껴쓰기 현수막이 걸려 있는 고금면사무소 전경사진을 게재해 주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보내왔다.


그 가치와 의미를 담아 함께 보도했다.  
그걸로 인연이 끝인가 했더니, 보도 후 며칠이 지나 김정호 대표가 누군가의 전화를 받더니, 다짜고짜 오라는 말에 만나보니 손형민 대표였다.
얼굴을 내야겠다고 했더니, 극구사양. 김 대표가 거든다. "그냥 나를 믿고, 내 말 한번만 따라 달라" 그랬더니, 다소 경계를 푸는 손 대표. 


중국에 왜, 갔냐고 했더니 손형민 대표는 현재 고금전복종자협회 회장을 맡고 있단다.
협회 소속으로 100여 어가가 있는데, 품질 낮은 사료 때문에 어가들의 피해가 심각했다고. 


특히 사료의 경우엔 실험실에서 만든 것은 검증이 안돼 직접 눈으로 봐야 알 수 있기에 중국 위해시의 공장을 찾게 됐다고 했다.
협회장을 맡고 있기에 당연한 일이라면서 사료 문제만큼은 완벽하게 처리하겠노라고 했다.


중국 현지 사료 공급 공장을 직접 방문한 손 회장은 문제점을 파악한 결과 싼 원료를 사용한 것을 발견하고 앞으로는 좋은 재료에 좋은 원가로 공급할 수 있도록 했다고.
또, 기존 포당 54,000원 공급하던 가격을 50,000원으로 4천원 단가를 낮춤으로써 전체적으로 20억원의 예산절감 효과까지 거두었단다.


묻고 싶은 건 많았으나 더 이상은 손사래를 치길래, 인터뷰는 진행할 수 없었다. 사진 또한 몰카를 찍듯 은밀하게 찍은 한 장.
짧은 대화 속에서 전해오는 건, 어떤 일이든 개운하게 매조지하는 모습에서 풍모가 전해져 오는데, 자신의 끝을 가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

전쟁을 해봤다는 것이고 그 전쟁이란 내면의 적막에서 시작한다.


고요의 한 순간을 기다린다. 예감으로 낌새로 기척으로 두근거림으로 촉으로, 모든 가능성으로 끝없이 가이 없이 한정없게 무엇도 예정할 수 없는 곳까지, 예외거나 기타까지 이르러 미지한 것들의 마지막이 빛나는 한 점 그것을 낚아챈다.
가장 실전적(올바른 것)인 것이 오게 되는 그래서 그의 심장은 스나이퍼의 표적과 같다.


그 표적이 영혼에 와 닿았을 때 당기게 되는 것들...
그때야 물음은 풀리게 돼 있다.
모든 의문은 끝에 이르지 못해 생겨나는 불완전성.


그래서 끝을 가봐야한다는 것으로, 그건 또 다른 최초를 맞이하는 것으로써, 그 최초는 또 다시 확률과 우연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지만 이미 끝을 가본 용기와 재능, 탁월한 분석으로 발휘되는 범위로써 최초의 승패를 좌우할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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