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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되어 당신 죽으면 관이 될터

장한철을 사랑한 청산도 무녀 1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3.02.23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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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에서
영상으로 영상 5도 영상 13도 지상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 황지우 <겨울 - 나무로부터 봄 - 나무에로> 중에서

 

 

남도 지방에서는 태어난 아기 몫으로 나무를 심었다. 딸이면 밭두렁에 오동나무를, 아들이면 선산에 소나무를 심었다. 태어난 나의 몫으로 심은 나무라 하여 ‘내나무’라 불렸다. 딸이 시집갈 때면 오동나무를 잘라 장롱을 짰고, 아들이 늙으면 선산에 심은 소나무로 관(棺)을 짰다.


나무는 이렇게 오래전부터 인간과 더불어 생사를 나누었다. 나무는 우리보다 오랜 삶을 지녔기에 지나온 삶의 긴 호흡으로 침묵을 하며 모든 말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간다. 
우리가 나무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나무는 우리보다 더 지혜롭게 세월에 귀를 기울이고 무엇이 되기를 갈망하지 않으며 고난을 피하지도 않고 묵묵히 한 곳에서 자리하며 뿌리 내려 우리들의 고향처럼 기다려 주고 두팔 벌려 맞이하며 안아 주는 것만 같다. 


나무가 주는 느낌 또한 의미심장하다.
그로테스크하고 대담한 형태들에서 다양한 모습을 상상하게 만든다. 
땅이 갈라진 틈 사이로 삐져나온 뿌리들의 뒤엉킨 모습이나, 몸체의 혈관들이 하늘을 향해 뻗어있는 가지들의 모양을 보면 내가 알고 있는 얼굴들의 근엄한 모습을 보거나, 찡그린 얼굴, 냉소를 머금은 눈빛 또는 해맑게 웃는 어린아이를 보는 듯한 각양각색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오래된 내 기억속에 머무르며 특별한 느낌으로 남아 있는 한 그루의 나무는 그 모습이 여인의 아름다운 몸체처럼 보이는 나무였는데 마치 드러낼 수 없는 아픈 사연을 가슴속 깊이 품고 언덕위에서 강물이 흐르는 아래쪽을 슬픈 눈빛으로 하염없이 바라보며 서 있는 그런 모습이었다고 할까. 


마치 한 그루의 나무가 온 몸으로 무엇인가를 말해주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나는 당신을 오래동안 간절히 기다리고 있답니다. 당신이 떠난후에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그리워하는지를 그 때서야 알게 되었어요." 
"지금 난 당신이 너무나 그립고 그리워 내 심장이 다 타버려 죽을 것 같은 심정이랍니다." 


이 몸이 죽어서 가루가 된 내 영혼이 싹을 틔워 나무가 되어 당신이 다시 살아 돌아 올 수만 있다면 무엇을 망설일 수 있을까요" 
"당신을 위해 나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오직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이 영원히 변하지 않을 한 그루의 나무가 되어 우리의 사랑을 간직하며 꽃 피울 수만 있다면"
"그래서, 그리해 만약, 당신이 죽는다면 나는 당신의 관이 되어 영원히 함께 묻힐겁니다"


애닮은 사연을 들려주는 것만 같았다. 
그 나무를 바라보며 사랑하는 여인의 이별을 생각하게 된 것은 250년전 제주도에 사는 장한철이 과거 시험을 보러가다 풍랑을 만나 조난을 당했을 때 구사일생으로 청산도에 이르렀다. 


장한철이 운명처럼 만난 여인은 그가 의식을 잃고 있을 때 꿈속에 나타나 물을 건네 준 청산도 무녀 조씨의 딸. 
그 후에 그 둘은 불같은 사랑에 빠졌고 후에 장한철이 제주도로 떠나면서 평생 이별하게 됐다는 사연이 떠올려졌고 헤어진 연인을 기다리는 듯한 그리움을 담은 모습 때문이었나 보다. 


이 세상에 사랑만큼 간절한 것이 또 있을까. 사랑할 때의 마음은 또 어떤 것이에 그런 것일까. 아마도 굽은 길 산 너머로 저녁 노을이 붉은 장미꽃으로 피어 오르고, 밤별들이 나만의 주단이 되어 어깨위로 내리는 밤처럼 고요하게만 느껴질 것 같다. 
때론 태양이 마지막 인사를 할 무렵 풀밭에 누워 해 저문 밤 하늘에 낯설지 않은 별 하나를 바라보며  꿈을 안은 기억속 잠으로 빠져 들게 하는 느낌은 들지나 않을까?


어떤 날에는 나를 깨우는 바람이 허밍을 하여 조개껍질에 부딪쳐 청량하게 웃는 파도소리와 달빛의 그리움들로 대답하여 허기진 상념을 채우기도 할 것만 같다. 그렇게 두 눈속에 깊게 스며든 사랑의 잔상인 붉은 노을은 벽에 걸린 오랜 추억된 그림같은 해바라기가 되어 한 점 액자에 걸리며 오래도록 바라보게 될 것 같다.


하지만 온전히 주어진 사랑에서 아무것도 볼 수 없다면 오히려 찾으려 애쓰지 말아야하고, 특별히 선택받은 것에서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면 차라리 요구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사랑을 모르는 빈 가슴에는 마음한다는 것은 아무리 설명을 해도 알 수 없는 일이므로 신산하다고 하겠다.


김미협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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