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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집을 꿈꾸며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3.02.23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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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층 아파트의 3층에 산다. 거실에서 나무 몇 그루가 눈높이로 보이고, 베란다에 서서 땅을 내려다봐도 그리 무섭지 않다. 앞쪽으로 사람 왕래가 잦지 않아 창문을 열어 자주 환기도 하고, 볕 좋은 날 가끔은 (아니 종종) 얇은 이불을 널어두었다가 먼지를 털기도 한다. 매트리스나 두꺼운 겨울 솜이불에는 전용 청소기를 쓰지만 가벼운 이불은 베란다 밖으로 내밀어 두 손으로 붙들고 힘껏 털면 기분까지 개운해 진다.


 ‘~우리 집이 더러워질까 봐 우리나라에 버렸습니다.’라는 공익 광고 문구가 떠오르지만 동작을 조금 재빨리 하는 것으로 부끄러움을 가리고 만다. 
경기도에 사는 딸이 손주를 데리고 온다니 이부자리를 준비한다. 자주 사용하지 않는 이불을 장롱에서 꺼내 베란다에 서서 탈탈 털고 있는 내게 딸이 깜짝 놀라며 말한다.


  “엄마, 공동주택에서 그렇게 이불을 털면 어떡해. 그건 기본적인 공중도덕이야.”
세탁 건조기에 이불 먼지를 터는 기능이 있으니, 건조기를 사야 한다고 딸은 소리를 높인다. 
건조기도 좋고 의류 관리기도 당연히 편리하겠지만 나는 오래전 읽은 책 ‘지구를 살리는 7가지 불가사의한 물건들’에서 ‘빨랫줄’이 목록에 있었던 것을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던 터라 아무리 불편해도 건조기 없이 살고자 하는 것이 생활신조 중 하나이니 어쩌겠는가? 


베란다 창문을 열어 바람을 들이고 스테인리스 건조대에서 바삭바삭 마른 옷과 수건과 양말을 걷어서 소파 위에 수북히 모아두었다가,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주로 EBS ‘한국 기행’이나 ‘건축 탐구 집’이나 ‘세계 테마기행’, 때로는 ‘나는 자연인이다’이다.)을 보면서 그것들을 가지런히 개키는 것은 나만의 몇 가지 생활의 기쁨 중의 하나인 것이다. 그럴 때면 탈수될 때마다 몸체를 덜덜 떨며 앞으로 뒤로 움직이는 오래된 세탁기도 정말 고맙다. 


이제는 집안에서 생기는 생활 먼지도 아무렇게나 처리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불이든 옷이든 적절한 가전제품에 넣어서 적절한 처리 과정을 거치고, 거기서 나온 먼지는 종량제 봉투에 담아서 정해진 장소에 내놓아야 한다. 


하지만 내가 버린 비닐 소재의 종량제 봉투는 차에 실려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꼬리를 물고 계속되는 걱정은 하릴없이 일상의 쾌적함에 죄책감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갖가지 가전제품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집안 공기를 청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공기청정기, 적당한 습기를 유지하기 위한 가습기와 제습기가 필요하다. 초고층 건물에서는 창문을 꼭 닫아두고 강제 환기 시스템으로 공기가 조절된다고 들었다.


미세먼지라는 단어가 귀에 설지 않고, 미세먼지 농도는 일기예보처럼 아침마다 챙겨야 하는 생활정보가 되었으며 먼지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마스크를 써야 한다. 
예전에는 낮 동안 밖에서 입고 있던 겉옷을 현관이나 마당에서 벗어서 털고 들어왔는데, 이제는 옷걸이에 걸어서 전자 옷장(?)에 넣어 관리한다.


먼지를 제거하는 청소 방법과 도구도 다양해졌다. 전기 청소기만 해도 그 종류와 기능이 얼마나 많은지 청소기를 새로 사려면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야 할 정도이다. 
여전히 거리 두기 시대다.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말은 아마도 ‘물리적 거리 두는 사회’라는 의미이리라. 우리는 사회적 존재이고 이웃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내가 내쉬는 날숨을 옆에 있는 누군가는 들숨으로 들이키고, 그가 내쉬는 숨을 나는 또 들이킨다. 우리는 대기권의 같은 공기를 공유하며 숨을 쉬고, 지표에 흐르는 한줄기 물을 나누어 마시는 존재이다. 코로나를 겪으며 이 사실을 실감하지 않았던가? 지구는 그다지 크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조그만 별, ‘우리는 한 송이 꽃’ ‘나는 너, 너는 나’라는 말은 감상으로 하는 말은 아니다.


  ‘함께 사는 세상’이라고 딸이 나를 가르친다. 하지만 빨래건조기도 싫고 공기청정기도 싫고 고층아파트도 무서우니 나는 아무래도 산 아래나 바닷가 마을 인구밀도가 낮은 곳으로 가서 마당집에 살아야겠다. 


사방이 탁 트인 마당, 사방 360도로 바람이 불고 햇볕이 내리쬐는 빨랫줄에 이불을 널어두었다가 기다란 대나무 가지로 탈탈 두들겨 털어서 쓰고 싶다. 
마당에 편안한 의자 하나를 내놓고 발을 올리고 앉아 소설을 읽어야겠다. 질경이 명아주 달개비 풀들이 맘껏 자라도 괜찮고, 과꽃이나 백일홍, 분꽃 들이 수줍은 듯 피어있으면 더 좋겠다. 


내년쯤 일을 놓고 마당집으로 이사 가기 전까지는 오래된 아파트 3층에서 최소한의 가전제품으로 살기로 한다. 
전기 청소기보다 극세사 손걸레를 쓴다. 물기 묻은 걸레로 거실 바닥을 박박 닦고 물에 빨아 Y자형 건조대에 펼쳐 넌다. 식사 후 그릇 설거지는 생협에서 만든 세제를 수세미에 묻혀 쓱싹쓱싹 닦는다. 탈수될 때마다 덜덜거리는 세탁기도 고맙게 여기며 살아야겠다.

 

 

강정희 강진대구중 교사
著 다정한 교실에서 20,000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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