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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종실 허정수 임규정 이영문이용신, 생각 많이 나”

16년째 완도로 전지훈련을 오는 안성시청 테니스팀 노광춘 감독

  • 김형진 기자 94332564@hanmail.net
  • 입력 2023.02.23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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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도(道)에 거슬리지 않았고, 몸의 즐거움을 탐하지 않았으며, 자만하지 않았고, 욕심부리지 않았고, 거처할 집을 원하지 않았다. 사치스러운 음식을 좋아하지 않았고, 병장기(兵仗器) 이외에 자신만의 도구를 고집하지 않았고, 도(道)에 관한 것이라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재물 또한 모으지 않았다. 신불(神佛)은 존경하나 신불에게 의지하지 않았고, 몸은 버리되 명예는 버리지 않았으며, 마음은 항상 병법에서 떠나지 않았다.


극진가라데를 창시한 최배달의 정신적 스승, 일생에 있어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는 미야모토 무사시가 죽기 전 남긴 말인데 무사도뿐만 아니라 범부들이 새기면 좋은 말 같다. 


평생을 승부의 세계에서 마음 졸이며 반드시 선수들이 이겨야만하는 감독의 모습이라기 보단, 보살도 이런 보살이 없을정도로 격의 없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16년째 완도를 찾아주고 있어 그 고마움을 조금이나마 갚고자 언론에 추천했다는 최광윤 체육진흥과장은 "너무나 친숙한 나머지, 처음보자 마자 형님이라 부르게 되었죠"


보살처럼 인자한 성품이 느껴진다고 전하며, 승부에선 그렇지 않죠?했더니, 승부라는 말엔 1초 가량 웃음기 하나 없는 진지한 승부사의 눈빛같은 게 번쩍인다. 
영락없는 승부사의 눈빛. 


전쟁의 도는 승리의 도道. 죽음을 각오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전쟁에서 이기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다. 전쟁은 죽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하는 것이니까.


전쟁이 죽기 위한 각오로 시작하면 아무리 냉정하고 침착한 사람도 이성을 잃는다. 
살기 위해 전쟁을 한다고 여겨야 정신의 건전성도 유지된다. 병법의 도(道)는 어찌됐든 이기고 살아남는 것. 그럴려면 잊어도 되지만 결코, 잊어선 안되는 것으로써 그래서 잊지 않으면 안되는 것. 


받은 만큼 돌려주려는 충동을 이겨 내는 것, 그것이 기다림의 묘이며 승부를 결정짓는 호흡. 

 

 

그 호흡이 느껴지는 안성시청 소속의 노광춘 테니스팀 감독.


완도와의 인연에 대해 노 감독은 "완도군의 스포츠 마케팅은 임규정 천종실 허정수 이영문 이용신 공직자들이 힘을 많이 썼고, 지금의 완도에 이렇게 많은 선수들이 전지훈련을 오는 것 또한 이 분들의 헌신적인 노고가 컸기 때문이다"고 전했다.  


최광윤 과장은 노광춘 감독과 선수단이 한 번 오면 2~3달을 머물고 가는데, 인근 해남에선 노 감독을 데려가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있지만 완도의 테니스인들과 또 여러 인연들이 많아 가지 않는다고 귀뜸했다. 


어느 언론 인터뷰에서 임용빈 안성두원공고 감독은 노 감독을 두고 말하길 “노광춘 감독님은 중학교 코치 시절 경쟁 학교 선생님이었습니다. 그 분은 테니스가 아니라 정구를 하신 분인데 오히려 테니스에 대해 더 많은 공부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예전에 해온 방식 그대로 하고 있더군요. 그 분을 보면서 공부를 해야겠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수원에서 고등학교 코치로 있을 때 죽산중학교에서 아이들을 스카우트하면서 당시 죽산중 코치로 계시던 노광춘 선생님은 너라면 믿고 우리  아이들을 보낼 수 있겠다 하셨죠" 


"잘나갈 때 찾아오는 사람보다 어려울 때 도와주는 사람이 진짜라고 그 분은 제가 어려울 때마다 항상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셨습니다”


역시 의리를 가졌다.
거기에 승부사다운 분석력과 직관력, 리더로서의 실행력과 인정 어림, 그리고 사람과의 인연을 아끼는 의리와 무한한 긍정의 세계가 느껴지는 약점 없는 대인의 풍모 그대로. 


이 일을 하게 된 동기에 대해 노광춘 감독은 "학생시절 우연히 선생님의 권유로 취미처럼 하다가 테니스 선수 꿈이 생겨 40년 생활을 하면서 지금까지 온 것 같다"고 전했다.


어려웠던 순간은 역시나 성적.


노 감독은 감독이 되어 선수들이 열심히 땀방울을 흘리면서 운동했지만, 좋은 성적이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늘상 고민이 된다고. 
그러며 "원한을 원한으로 갚으려 하면 원한은 결코 풀리지 않는다. 그 원한을 버릴 때에만 풀리나니 이것은 영원히 변치 않을 진리인데, 승부의 세계는 온 마음을 다해 펼치는 승부이기에 패배는 늘 아프다. 그 아픔을 얼마나 빨리 잊느냐? 그리고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느냐?다. 그런데도 패배는 늘상 두려운 일이다"고.


기뻤던 순간 역시, 성적이었다.
노 감독은 감독으로서 선수들이 1년 동안 시합을 하면서 10관왕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너무나도 기뻐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러며 승부보다도 언제나 정신이 모든 것을 앞서가야하고, 그 정신이 그것들의 주인이 되면 실력도 늘게 돼 있다고. 실력 또한 정신이 만든 것이니, 만약에 사람이 삿된 정신으로 말하거나 행동하면 괴로움은 더 오래간다고. 사람이 깨끗한 정신으로 말하거나 행동하면 즐거움이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했다.


고마웠던 사람에 대해 노광춘 감독은 “학창시절 나에게 테니스 운동을 권해 주신 선생님이 너무나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것을 배워 업으로 삼고 또 다시 후학들을 길러낼 수 있기에 마음에는 감사함이 함께한다고. 


그리고 완도에서 전지훈련을 16년째 하면서 꾸준히 좋은 성적이 나온 것 같고 정말 좋은 분들도 많이 소개를 받았으며 인심도 좋은 건강의 섬 완도인 것 같다고 했다.
김대식 읍 가용리 이장과는 친구 관계라고 했다. 15년 간 낚시도 함께 다닐만큼 우정도 깊고 허정수 전 완도군청 국장과는 의형제 이상이다는 말도 전했는데, 둘이 만나면 어쩔 줄 모르게 좋아하는 사이란다. 


천종실 행정지원과장과도 자주 보는 사이라고 했고 이영문 전 읍장과 이용신 과장과도 흉허물없이 지냈다고. 노 감독하면 완도에선 모른 사람 없을 정도로 밥도 사주고 음료수 사주고 가 웬만한 완도사람보다도 더 완도사람들과 인적 네크워크 잘 형성된 이젠, 완도사람이라고 했다. 

 

앞으로도 초심이라는 생각으로 함께한 선수들과 소통하며 다치지 않으며 즐거운 마음으로 운동하는 것이 소원이란다.
안성시청 감독으로 16년동안 5명의 국가대표를 배출했는데, 현재 팀에서는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2명이 활동하고 있다고.


신우철 군수로부터 5년 전 표창장을 받았다는 노광춘 감독은 “처음 완도에 왔을 땐 완도대교도 옛날 다리여서 오기까지 스트레스가 적지 않았는데, 요즘엔 목포만 오면 다 왔구나 생각이 든다”고.


“읍권도 산전벽해할만큼 많이 달라졌다. 그때는 실내 구장도 갖춰지지 않아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아 훈련이 어려웠는데 2년 전부터는 실내 구장이 생겨 선수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대도시에 비해 스포츠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완도가 설군 이래 첫 도민체전을 개최하는 쾌거를 이뤘는데, 체전을 통해 체육시설과 인프라를 잘 가꾸어 나가면 좋겠다”면서 “완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전남 도민체전의 성공을 기원하겠다”고 말했다.


모든 분열된 것을 하나로 만들고 모든 깨어진 것들과 모든 쪼개진 것들을, 모든 상한 것들에게 다시 잇고 다시 붙이고 다시 회복시키는 힘. 


사랑이다. 
그 사랑이 반석에 서 있어 그 어떤 바람에도 끄떡하지 않고 그 어떤 비방과 심지어 칭찬에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 노광춘 감독.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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