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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딸은 치열하게 살아왔지만 우아함을 잃지 않았다

귀어해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일구는 약산면 선조수산 차미영 대표

  • 김형진 기자 94332564@hanmail.net
  • 입력 2023.03.02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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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성을 가진 눈빛. 
한마디로 마음만 먹음,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끌어올 수 있는 자성이 있는 눈빛이다. 
빛나는 눈동자와 약간은 뻗어 올라간 눈썹, 또 약간은 각진 턱선이 마음 먹은 일은 반드시 실현하고야 마는 저돌적인 역동성이 엿보였다.


누구와 닮았냐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를 보는 것 같았다.
그녀를 추천했던 미선 씨는 "한마디로 강해요! 그래서 아름답구요!" 
미선 씨는 누구에게도 터놓고 말할 수 없는 이야기를 자신의 입장에서 들어주고 진정 어린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다고 했다. 


또 "언제나 믿어주고 든든한 지원자여서 내 삶의 일부처럼 스며들었다. 살다 보면 단비 같은 사람을 만날 때가 있는데, 몇 번 만나지 않아도 만날 때마다 변함없는 살핌에 감사함이 느껴지는 사람이다"고. 
그러며 "마른 땅에 단비가 내려 갈증 난 농작물이 활기를 되찾듯 그녀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서로가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고 배려해 준다면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될 것이다"고.


약산면에서 전복치패 양식장을 운영하고 있는 선조수산의 차미영 대표(사진).
작년 말, 우연한 자리에 동석하게 되었는데, 전복치패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여성이 그 힘든 치패장을' 이란 생각과 함께 인상적인 것은 시종일관 흔들림 없는 눈빛을 보여줬다는 것. 


여느 여성처럼 멋스럽게 치장하지 않았는데도 귀티가 흘렀고, 더군다나 여자의 눈빛이 흔들림이 없다는 건 예사로운 성정이 아니라는 생각이 함께 들었는데, 마음 안에 굳건함이 있어 뜻하는 바를 가지고 꿈을 꾸며 살아가는 듯 했다.
그래서 꿈꾸는 자의 눈빛은 살아 있듯 반짝거리고, 그 의지는 스스로를 배반치 않으며 그 누구에게라도 그러지 않아야함을 믿고 산다는 것인데.


치열하지 않고 고민하지 않는 삶이란 구차하고 비루할 수밖에 없다. 비루해지지 않기 위해 그 삶은 치열할 것을 스스로에게 요구받는다.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생각과 행동을 일치시키는 건 그 일관성 때문이다.
시대와 공간의 한계를 초월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세상과 투쟁하며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사람.


절망의 끝에 이르러 자아에 대한 열렬한 몰두, 절정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과정에 대한 태도, 그래서 사람의 지금이란 얼마만큼 치열하냐에 따라서 정해진다. 
짧은 시간, 나눌 말도 별로 없었고 그 뒤론 인연이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 우연히 읍 옥카페에서 먼저 알아보고 말을 건네왔다. 
수인사만 나누고, 그 뒤로 두 번 더 보게 됐는데, 고향이 고금면 교성리라고 했다. 
아버지의 성함은 차석진 씨. 아버지와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2남 3녀 집안의 맏딸이라고 했다.


맏이로 태어나 어린 날의 추억은 집안이 너무 가난한 기억밖에 없었다고 했다.
아침햇살아래 노란 호박꽃과 순백의 박꽃이 별처럼 빛나던 산언덕의 고운 자연을 바라보기 보단, 하루 하루 치열하고 고단한 삶 속에서 부모님의 고된 삶이 더 기억에 남아 있다고 했다. 


50대 초반쯤 보였던 모습인데, 66년생 말띠라고 했다. 광주에서 개인사업을 하다가 2018년 완도로 내려와 5년째 전복치패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김일 수산경영과장은 "귀농과 귀촌과 마찬가지로 전남을 찾는 귀어가구도 늘고 있는데, 최근 5년간 완도를 찾은 귀어가 크게 늘었다"면서 "시급한 과제로는 양식어장 환경 개선이 꼽히고 있다"고.


그러며 "현재 완도군에서 어업에 종사하는 가구 가운데 88%는 양식어가로 다시마와 미역 어가가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전복 양식어가가 많은데, 단일 품목으로는 전복 양식어가로 48.9%로 사실상 1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차미영 대표처럼 완도군의 전체 어가 가운데 25%가 귀어가로, 이 중 77.9%는 고향을 찾아 귀향했다"고. 
"양식어가 가운데 한 달 이상 고용을 창출한 어가는 36.5%에 불과해 기업화로 이어지는데는 한계를 보였으며, 가장 많은 매출은 전복 치패 양식어가로 3억에서 5억원이상이었는데, 치패공급업의 규모화를 반영한 것으로, 차미영 대표가 귀촌귀어의 좋은 선례를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고향엔 왜 내려왔냐고 묻자, 차미영 대표는 “시골을 고향으로 둔 큰언니나 큰누나 큰딸, 큰오빠 큰형 큰아들이 갖는 책임감은 물론, 아버지와 어머니에겐 못 미치겠지만 아마도 부모님의 마음과 똑같을 거예요!”


“아버지와 어머니란 존재는 평생 가족을 부양한 것만으로도 참으로 대단한 일을 하셨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엄마는 그 시대 어머니들처럼, 가족에게 희생적이고 알뜰했으며 아침부터 밤까지 다섯 식구를 건사하느라 분주하셨죠. 엄마는 특히 큰딸인 저에게 여자라도 꼭 자신의 일이 있어야 한다. 살림도 좋지만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라는 것이었죠”


또한 "첫째이기 때문에 네가 잘 돼야 동생들도 잘 된다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어요" "내가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주된 이유는 어른이 되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돈을 벌어서 동생들을 건사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컸죠"
"이 일은 동생들이 무척이나 하고 싶어했던 일로 부모님의  마음으로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동생들이 하고자 하는 마음을 저버릴 수가  없어 시작하였다고 했다.
“그런데 시작은 하였으나 막상 전복 종자를 키우는 일은 여러 경험과 노하우가 필요했어요”


키우는  기술 없이  시작하여  힘들었다고.
그때 도움을 받은 많은 분들이 있는데, 혹여나 누가 될까봐 밝히기는 어렵지만 이 자리를 빌어 정말 감사했다고.


현재 어업인들은 적조와 고수온 등 기후변화로 인안 어장 환경변화를 직면한 위기로 보고 있고, 양식어장 환경개선과 유통구조 개선을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와 완도군이 나서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어려움은 없냐고 했더니, 차 대표는 "종패를 키우는 일이 밤낮이 없어 새벽 3시에 나가 살펴야 하는 일이 다반사고 특히 하우스  안이  덥고  여자로서 무거운 짐들기가 힘이 들지만 가을에  잘 키워진  자식과 같은 종자를 어가에 낼 때는 뿌듯함과 자신에게 대견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하고 싶은 말에 대해 차미영 대표는 "고향이 완도인 저도 적응하기가 힘들었지만 새로 오신 분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주위 분들이 잘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상어지느러미와 해삼과 함께 바다의 3대 보배로 가장 으뜸인 국민 보양식, 완도 전복이 더욱 사랑받기를 소원합니다"


인간은 새처럼 하늘을 날 수는 없지만 마음만 먹음아무리 높은 곳에라도 뛰어내릴 수 있다. 비행기와 낙하산이 탄생된 것처럼.
타고난 재능보다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을 잃지 않겠다는 용기와 태도.
껍질을 벗겠다는 일념 그것이 결정의 순간을 탄생시키는 결정적 순간임을 아는 차미영 대표. 매순간 치열한 전쟁을 하면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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