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서로가 꽃이 되려 서로의 입장으로 들어가는 것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23.03.02 15:45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장 아름다운 시절에 꽃이 아니면 너는 그때 어디에 있었느냐. 아무도 모르는 골짜기에 내가 스스로 꽃을 피우는 시절. 


가장 연약하게 연민으로 피어나는 너. 스스로 꽃을 피우기 위해 이름 없는 너를 보았고. 어느 길에서 머뭇거리다가 네가 이미 지나쳐버린 얼굴을 기억하는 건 시간의 길이만큼 어른거렸다. 지난해 뿌려놓았던 뿌리들이 이제 꽃으로 핀다 해도 그때가 더 좋았으리라. 온전히 너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많은 세월이 흘러서야 알았어. 마치 지구가 얼굴을 드러내기 위해서 수천 만년 시간이 흘렀듯이 너와 나는 암흑의 세계에서 몸부림치며 세월의 무게만큼 길고 길었어. 


가을 잎 떨어지기 전에 봄눈이 돋는다. 자연은 준비 없이 스스로 일어나지 않는다. 과정은 분명 필요한 데에는 원인과 결과를 명확하기 위해서다. 작은 먼지가 모여 한 알의 미알을 깨워 싹틔우듯이 무수히 많은 에너지가 연결되어 서로의 존재를 밝혀준다. 


올 겨울이 유난히 추웠는데 봄은 결국 찾아오고 만다. 자연은 명백한 사실의 기초해서 서로 에너지를 주고받아 싹을 틔우고 꽃이 핀다. 우리가 사는 인문 사회도 자연과 별 다를 바가 없다. 


실개천에서 지류를 이루고 큰 강물로 이른다. 건강한 사회 문화는 맑은 발원지를 잊지 말아야 할 터인데 큰 덩치에 이르면 변해버린다. 이것은 순수한 자연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 결과다. 거의 모든 꽃은 원형을 이룬다. 아니, 동그라미가 아니면 꽃이 될 수가 없다. 우주의 모든 행성들이 이와 같지 않나 생각된다. 시절이 꽃다울 땐 꽃이 아니면 어떠하리. 그냥 그대로 살면 꽃이 될 테니 말이다. 이제 수많은 계절을 넘기다 보니 꽃을 보지 않고선 하루가 낯설다. 내 안에 마음의 질량은 점점 줄어들어 간다. 


당연히 에너지도 줄어든다. 혼자서 지탱할 수 없는 나이가 된다. 예전처럼 되돌아갈 수는 없지만 산에서, 들에서 야생화을 보면서 생기를 받는다. 살면서 알게, 모르게 죄짓지는 일이 많았다. 


이에 따라 마음이 닳아질 대로 닳아져 버렸는데 어느 날 야생화 몇 그루가 들어와 버렸다. 스스로 꽃이 되었고 꽃이 내게로 왔던 시절은 아련한 추억이 되어버렸다. 이제 내가 꽃속으로 들어가야 시간이 거의 없는 세계가 올 것 같다.

 

배경이 가득한 시간속에서 꽃 한그루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한다. 뜰 안에 매화꽃 향기는 내 맘의 언덕이다. 들판에 자운영꽃이 넓게 퍼졌다. 길가에 민들레꽃은 햇볕을 안는다. 양지바른 곳에 양지꽃이 아장아장 봄 길을 가고 있다. 바스락 낙엽들 사이 야생화들이 꿈틀거린다. 하나같이 나를 떠나야 보이는 꽃들이다. 기존에 나쁜 습관을 버려야 꽃이 내게로 온다.

 

전에 보아 온 꽃이지만 지금 느끼는 바로 사뭇 다르다. 서로 꽃이 되기 위해선 서로 다른 입장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야 옆모습, 뒷모습을 보며 시간이 더디 가지 않겠나.

저작권자 © 완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