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마음이 서툴러 끝내 침묵할 때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3.03.23 11:54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바야흐로 완연한 봄.
문밖에는 앞다퉈 화려한 꽃으로 봄이 피어나고 있고, 겨울에 태어난 우리집 고양이 땅콩이는 백일이 되었다. 주체적인 삶을 사는 땅콩이의 천성과 습성이 매력적이다.
있는 듯 없고 없는 듯 있는 무한 존재감이 전쟁같은 나의 삶과 함께 산다. 내 곁을 봄바람처럼 따스히 스치는 필살기는 매혹적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날카로운 가시를 부드러움 속에 꼭꼭 숨겼다. 게다가 아니다 싶거나 서운하면 언제든지 깨끗히 거리를 둔다. 자신 스스로를 아끼고 보호하며 살아가는 생존을 터득한 것 같다. 홀로 있되 외롭지 않고 고독을 즐길 줄 아는 낭만 땅콩이라 할까. 나름 정성을 쏟아 키웠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감자에게 순위가 밀렸다. 그저 웃음이 났다. 정신 사납게 노는 폭풍같은 풍경도 그려지지만 그런데로 서로 평화롭게 잘 사는 게 신통방통하기도 하다. 애정표현도 확실하고 분명하게 감자에게만 골골송을 한다. 나도 질투로 대응할까 마음 먹다가도 아낌없이 사랑스럽다.


운명같은 작은 사랑이 내안에서 봄꽃으로 피어나고 있다.
땅콩이 무게가 늘면서고 존재감도 함께 몇 배로 늘었다. 오늘 아침 땅콩이가 놀다 의자와 함께 깔리듯  꽈당! 넘어갔다. 어지간해서 소리도 내지 않고 잘 참는 땅콩이다. 그런 땅콩이가 고통스럽게 아옹하며 오른 발을 끌며 절었다. 감정보다 더 빠른 것이 눈물이던가! 그 순간 시간이 멈춘듯 했다.

 

소리없는 가슴으로 꼬옥 안아줬다. 괜찮아, 괜찮아. 아무일 없을 거야. 별일 아니야. 내가 곁에 있어 줄게. 마음까지 토닥였다. 땅콩이가 고요히 안겨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고스란히 내 세포 하나하나까지 가 닿듯 느껴졌다. .조심하지 그랬어. 많이 아프지. 위험은 늘 가까이에 있는 거야. 몸이 커질수록 더욱 조심히 움직여. 그렇게 날라 다니면 위험하잖아. 아프지마~ 너 아픈 거 참을 수 없어. 땅콩이의 놀램과 아픔을 체온으로 달랬다. 자식처럼 보호해 주고 싶었다. 지켜주고 싶었다.

 

소처럼 덩치 큰 감자가 심하게 땅콩이를 괴롭히면 "감자 안 돼!" 감자를 따끔히 혼내며 땅콩이 편을 들어주고 꼬옥 안아서 키웠다. 
작고 여리고 부서지기 쉬운 땅콩이는 소중하니까. 나이가 어려 알지 못해서, 경험하지 못해 불안했던 무의식의 감정을 찾아 가슴으로 안듯 나를  안는다. 


아이 둘을 이렇게 키웠어야 했다.
지극한 사랑을 받은 사람이 세상을 이길 힘이 있다는 글귀가 겹쳤다.
마음의 고향 나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내가 지극한 사랑을 받았음을 뒤늦게 알았다.


아버지가 살아오신 삶을 연어처럼 거슬러 올라가 기억 너머의 시간을 찾고 찾았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몰라서 어디로 가야할 지를 몰라서 내가 누구인지 나를 찾고 싶어서 아버지 삶을 두고두고 묵상하듯 그렇게 했다. 불평불만으로 아버지 마음을 많이도 해집고 억지 부리고 땡깡 놓고 마지막에는 막무가내로 울어댔다. 불안하고 두렵고 무서워 천둥치듯 울었다. 힘을 모조리 빼고서야 느껴지는 하늘과 같은 나의 아버지다. 


힘들게 사셨구나. 그 모진 세월 죽고 싶은 날도 있었겠고 때로는 죽고 싶어 홀로 많이 우셨겠다. 당신 삶도 어찌하지 못해 두려움에 떨다 잠든 밤도 있었겠다.
나는 죄인이다. 죄인의 사슬을 스스로 칭칭  감고 내가 가까이 갈 수 없도록 선을 그으셨구나.


그 깊고 깊은 말속에는 미안하다.
다 아는데 어찌 할 수 없구나. 못난 아비를 용서해라. 아버지의 삶이 뜨겁게 내게 부어지는듯 눈물이 쏟아졌다. 겨우내 목표한 아버지의 삼국지를 읽으며 아버지를 새롭게 만났다.아버지는 관우상이 아니었을까.


춘추를 손에 떼지 않았던 것처럼 삼국지를 손에서 놓지 않으셨으니까.
그 시절 왜 나는 모진 삶을 버티시며 사시는 모습이 보지 못하고 아버지가 행복해 보였을까! 아마도 아버지 곁을 함께한 벗같은 삼국지 때문이 아니었을까.
삼국지의 지혜,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을 익히며 평화롭게 내 삶을 살고 싶다.
싸울 수 있을 때는 마땅히 싸워야 하고 싸울 수 없을 때는 마땅히 지켜야 하고 지킬 수 없을 때는 마땅히 달아나야 하고 달아날 수 없을 때는 마땅히 항복해야 하고 항복할 수 없을 따는 마땅히 죽어야 한다.


삼국지 전략을 영혼에 새겨본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했다.
자식이 진심을 다해 아버지 마음을 흔들었다. 아버지는 산처럼 말씀이 없으셨다. 슬픈 침묵이었구나!
어디가 어떻게 부러졌을까.


땅콩이의 불규칙한 작은 심장이 차츰차즘 사그라들고 포옹치료가 온전하게 잘 된 것처럼 꼬리를 탄력있게 탁 쳐올린다.
살아있다는 신호로 애교부리며 질겅질겅 손을 깨물어 댄다. 괜찮구나 이런 삶도. 쓸쓸함으로 후달리던 날에도 이런 게 사랑이구나.


마음이 바닥까지 털린 날에도 너의 존재 내마음에 깃들어 고맙구나.
어쩌면 내가 가시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펑펑 울어요"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내 마음 몰라줘서 섭섭했습니다.
마음이 서툴러 끝내 침묵하죠.

 

이의숙 필수노동자

저작권자 © 완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