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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히 문은 열었는데 그 사이 누군가 구조했더라면”

러시아 전쟁을 싫어해 어릴 때 꿈꿔 온 대한민국을 찾은 외국인노동자 크루반 씨

  • 김형진 기자 94332564@hanmail.net
  • 입력 2023.03.30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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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무슨 일을 하든 상관이 없다. 당신이 또 어떤 직위를 가졌든 상관이 없다. 생명을 직접적으로 구하는 의사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설령, 예수와 부처를 사랑하는 일마저 중요치  않을 수 있다.
지금 당장,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주저하지 않는다면.
언제부터였을까. 


외국인을 외국인으로 다 똑같이 여기지 않고 따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 외국인 노동자를 보면 괜히 피하고 부담스럽게 생각한 것이.
우리도 그런 때가 있었다. 월남전에 나가 목숨을 걸고 달러를 벌어 들였다. 머나 먼 서독 땅에 가선 1,000미터가 넘는 깊은 땅굴에 들어가 석탄을 캐야했는가 하면, 서독의 병원과 요양원에선 임종을 앞둔 환자를 돌보며 대소변을 치우고 시체를 닦고 염을 하면서 외화를 벌어들이던 그때. 
우리도 외국인 노동자였다. 


그들도 낮선 외국에서 지금 우리가 외국인노동자들에게 하는 것처럼 같은 대우를 받았을까 하는 생각,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는 속담이 우리가 지금의 외국인 노동자를 보는 시선이다. 
그렇다고 본다면,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보편적인 인식은 나와 다른 이질적인 이웃을 사랑하는 말로 확대되어야 한다.


나와 같은 이웃은 즉, 내 생각과 삶의 방식 그리고 언어가 같은 공유된 이들이다.
그렇게 이웃을 축소해 버린다면 동일한 삶의 방식 속에서 이타성보다는 배타성의 삶의 형식을 취할 수 밖에 없어 나와 같은 생각이 아닌 이들은 나의 이웃이 아니기에 배타적으로 밀어내 밖으로 내쫓게 된다는 것. 다르게 말하면, 나와 동일한 생각과 삶의 형식 그리고 언어를 가진 이들이 다수가 돼 폭팔하면 집단적 광기로 발전한다. 
이것이 파시즘, 이와 같은 경험을 역사적으로 찾는다면 1` 2차 세계대전과 같은 극단적으로 체험되는 게 인류의 경험이다.

 

 

지난 18일 약산 당목항에서 일어났던 비극적인 참화, 하지만 생명을 구하고자 바다에 뛰어들었던 외국인 근로자가 있었다는 말에 군민은 그 나마 작은 위안을 가졌다. 누굴까하는 소식도 잠시, 금일읍사무소에서 미담의 주인공을 찾아내 금일봉을 전달하며 군민의 마음을 전하면서 주위를 훈훈케 했다는 것. 


현재❍금일읍 A 마을에서 외국인 근로자로 어가를 돕고 있는 러시아 국적의 ‘크루반’이란 청년은 차량이 바다에 빠지자 그 누구도 나서지 않고 있던 상황에서 곧장 바다로 뛰어들어 살신성인의 자세로 위험에 처한 가족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후,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누군가 사럄을 구하기 위해 바다로 뛰어든 의인이 있었던 사실은 사건 당일 현장에 있던 주민들로부터 회자되며 “대단한 청년이다”  “그 청년(외국인 근로자)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었다.


이정국 금일읍장은 주민들의 의견을 들어 관내 외국인 근로자들에 대한 현황 파악에 나섰다. 각 마을 이장들에게 수소문 끝에 크루반(외국인 근로자) 씨의 고용주와 연락이 닿으면서, 금일읍 각급 사회단체와 함께 감사의 뜻을 전달했다.


이 읍장은 완도신문의 소식을 접한 많은 익명의 주민들이 감사의 뜻을 전해왔고, 고금면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후원을 자처하며 일정의 금액을 금일읍 읍사무소에 전달해왔다고.

 

 

김남수 금일읍사무소 총무팀장은 "읍사무소에선 직접 전달을 권하였지만 본인의 후원이 사건 당일 크루반이 보여 준 선행에 너무 미치지 못해 부끄럽다면서 익명을 요구해 오셨다"고 말했다.


현재 다시마, 김, 미역 등 수확이 한참 진행되는 어번기인 만큼 외국인 근로자의 신분인 크루반과의 만남은 고사하고라도 대화조차 나누기 매우 어려웠다.
하지만 이정국 금일읍장이 고용주에게 협조를 요청하여 짧은 시간 인터뷰를 할 수 있었는데, 크루반 씨는 현재 28세의 젊은 나이로 국적은 러시아, 금일읍 A 마을의 김 양식 어가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에 오게된 계기에 대해 크루반 씨는 어려서 부터 한국에 가서 한국어를 배우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발전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를 떠나게 되었고, 난민 비자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왜냐면 러시아에 머물게 된다면 군대에 징집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박해 때문에 러시아를 떠났다고 했다. 


또 인스타그램에 전쟁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해 괴롭힘을 당했다고. 게다가, 람잔 카디로프의 측근들(이 사람은 체첸 공화국 대통령)이 자신의 소셜 네트워크를 감시하고, 모스크바에서 자신을 납치하려고 했지만, 그때 가까스로 러시아를 떠나면서 안전한 나라 대한민국을 선택해 오게됐다고.


당목항 수난사고 당시 어떻게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었냐고 묻자, 크루반 씨는 "차를 타고 물로 빠져 들어가는 한 여자를 보았습니다. 그녀가 무서워하는 모습을 가만히 서서 볼 수  없었습니다"
"그 광경을 보고서도 그 분을 구하러 뛰어들지 않았다면 제 자신에게 너무나 부끄러울 것 같았습니다" 


"아직도 그 사람들을 구하지 못해 매우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라고.


그의 표정이 계속해 심각했던 이유는 이 때문인 것 같았다.
구조 당시 어려웠던 순간에 대해 묻자, 크루반 씨는 "물이 매우 차갑고 흐려져 다이빙을 할 때는 아무 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가라앉는 차에 올라타서 사람들을 끌어내기 위해 문을 당기기 시작했지만,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습니다"


"정말 미치겠더군요! 문을 여는데 온힘을 쓰느라 닫힌 문을 여는 과정에서 무릎까지 다치게 됐는데, 찬물에 숨을 참기가 어려워 그 충격으로 물을 한 모금을 들이켰습니다" 
"갖은 노력 끝에 마침내 문을 여는데 성공했는데, 그 사이 누군가 들어와 구조할 수 있었다면..."


그러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감정을 추스린 크루반 씨는 "그 순간,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했던 것 같습니다" 
고마운 분들에 대해 크루반 씨는 자신의 행동을 잊지 않고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 주신 금일읍 이정국 읍장을 비롯한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고맙다고 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냐는 말에 크루반 씨는 "해상 여객선 가까운 곳에 구조대원들이 늘 상존해 있으면 좋겠습니다"  또 "아무도 그 가족들을 도울 수 없었다는 것이 슬펐고, 구해내지 못한 저에게도 정말 화가 많이 났습니다"


외국인 근로자로써 완도군에 바라는 점을 묻자, 그는 "합법적으로 대한민국에 체류할 수 있도록 비자 발급에 많은 도움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며 "참으로  안타깝고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힘드시겠지만 하루 속히 슬픔을 이겨 내시고 앞날에는 행복만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청년으로 아름다운 휴머니스트인 크루반 씨. 
누가 내게 이웃인지 아닌 지가 아닌, 문제는 나 자신, 내가 먼저 이웃이 되고자 하는 것. 
예수님이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말씀하셨던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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