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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서도 천재시인 김만옥(金萬玉) 기념비 건립해야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3.04.06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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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완도군에는 265개의 유무인도가 있다. 그 중에 가장 오지를 고르라면 누구든지 망설이지 않고 여서도를 말할 것이다. 여서도는 완도군의 조금만 섬이지만 큰 마음 먹지 않으면 정말 가기 어려운 섬으로, 완도사람이지만 평생 한 번 가보기도 어려운 섬이기도 하다.


그곳은 또 비운의 삶을 살다간 천재시인 김만옥의 숨결이 숨 쉬고 있는 곳.  
김만옥은 1946년 3월 6일 여서도에서 3대 독자로 태어났다. 어려서 아버지를 바다에서 여윈 김만옥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홀어머니의 지극한 사랑과 헌신적인 뒷바라지로 1960년 완도중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하는 영광을 안았다. 

 

 

당시의 완도중학교는 오늘날과 다르게 완도의 각 섬에서 영재들이 모인 가운데 시험을 통해 학생들을 선발하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완도에서도 최고로 오지 낙도였던 여서도의 김만옥은 완도중학교를 당당히 수석으로 합격하여 여서도 천재의 이름을 알렸다. 
중학생 시절 김만옥은 이미 『학원』이란 잡지에 시와 산문을 게제하며 『학원』지의 학생기자로 활약하였다.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청운의 꿈을 안고 1963년 조선대학교 부속고등학교에 입학한 김만옥은 꾸준히 시작(詩作) 활동을 펼치며 고등학교 2학년때는 광주지역 문인지망생 고등학생들과 함께 『석류』『시향』이란 동인회를 조직하여 활동하면서 같은 해 11월에는 그의 첫 시집 『슬픈 계절의』를 발표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인 1965년 4월에는 고등학생 신분으로 지역 문인들의 등용문이었던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한 시가 가작으로 뽑히기도 하였다. 
그는 조선대학교 부속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7년 2월 『사상계』 제8회 신인문학상에 『아침 장미원』외 3편의 시가 당선되어 문인계에 정식적으로 등단하였다.
1967년 조선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한 김만옥은 1968년 8월 국문학과를 마치지 못하고 생활고에 내밀려 대학을 중퇴하였다. 그러나 김만옥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이겨내며 작품활동을 이어나갔고, 1971년 『대한일보』와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는 기쁨을 누렸으며, 이듬해에는 『5․16 민족상』에 또 단편소설이 당선되는 영예를 누렸다. 그러는 사이 사랑하는 세 딸이 태어나 기쁘기도 하였으나 경제적인 어려움은 여전하였다. 


그는 경제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직장을 서울로 옮기기도 하였으나 천재는 단명한다고 하였듯이 사랑하는 부인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세 딸을 남기고 세상과 인연이 끊어 안타까움을 더하였다.


여서도의 천재시인 김만옥은 그 후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갔으나 그의 사후 10년만인 1985년 뜻있는 지역의 문인들이 유고시집을 내기로 하고 김준태의 편집으로 『오늘 죽지 않고 오늘 살아 있다』(청사)를 출간하여 여서도의 천재시인 김만옥을 기렸다. 1998년에는 광주시립민속박물관 앞 사람이 많이 다니는 양지 바른 한 켠에 그를 기리는 시비를 건립하여 박물관을 찾는 이들이 모두 그를 볼 수 있게 하여, 살아 생전 그가 그토록 사무치게 그리워했던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삶에 대한 외로움과 빈곤을 저승에서 나마 잊게 하였다.   


시비의 조각을 맡았던 나상옥(전 광주광역시 미술협회장)은 커다란 한덩이 화강암에 그가 살았던 여서도의 거친 바다에 외로이 떠 있는 여호산을 깍고 다듬어 『딸아이의 능금』을 새겨넣었다.

 

 

딸아이의 능금
봄비가 다녀간 담장 밑 양지쪽에 
어느 날 딸아이가 능금씨 심는다
봄이 다 가고 겨울이 와도
싹은 나지 않고 가슴 죄는 데
가을이 다 가고 겨울이 와서 
까마득 그 일 다 잊어버릴 때
딸아이 마음 속에 능금꽃 필까
딸아이 마음 속에 능금이 열릴까
딸아이에게 
퇴비 한 줌 주지 못한 
어른이 송구스럽다
                                          - 딸아이 능금 전문 -

 

최근 완도지역 조선대학교부속고등학교 동문들을 중심으로 천재 시인을 기리기 위한 시비 건립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좋은 장소에 좋은 뜻을 모은 이들의 소망이 이루어 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다도해해양문화연구원 유영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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