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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되기 위해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3.04.13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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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쯤은 네가 쌓아 올린 모든 걸 걸고내기를 할 수 있다면, 그래서 다 잃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그러면서도 네가 잃은 것에 대해 침묵할 수 있고 다 잃은 뒤에도 변함없이 네 가슴과 어깨와 머리가 널 위해 일할 수 있다면.. 
설령 너에게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는다 해도 강한 의지로 그것들을 움직일 수 있다면. 


만일 군중과 이야기하면서도 너 자신의 덕을 지킬 수 있고 왕과 함께 걸으면서도 상식을 잃지 않을 수 있다면. 
적이든 친구든 너를 해치지 않게 할 수 있다면 모두가 너에게 도움을 청하되 그들로 하여금 너에게 너무 의존하지 않게 만들 수 있다면.


그리고 만일 네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1분간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60초로 대신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세상은 너의 것이며 너는 비로소 한 사람의 어른이 되는 것이다.


키플링의 어른이 된다는 것.


화내야 하는 상황에선 화낼 줄 알고, 울고 싶을 때는 울어버리고, 틀린 걸 인정하고 배울 줄 알고, 스스로를 위해 나서야 할 때는 나설 줄 아는 어른, 어렸을 땐 크기만 하면 그런 어른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아직 어려서, 경험이 없어서 아직은 어른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은 세상은 시간이 흐르니 나이를 얼떨결에 먹었을 뿐 마음 속은 여전히 어린아이가 자리 잡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하더군요. 어렸을 때 부모님 대신 형제자매를 키워야 했던 할머니 세대, 고등학생 때부터 공장에서 일해 돈을 벌어야 했던 어머니 세대, 부모님의 부재로 아이이지만 스스로를 책임져야 했던 언니들 세대. 수많은 ‘어른’들은 여전히 그 시절의 기억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가졌어야 할 어리기만 한 어린 시절을 누군가에게 빼앗겼으니깐요. 
 그들은 어른이기에 흘러내리는 마음을 가득 찬 옷장에 이불을 쑤셔 넣고 서둘러 닫아버리듯 숨길뿐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 마음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 마음과 함께 공존해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1년에 한 번이라도,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어린 시절의 내가 하지 못했던 것을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부모님이 사주시지 않았던 장난감, 가지지 못했던 곳 남들 시선에 묶이지 말고 마음껏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마치 보상심리처럼요. 꽃을 좋아하면 꽃밭에 가 하염없이 꽃 사이에 앉아 풀반지를 만들며 시간을 보내고, 어렸을 때 가보고 싶었던 놀이공원에 가보고, 먹어보고 싶었던 과자도 마음껏 먹고. 이 나이에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는 말은 잠시 넣어두어요. 즐거움은 나이순으로 찾아가지 않으니까요. 


그럼 마음 한켠에서 울먹이기만 하던 아이를 조금씩 달랠 수 있을 거예요. 거울 속 비추는 어린 내가 점점 나이를 먹어갈 거예요. 어딘가 억울하고, 답답했던 마음이 서서히 사라져 갈 거예요. 
그렇게 회복해야 우리가 원하는 어른이 될 수 있도록 공부를 시작할 수 있어요. 비겁하다고, 어리석다고, 서툴다고 미워만 했던 것들은 내가 어린 시절에 묶이게 만든 그들을 탓해요. 짊어지고 가야 할 것은 주워 담고 버려야 할 것은 미련없이 남 탓이라도 하며 던져버려요. 


어른이 된다고 마법같이 다른 사람이 되지는 않아요. 
평생 그런 적도 없고 그럴 수도 없어요. 
하지만 조금씩 나이에 맞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성장은 할 수 있으니깐요. 
나쁜 일·사람보다 좋은 일·사람이 더 많았으면 해요. 불행을 행운이 눌러버릴 만큼 가벼운 불행이, 강력한 행운이 왔으면 좋겠어요. 
오늘도 여느 때와 같이 시를 선물하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봉숭아 –이해인

한여름 내내
태양을 업고
너만 생각했다

이별도 간절한 기도임을
처음 알았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잊어야 할까

내가 너의 마음 진하게
물들일 수 있다면
네 혼에 불을 놓는
꽃잎일 수 있다면

나는 
숨어서도 눈부시고
행복한 거다

 

 

김지현 님은 완도고 재학 중 본보 청소년기자로 활동했으며, 2021학년도 서울여대 국어국문과에 입학했다. 그녀의 별빛 같은 눈망울은 모두가 잠든 사이, 별들의 가장 깊은 시간 속으로 날아가 별빛이 감춰놓은 그 신비로운 반짝임을 누군가의 가슴에 뿌려 주려고 그렇게 반짝이는 것.
아름다운 국문학도가 되기를 응원합니다.


사진= 청산도 돌담길/완도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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