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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눈망울은 한편의 詩처럼 충분히 깊고 넓고 아름다웠다

완도 역도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 2부

  • 김형진 기자 94332564@hanmail.net
  • 입력 2023.04.20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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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품에 문제가 있는 자에게는 비장의 기술을 전수하지 말며, 재주나 지식이 덕성을 이겨서는 안된다며 옛말에 이르길, 비인부전 부재승덕(非人不傳 不才勝德)이라 했다. 


인품과 인격은 가르칠 수 없다. 가르치려고 덤벼드는 것 자체가 어쩌면 오히려 사람을 망가뜨리는 일. 그렇기에 인연이란 함부로 맺는 것이 아니고, 그렇지만 한 번 인연이 맺어지면 나의 인성과 인품, 인격이란 그냥 보여주는 것.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지금이 아니라도 뒤늦게라도 배울 수 있으면 배우게 하는 것.


그리고 그가 깨달을 때까지, 설령 깨닫지 못하더라도 묵묵히 그를 지켜보며 기다리고 기다려 주는 것.

 

서호철 지훈민 선수의 카퍼레이드 사진, 눈길이 가는 건 스승들이 타고 있는 뒷차의 모습. 

 

코치 이영래라는 이름 뒤편에 그가 앉아 있는 이유가 특별해 보였다. 무슨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었을까? 그럴지라도 환영하려 가두에 나온 주민들 앞에서 왜, 앉아 있었을까란 의문.
완도중학교 한 쪽 편에 자리한 청해역도관. 
낡은 시설에다 1평 남짓한 사무실. 

 

홀로 나와 기자를 반기던 이영래 완도중학교 역도부 감독. 그에게 카퍼레이드 사진 이야기와 함께 왜, 앉아 있었냐?고 물었더니, 이 감독은 "그때 제자들은 완도중학교를 졸업한 후 완도수고에서 운동을 하고 대회에 나가게 됐는데, 당시 수고엔 지도 코치가 없어 제자들을 위해 코치로 합류하게 됐다. 내가 돋보여서는 안되는 자리였다"고 했다. 


자신이 어디에 서 있어야할 지를 안다는 건, 가장 훌륭한 스승의 덕목, 그것이야말로 제자들을 빛나게 하는 일로 제자들은 그 본질에 서 있는 스승을 믿기에 더욱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 사제동행(師弟同行)의 의미겠다. 
훌륭한 기술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에 임하는 정신세계를 전수하는 것.


그건 또, 이겨야 한다는 욕심이 아니라 이길 기회가 있다는 희망을 품고서 긍정적인 자세로 자신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라는 것.
스승의 존재란 그 어떤 방법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 스승은 그 자체가 사랑이고 사랑과 사랑 안에서 나를 존재케함이니까.

 

 

사무실에서 눈길이 가는 건, 탁자의 유리 속에 담긴 최경주 선수의 모습이었다. 어떤 상황이냐고 물었더니, 최경주 선수가 PGA에 우승하고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란다. 최 선수는 이 감독의 3년 후배로 중학교 시절 역도 운동을 했던 모교를 방문해 기념한 것이라고.


이영래 감독의 스승은 당시 완도교육청에 근무하던 김동찬 선생. 1979년 역도부가 창설될 당시만해도 시멘트를 틀어 넣고 바벨을 만든 역기로 운동했다고. 

 

 

그의 사무실 벽면엔 제자들이 각종 대회에서 우승하며 신문에 소개된 기사를 오려 코팅한 이미지가 붙어 있었는데, 기분이 좋을 때와 우울할 때 역시 제자들이 좋은 성적을 거둘 때, 아니면 성적이 좋지 않을 때라고 했다.


한희석 기획예산실장으로부터 제자들을 건사하기에 집에서 숙식까지 챙겼다는 말을 전해들었다고 하자, 이영래 스승은 별 일이 아니라는 듯 무심하게 말을 이어갔다. 지금 아내는 완도수목원에서 숲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는데 당시엔 광주에서 살면서 주말부부였다고.

 

노화 출신의 5학년인 제자는 관내 육상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는데, 부모님이 안계시고 할머니랑 형이랑 사는데 주말에 집에 가면 말썽을 부리기에, 주말에 함께 광주로 가게됐다고. 당시 제자는 소년체전 3관왕을 차지하며 뛰어난 재능을 보여줬는데, 이후 삶이 힘들어 보였지만 언젠가 전화가 와 하는 말이 "선생님, 이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고 했단다.


아내의 고충 또한 컸을 것이었다고 했다. 당시엔 이 감독의 자녀들 또한 어리고 집이 비좁아 불편했을텐데, 전혀 내색하지 않고 제자들을 마치 자식처럼 여기면서 이 감독을 이해해줬다고. 아내에게 제대로 말은 못했지만 참 감사한 일이다고 했다. 

 

 

완도 역도에서 성적으로 보면 10년간 국가대표팀 지도자로 활동했던 고광구 광주시청 감독를 빼놓을 수 없다고 했다.(바로 위, 왼쪽 사진)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4위, 93세계선수권 3위, 94세계선수권 5위, 96년 아틀랜타올림픽 6위에 그치면서 선수시절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 금메달 획득의 영광을 이루지 못하고 은퇴를 해야 했던 고광구 선수는 완도 주민들이 안타깝게 여긴 선수 중 한 명이였다고.

 

 

또, 애제자였던 지훈민 선수(바로 위, 오른쪽).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인상 부문 한국기록을 세웠으나 세 차례 용상 시기에서 한 번만 들었어도 최소 은메달을 딸 수 있었는데, 인상이 끝나고 10분만에 치뤄진 용상에서 1차 시기를 과감하게 포기하고 휴식을 취한 후 2차시기에 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아직까지 남는다고 했다. 


개인적으로도 가장 안타까웠던 순간이었고, 그때 많은 완도 주민들이 함께 애석해 했던 기억이 있단다.


김경모 선수도 기억에 남는 선수로 한체대 조폐공사를 거치면서 운동을 잘했는데, 2000년대 초반 부상 때문에 다른 길을 걷고 있다고. 이영재 지훈민 서호철 김경모 정재훈 강민호 임진강 이인우 선수가 생각이 많이 난단다. 또 재능과 실력이 뛰어난데 중간에 관두면 마음이 안좋다고 했다. 제자 중, 고금 축협에서 근무하고 있는 황호진 선수는 완도를 대표하는 경량급 선수인데, 황 선수는 이번 도민체전을 준비하기 위해 업무가 끝나면 곧장 이곳 체육관에 나와 운동을 하고 있는데, 가볍게 1등을 하지 않을까 싶단다.


역도를 하면 좋은 점이 뭐냐고 물었더니, 이영래 선생은 "우리가 사회생활에서 모두 1등은 할 순 없지만, 역도를 경험했다면 성공은 못하더라도 분명 잘 살 것이다. 한순간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태도와 마음가짐은 앞으로 살아가는 삶의 곳곳에서 만나기 때문에, 그 태도로써 접하는 일을 잘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고.

 

 

벽에 걸린 사진 중에는 허궁희 의장의 모습이 보였는데, 이 감독은 허 의장을 비롯해 김양훈 의원과 조영식 의원 모두 역도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그러며 지금의 완도 역도는 선수들이 다치면 치료해주고 어려운 아이들에겐 용돈과 장학금을 지원해 준 후원회가 있었기 때문인데, 대한민국 후원회 중 이런 후원회는 완도가 유일하단다. 대성병원 전이양 원장, 부부치과 임영태 원장, 이성무 경희한의원 원장, 김학주 치과 원장, 한승용 원장, 조구현 완도싱크 대표, 설경수 회장은 돼지를 잡아주면서 격려해 줬는데 완도군청 역도팀을 창단하는데 도움이 컸다고. 


오는 10월, 전국체전에서 역도가 완도에서 열리고 내년 소년체전까지 열릴 수 있도록 한 장명철 회장의 공로도 크다면서 갑자기 후원회 주소록을 프린팅한다. 
기억력으로 말하면 누락될 수도 있겠다면서 건네는데, 박철 빙그레 대표, 박용준 씨, 박준일 신지면 한국의원 원장, 박진용 으뜸수산 대표, 신정환 씨, 신흥권 씨, 현재 후원회장을 맡고 있는 건강마트약국의 윤배현 회장, 이동주 치과원장, 윤영대 안경마을 대표, 이동흥 다해수산 대표, 최기봉 새벽항구 대표, 한승용 원장, 조명장 남일약국 약사, 최운영 청해진 한의원, 김준용 탑치과 원장, 김태현 장보고물산 대표에게 깊이 감사드린다고.


앞으로의 바람을 묻자, 이영래 감독은 정년이 4년 정도 남았는데, 이후로도 완도 역도가 이어졌으면 한다고 했다. 말은 짧았지만 지도자 생활을 해온 만큼 깊은 여운이 전해져온다고 해야할까.


시(詩)란 어떤 놀라운 관념으로 우리를 현혹시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존재의 한 순간을 잊을 수 없는 것이 되게 하고, 견딜 수 없는 향수에 젖게 하는 데 있다.


그런 점에서 시는 존재의 한 순간을, 아주 짧은 찰나의 시간을 잊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든다. 그 순간에 머물게 함으로써 향수에 젖게 해 잊을 수 없는 불멸의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 멈춤의 시간을 고요의 시간을 넘어서 존재로서 남을 수 있게 하는 남자.
그의 눈망울이 불멸하는 시처럼 빛나고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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