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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맑은 물을 머금어 그토록 진한 향기가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23.05.11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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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언덕에 앉았다. 계절이 왔다 간 자리에 하얗게 꽃이 피었다. 조팝나무, 찔레꽃, 아카시아 꽃이 아쉬운 봄을 달랜다. 향기가 없으면 5월의 밤하늘도 쓸쓸하다. 향기는 마음과 마음이 맞대는 곳에서 피어나리. 벼농사를 짓기 위해 논에 물을 댄다. 
5월의 산야는 눈물투성이다. 찔레꽃도 새순에 물을 올려야 꽃이 핀다. 물을 잔득 머금어야 꽃이 된 이들은 하나같이 정이 많다. 온전하게 퍼 올려야 가슴에도 꽃이 핀다. 아카시아 꽃들도 가득하게 물을 머금었다. 부지런히 물을 올려야 그 많은 꽃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 


어머니 무덤가에 밤새 소쩍새 울고 난 아침에 무슨 꽃이 피었을까. 평생 눈물이 고인 곳마다 꽃으로 피어난다. 
기도의 눈물은 하얀 꽃보다 진하다. 5월의 어머니 사랑이 없으면 정녕 오월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깨어나라. 침묵하라. 아침 햇살은 나의 눈빛을 밝힌다. 5월의 산촌은 고요함 속에서 움직이고 있구나. 하얀 꽃향기는 마음을 열리게 하고 아침에 이슬방울은 잠에서 깨어나라 한다. 


이산 저산에서 새들의 사랑의 목소리가 들린다. 산기슭에 얼굴을 내민 아카시아 꽃은 내 누이의 품안처럼 아늑하다. 내 나이도 이미 멀리 가 있는데 5월의 꽃들은 내 곁에 있네. 


수많은 별은 내 운명의 손을 놓을지라도 5월의 향기는 아직 놓지 않고 있네. 이 계절의 초록은 가장 맑은 물을 머금었네. 그래야 초록의 산을 만들 수 있을 터이니 말이다. 맑은 눈물이 꽃이 된다는 것은 그 향기는 가장 깨끗한 생명이다.

 

아카시아는 콩과에 딸린 낙엽 교목으로, 잎과 꽃이 다른 콩과 식물과 비슷한 점이 많다. 9월이면 콩처럼 열린다. 5월에 피는 라일락, 아카시아는 향이 진하다. 그래서 70년대에 꽃향기를 넣어 껌을 만들었다. 그 어려웠던 시절도 아름다움이 있었다. 점점 머리가 희끗희끗해지고 있다. 바람 한 점에도 힘차게 걸어보지만 나약함을 알겠다. 내 옆에 있는 5월은 변함없이 시심을 발현하게 한다. 한 그루의 나무을 위해 대지를 적힌다. 부지런히 물을 퍼 올려 꽃을 피워보자. 


이것이 지나고 난 뒤에 눈물이 될 수 있어도 그 향기는 평온하고 아름답다. 늘 깨어있는 5월은 깊고 오묘할 필요는 없다. 차분하게 한 가지에 피는 꽃을 보면서 지극히 눈을 감고 그리움에 잠기면 될 것 같다. 초록 가운데 피었지만 향기는 멀리 간다. 
부지런한 벌이 꿀을 날리고 마음은 사랑의 주머니를 만든다. 말이 없는 너는 무엇인가 의미를 두고 싶을 것을 게다. 세상을 다 품은 5월은 내 가슴으로 되돌아오네. 열정과 인내 그리고 기다림이 푸른 꽃이 되고 낱낱이 꽃을 세지 못해도 그 향기는 한 무더기로 오네. 침묵하라. 얼마나 많은 사연이 오고 갔으니 이제 꽃을 보고 말없이 서있는 것만으로 너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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