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길 끝에서 얻어지는 인내가 앞으로의 모든 걸 결정했다

아시아 최다 美PGA 8승 제62회 전라남도체육대회 성화점화자 최경주 프로 2부

  • 김형진 기자 94332564@hanmail.net
  • 입력 2023.05.25 15:43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극진 가라데의 창시자, 최배달의 스승인 전설적인 사무라이 미야모토 무사시가 그런 말을 한다.


"승리에 우연이란 없다. 1천일(日)의 연습을 단(鍛)이라 하고, 1만일(日)의 연습을 련(鍊)이라 한다. 단련(鍛鍊)이 있어야만 승리를 기대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싸우고 있는 적(敵)이 마지막이다. 싸움은 지금 이 순간뿐이라 생각하라. 목숨을 건 싸움에서 이번엔 졌지만, 다음엔 이긴다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무사의 도나 수행의 도가 다르지 않듯 단련은 내가 가보지 못한 끝을 가게 한다. 늘 문제는 끝을 안가서다. 끝까지 갔다고 해서 잃을 것은 하나도 없다. 끝을 갈 때 찾아오는 짜증과 싸우고 혼란과 싸우며 미지수와 싸우는 일이 승리나 성공 여부보다도 훨 가치롭다. 그 길에 얻어지는 인내가 앞으로의 모든 것을 결정하니까.


그 인내의 끝에 갔을 때, 한줄기 맞이하는 바람이란 그냥의 바람이 아니다. 귀로 들으면 청징한 음율이 되고 눈으로 보면 천사가 축복을 선사하는 것으로 누구 도 주인이될 수 없지만 그 청징한 느낌은 죽을 때까지 쓰고 써도 다함이 없다.


먼 나라에 나가 고향으로 돌아와 맞이하는 완도의 바람 또한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늘 자신의 끝을 가고나서 다시 새로워지고 다시 끝을 갈 수 있게 하는 힘. 그가 긴 여행을 끝내고 마지막으로 돌아오려는 곳 또한 완도가 아닐까 싶은데. 
화흥초 학생들과 가진 자리에서 최경주 프로는 완도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3명 있다고 했다.


자신을 골프의 세계로 입문시킨 추강래 현 완도문화원장(맨 우측 사진)과 부인이 정도리 출신으로 각별한 도움을 줬던 임영태 원장, 그리고 어려울 때마다 멘토가 돼 주는 전이양 대성병원장이다고 했다.
지난 23일 대성병원을 찾았을 때, 병원 안 회의실에는 최경주 프로의 기념사진이 비치돼 있었는데, 전 원장은 사진 한 장 한 장을 소개하면서 최 프로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맨좌측 사진)


최경주 재단의 원년 이사이기도 한 전 원장은 최 프로와의 첫인연에 대해 1990년대 초 개인병원을 하던 당시 최 프로가 군 복무를 하기 위해 고향 완도로 내려왔을 때, 당시 복무를 하지 않는 날엔 함께 골프 모임을 함께했다고. 전 원장은 "오늘 날의 최 프로는 자신의 길에서 만난 인연의 힘이 큰 것 같다"며, 완도수고에서 골프 명문인 서울 한서고에 가게 된 인연에 대해 한서고 이사장이 어느 날 제주도를 가기 위해 완도로 내려왔다가 최 프로의 공치는 모습을 본 후 명함을 주고 한 번 찾아오라 했었다고. 


고교생이면 아직은 서울 물정을 몰라 새로운 길을 가는데 주저했을텐데, 최 프로는 아버지에게 소를 팔고 난 얼마간의 용돈을 받아 결국 서울로 올라가게 됐는데, 결정적 순간 주저하지 않으며 운명을 바꾼 한 순간을 만들었다고 했다. 또, 최 프로를 양아들처럼 생각했던 피홍배 회장 또한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미 프로 골프에 데뷔하기 전 최 프로의 실력과 인성을 알아본 피 회장은 거금의 미국 체류비용을 줬는데, 최 프로가 보통 사람이 아닌게 이 체류비용으로 미국에 집을 마련했다고. 


전 원장은 "한마디로 배수의 진을 친 것이죠. 보통 사람이라면 성공 여부도 불투명한데, 그렇게 쓰겠어요? 그건 성공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겠다. 이곳에서 뼈를 묻겠다는 마음가짐이었겠죠! 그것도 최 프로의 승부호흡이라 봅니다"
국내에서 승승장구하던 최경주 프로가 1990년대 후반 첫번째 큐스쿨 도전 이야기를 꺼냈다.


미국으로 가기 일주일 전, 갑자기 최 프로에게서 전화가 와 "원장님, 케디가 못하겠다고 통보를 해왔는데, 이 친구가 아시아 대회 출전 티켓을 얻었답니다. 내 꿈을 위해 타인의 꿈을 져버리게 해선 안되겠죠. 그런데 참 난감합니다" 그 말을 들은 전 원장은 그러면 자신의 광주 집으로 곧장 오라고 했다고. 오라곤 했지만, 전 원장은 "참, 암담하더군요! 그래도 두드려야죠"


전 원장은 길을 찾기 위해 LA에서 교수로 은퇴한 작은 아버지를 떠올렸지만 골프의 문외한이라서, 다른 이를 찾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 마침, 광주 교회일로 한국에 잠시 나와 있던 LA로 파견된 목사님이 있어 목사님을 만나면 해결되겠다 싶었다고.


그에게 최 프로의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목사님은 두 번 말도 않고 "그래, 해 보자". 당시 목사님의 LA 한인 교회에는 서울대 출신의 성도가 있었는데, 그는 골프에 해박해 최 프로의 골프 케디까지 해주겠다고 자청했다고. 그렇게 미국으로 건너가 교회에서 먹고 자면서 큐스쿨을 준비한 최 프로. 큐스쿨의 첫 대회에선 라운드 출전 미국선수들의 견제가 너무 심해 정상적인 코스로 공을 보냈는데도 오비가 났다는 등 심리적 동요를 일으킬 수 있는 견제가 매우 심했다고. 그리고 탈락했단다. 


한 달가량 교회에서 거주하면서 김만석 목사님과 이곳 저곳 사냥을 다니며 마음을 추스리면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두 번째 도전 끝에 PGA에 선수로 뛰게 됐다고. 전이양 원장은 "그의 삶이 너무나 드라마틱해 정말이지 몸과 정신, 마음을 다하면, 하늘이 돕는다는 말을 최경주 프로를 보고 실감했습니다"


그렇게 각고의 노력 끝에 출전권을 따내 PGA투어 8승을 거두었으며 50세 이상만 출전하는 미국 프로 골프(PGA) 챔피언스 투어에서도 한국 선수 최초 우승해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골퍼로 성장했다고.


최 프로에 대해 지역에선 박한 인심을 느끼는 것 같은데, 알려지지 않은 많은 이야기가 있을 뿐, 그는 실력과 품성 인성 모두 세계적인 인물이 맞다고 했다. 
미국 주니어 골프협회와 공동으로 주니어 챔피언십 대회 3개를 주최, 한국 선수들의 미국 진출 기회를 확대했으며 비영리 민간단체인 최경주재단을 2007년에 설립해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골프 꿈나무 315명과 장학 꿈나무 417명에게 총 396억원을 후원했다고 했다.


최 프로는 2012년 완도 지역 태풍 피해 복구 지원금 1억 원을 기부하는 등 국내외 재난 및 피해자들의 구호 지원에도 앞장섰다. 최 프로는 정부로부터 체육훈장 맹호장과 청룡장을 수훈했으며, 또 프로골퍼들에게 로망같은 2013년도 미국 프로골프 기자협회 찰리 바틀레상을 수상했다고.


최 프로가 꿈꾸는 미래에 대해선 다음호에 말하기로 하고, 최 프로와 중학교 동창인 장명일 최경주기념골프연습장 대표를 지난 22일 만났다.(좌측에서 3번째 최프로와 함께하고 있는 장명일 대표)


이번 체전의 성화 점화 주자로 최 프로가 완도에 왔을 때 로드매니저를 담당했다는 장명일 대표는 "늘 재밌는 친구였죠. 최경주 프로가 군생활은 방위를 받았는데 정도리 구계등에서 초소 근무를 했었어요. 중학교 동창이었는데, 최 프로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역도를 했습니다" "박정식 체육 선생님이 감독으로 계셨는데, 최 프로는 역도에서도 발군이었습니다"


"역도를 통해 하체와 허리 근력을 키웠던 것 같습니다. 완도수고에 골프부가 창설되고 최 프로가 본격적으로 입문하는 계기가 되는데, 이때 추강래 현 문화원장님이 골프부를 이끌어 주셨죠.(맨 오른쪽 사진) 연습장은 지금의 현대아파트가 있던 자리예요. 아마추어 때도 상당한 비거리를 기록했었죠"


최경주 기념 골프연습장의 최 프로 이름은 어떻게 지었냐고 묻자, 장명일 대표는 "연습장을 연지 9년째인데, 최 프로가 제안했었죠. 그의 말을 듣고 세계적인 선수인데, 아직 고향에 골프장은 없지만 최 프로 이름을 건 연습장 하나는 있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최경주 프로가 고향에 오면 꿈나무들을 위한 원포인트 레슨이 이뤄지는데, 이게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아도 선수의 운명을 바꿀만큼 핵심적인 레슨이거든요" 
장보고 대사와 최경주 프로 중 누가 더 세계적일 것 같냐는 물음에, 장 대표는 "누가 더 낫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지금까지 장보고 대사에 비견되는 사람이라면 최경주 프로가 아닐까요"


"신우철 군수가 외국에 나가 최경주 골퍼의 고향에서 왔다고 하면 모두 와우! 원더풀! 웰컴하며 반긴다고 하잖아요" (계속)         

 

두번째 사진= 최경주 프로의 좌측에 서 있는 인물은 전남체육대회 스타디움 성화 봉송에서 첫 번째 성화주자였던 영원한 챔프, 돌주먹으로 세계를 제패했던 완도의 자랑스러운 아들 김봉준 선수로 김 선수는 1989년 WBA 미니멈급 세계챔피언 5차 방어를 성공했다. 

최경주 프로의 우측 인물은 전남체육대회 개막식 때 메인스타디움에서 두번째로 인계된 성화 주자였던 광주광역시청 역도부의 고광구 감독. 고 감독은 완도 역도의 1세대로 1993년 호주멜버른 세계선수권 대회 동메달과 1993년 상하이 동아시아체육대회 은메달을 획득, 2012 런던 올림픽 역도 국가대표팀 코지를 역임했다.

           

저작권자 © 완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