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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책, 산책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3.07.17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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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휴, 경기도 사는 딸 집에 손주를 보러 갔다. 매일 휴대폰으로 보내주는 사진과 동영상만 보고 있다가는, 몇 번 만나지도 못하고 금방 자라서 (미운) 세 살이 되어버릴 것 같아 다른 일을 제쳐두고 서둘렀다. 어릴 때 자주 만나서 외할머니의 존재를 각인해 놓을 필요가 있었다.


차를 가지고 가기로 했다. 회사 일이 바빠 동행하지 못하는 남편은 장거리 운전을 염려하며 기차를 권했지만 내게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으니, 우선 짐을 맘껏 가져가고 싶었다. 


김치와 쌀, 중고 앱으로 산 그림책 전집, 생협에서 산 여러 가지 생필품들을 실어야 했다, 그리고 우리 집은 고속도로 입구에 있다. 번잡한 시내 길로 송정 기차역에 가는 시간이면 벌써 정읍휴게소보다 더 북쪽 완주쯤까지 갈 수 있다. 하지만 더 절실한 이유는 내가 KTX 예약을 할 줄 모른다는, 바로 그 점이다. 


그리하여 텀블러에 카페인을 가득 담고 트렁크에는 선물을 가득 싣고 출발! 3시간이면 도착이니 쉬지 않고 한달음에 갈 수 있는데, 차를 위해 중간에 잠시 시동을 끄고 쉬게 해준다. 모처럼 길을 나선 가족 여행객과 빨간 관광버스에 탄 단체 축하객들을 구경하는 것도 즐거움이다.


녀석은 나를 ‘옴메’라고 부른다. 작년 가을 아파트 단지 화단 감나무 아래에서 영랑 시 ‘오매 단풍 들것네’를 낭송해 주었는데, 내가 너무 실감 나게 발음했는지 강렬한 감탄사가 그대로 나를 부르는 호칭이 된 것이다. 


하지만 딸의 말로는 내가 녀석의 작은 행동에 놀라며 매번 ‘오매!’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녀석은 그 동네에서 여러 가지 억양으로 남도의 ‘옴매’와 ‘오매’를 발화하는 아기가 된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오매’ 대신 ‘어머나’라고 하기로 한다.
역시나 나를 잊지 않고 옴매라고 부르며 반겨준다. 책을 한아름 안고 와서 말랑말랑하고 작은 몸피로 안기며 읽어달라고 조른다. 나는 안락의자처럼 앉아서 동화구연사가 되어 그림책을 읽는다. 커다란 명화집도 한장한장 넘기며 감상한다. 고흐 자화상이 가장 좋다며 자꾸만 되돌려 본다. 휴대폰이나 TV 영상을 전혀 안 보여주기 때문에 그림 보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거실에서 현관을 가리키며 ‘책, 책’이라고 말한다. 녀석은 아직 말을 못한다. 미끄럼틀은 미, 시소는 시, 줄여 쓰기도 아니고 1음절이나 2음절로 말한다. 꼭 첫음절은 아니다. 고구마는 ‘마’라고, 하고 사과는 ‘샤’라고 한다. 엄마 번역기를 돌려보니 ‘책’은 바로 ‘산책’이었다. 오매, 산책은 살아있는 책이구나. 모(자)를 쓰고 크(록스)를 신고, 스(쿠터)를 타고 밖으로 나(간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사람들이 인사를 건넨다. “놀러 가는구나.” 나는 녀석을 대신해 말한다. “저녁에 잠투정하면서 울어서 너무 시끄럽죠. 죄송해요.”


현관을 나가면 공기가 다른지 걸음이 나는 듯이 빨라진다. 민들레와 장미에게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들어 하늘의 새와 나무를 올려다본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쓰레기는 주워서 쓰레기통에 넣는다. 바(빠) 바(빠). 아, 아이 때는 다들 저랬구나. 가르치지 않아도 쓰레기를 줍는구나. 냥이와 멍멍이들이 멀리 보이면 가까이 올 때까지 한참을 기다린다. 작은 귀염둥이들을 실제로 보는 것은 놀라운 일이리라.


녀석이 유아용 스쿠터에 앉아 두 발로 밀고 가는데, 중간크기의 개미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스쿠터 바퀴에 치였는지 꼼짝을 않고 웅크리고 있었다. 잠시 들여다보고 있으니 기운을 차렸는지 비틀거리며 다시 보도블록 사이로 기어갔다. 멀어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다행이다. 


녀석이 스쿠터를 버리고 초록 이파리 우거진 벚나무 아래로 달려가더니, 붉은 버찌를 줍기 시작한다. 커다란 이파리 하나에 그것을 가득 모으더니, 다시 바닥에 부어버리기를 반복한다. 끙끙거리며 흙 속에서 찾아내 모은 예쁜 열매들을 다시 흙으로 보내버린다. 


오매! (어머나!) 티벳 스님들이 수십 가지 색 모래로 장엄하고 섬세한 만다라를 완성한 후, 커다란 붓으로 색 모래를 섞어서 가차없이 그 형상을 흐트러뜨린다던가. 우리가 이 생에서 모으고 쌓아 올리는 모든 것들을 다시 생각해 본다. 아파트를 벗어나 도로에서 눈을 사로잡는 것은 자동차, 자동차를 감상하는 지정 자리 육교 위에 오른다. 승용차는 그냥 보내고, 탑차나 구급차 고소 작업차 등 특장차가 보이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우와’ 감탄한다. 온갖 종류의 자동차가 강물처럼 흘러와서 흘러간다.

 

나는 욕심을 내어 신호등 색깔에 따라 차들이 멈추고 출발하는 원리를 가르친다. 육교 위에서 문득 생각한다. 어디를 그렇게 바삐 가시나요?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나요? 오래전 영화 ‘파리 텍사스’에서 주인공도 육교 위에서 황량한 고속도로를 향해 그렇게 울부짖었던가? 


이제 음악 시간, 포대기로 녀석을 등에 업는다. 사실 산책의 목적은 바로 이것, 녀석이 피곤해할 즈음 포대기를 둘러 녀석을 업어보는 것이다. 권정생 선생의 몽실언니처럼, 아니 몽실 할머니처럼 등에 업고 노래를 부른다.

 

길가에 민들레꽃 노랑 저고리, 
첫돌맞이 우리 아기도 노랑 저고리
우리 아기 불고 노는 하모니커는 
옥수수를 가지고서 만들었어요
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 
조롱조롱 거미줄에 옥구슬

 

어린 날 풍금을 치며 노래를 알려주던 선생님 얼굴이 떠오른다. 유년을 다시 살게 해주는 육아체험이다. ‘달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은 아껴두었다가 저녁 산책에서 불러줘야지. 


녀석을 업은 채 달리기를 해본다. 나의 체력 테스트, 아직은 내가 조그만 이 녀석을 업고 달릴 수 있다. 녀석은 무럭무럭 자라고 나는 빠르게 노쇠해져 가니, 업고 달리기는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이제 들어가서 낮잠을 재울 시간, 자장가를 선곡해 부른다. 브람스와 모차르트 자장가를 부르고 ‘은자동아 금자동아’도 부른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노랫말이 감당할 수 없도록 슬프지만 ‘섬집 아기’도 불러본다. 아무리 자장가를 불러도 등에 업힌 녀석은 ‘또또 노(래)’라고 노래를 신청한다.

 

 

 

강정희 강진대구중 교사
著 다정한 교실에서 20,000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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