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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면장이 군내버스 안내 도우미로 오라이~ 스톱!’

버스에서 만난 사람들

전호용 군외면장/1부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3.08.24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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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 완도의 첫 관문인 군외면은 나룻배를 두 번 타고 나서야 남창이라는 육지에 나들이를 할 수 있었다. 
이후 60년대 후반 완도대교가 개통되면서 덜커덩 퉁퉁거리는 달구지 같은 버스가 다녔고, 똑똑 껌을 씹으며 ‘오라이~ 스톱!’을 외치는 안내양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만원버스 학생들의 통학시간을 재촉했었다. 어릴 적 비포장도로에 금성여객이 다니면 휘발유 냄새가 너무 좋아 모두들 뒤꽁무니를 잡고 따라다니며 연거푸 가쁜 숨을 들이키곤 했던 옛 추억이 떠오른다.
70년대 후반 꼬불꼬불 비포장 길이 포장도로가 되면서 대중교통의 혁명이 시작되었고 지역 주민들이 이용하기 편리한 군내버스가 탄생하게 되었다. 
80년대 초반 군외면은 인구 4만명에 정기노선 여객선 금영호, 삼영호가 노화↔원동항을 다니며 상권 중심지로 매우 급부상하며 경제가 활발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군외면은 여객선이 단절되고 인구유입 감소로 지역상권이 무너지고 경기는 침체되어 있다.
그러면서 우리 지역에 주민들이 자주 찾는 시골 5일 장터들의 모습과 공기도 예전과는 사뭇 다르게 변화되었다.
옛말에 ‘허망한 남창장’이라는 유행어가 있을 정도로 원동장이 활성화되었던 시기가 있었으나 지금은 반대로 원동장이 사라지고 남창장이 번성기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변화이다. 이유는 도로교통의 발달로 군외면 소재지인 원동리보다 남창이 지역의 중심지로 부각되며 강진, 해남, 완도 인근지역의 경제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군외면을 운행하는 군내버스는 완도읍 공용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해서 청해진 장보고의 얼이 깃든 동부길과 코타키나발루 못지않게 해변의 석양이 아름다운 서부길을 30여 분간 달리면 원동터미널을 경유하고 완도대교와 남창대교를 건너 종착지인 해남 남창터미널에 도착하게 된다.

 

8월 22일 여름이 지나간다는 처서를 앞두고 원동 버스터미널에서 남창장을 향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면서 옆에 계신 어르신께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아버지~ 날씨도 더운데 이렇게 일찍 어디가세요?
”아~ 병원에 가서 물리치료도 받고 시장도 좀 볼라고 나가는데, 누구시까?“, “아이고~ 우리 면장님 이구만~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하고 그때 면민의 날 때 내가 봐서 잘 알제~”
“면장님 아부지, 엄니도 나하고 친구였어~”
“어째 고향에 오니 좋제? 우리 아들도 서울에 있는디 면장하고 친구라 하데........” 
어르신과 이런 저런 안부를 물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쯤 도착한 녹색이 선명한 군내버스에 바로 몸을 실었고 오늘 하루 군내버스 교통안내 도우미의 ‘오라이~ 스톱!‘ 일정이 시작되었다. 
1986년 원동검문소에서 군복무시절 군내버스를 검문하면서 타본 이후 무려 37년 만에 다시 타보는 군내버스라 매우 설레이며 낯설기만 했다. 
남창장에서 장보기를 마친 후 양손에 무거운 물건을 가득 안고 버스에 오르는 어머니에게 “엄니 내가 도와주께~ 먼 맛있은 걸 이렇게 많이 사셨어요?” 
“응~ 대전서 손주들 온다는디 집에는 묵을 것도 없고 해서 맛있는 것 좀 해줄라고 오늘 장 쬐끔 봤소~”
“근디 면장님이 왜 반질한 자가용 놔두고 세상에 버스를 다 탔다요?”하며 궁금해 하시어 “군내버스를 이용하시는 어르신들의 불편사항 등 현장의 소리를 들어보려고 한다”고 말씀드리며 동행을 시작했다. 
어르신들 목소리만 들어봐도 시골의 정이 물씬 풍긴다. 버스에 탑승해 계신 어르신들과 담소를 나누면서 이런 저런 불편사항에 귀를 기울여보았는데....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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