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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신문 창간 33주년 프롤로그/당신의 처음은 무엇입니까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3.09.01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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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

이제 끝났다는 말이 들려왔다. 
하지만 노인은 청새치를 끝끝내 끌어올렸다. 상어는 끝에 끌을 더한 끝. 노인은 헤밍웨이였다. 


다음이란 없다. 그래서 지금은 끝나지 않은 것이고, 끝날 수 없는 것이며, 끝내서도 안되는 것.
모든 것은 얼마나 그걸 원하는가에 대한 인내력의 시험. 
시험의 고통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극한의 고통이란 가보지 못했던 세계의 진입으로써 상상할 수 있는 어떤 것보다 좋은 것이라서 선물이고 축복 같은 것.. 
말하자면 냉정과 열정 사이의 일, 더 엄밀히 말하자면 냉정과 열정을 오가며 둘의 시공간을 좁히려는 사력의 분투. 


그렇게 1/1000초를 줄이려는 포뮬러 F1의 숨 막히는 사투, 언어의 질주가 시작됐다.
언어의 전위성에 대한 밀착에 밀착, 가급적 최대한 밀착하려는 언어의 반란성은 언어의 브레이크에서 풀려난 10만 활자들을 일렬종대 모두 헤쳐모여! 


변화무쌍한 언술의 변속 기어를 넣고 탐구하는 문장의 영감이 격정하는 번개처럼 내달려 사방천리 밖으로 튕겨져나갈 듯한 곡선주로를 맞아선 중력을 거부하는 완벽한 단락의 코너링으로 가상의 레코드 라인을 따라 눈부신 느낌표로 날아가 냉열정의 물음표를 포획하는 희대의 일격!


하나의 외침과 하나의 화염, 하나의 관통으로 언어의 폭죽이 터지는 순간에 귀를 찢을듯한 타이어의 비명 소리와 고막이 녹아버릴 것 같은 마후라의 신음 소리, 불같이 뜨겁게 달아오른 엔진의 교성이란.


진공상태에 그대로 갇힌 냉열정은 어디로 빠져나갈 수 없는 절대적 균형 속에서 마침내 불가해적 모순을 풀어내 4백조개의 세포들을 일거에 일으키며 활자의 뜻을 거느린다. 


모든 날카로움과 어지러움을 깎고 풀어 낸 한줄기 생명의 빛으로. 세상의 티끌 하나하나를 비추고 껴안아 영원히 움직일 수 있는 힘으로 영원을 멈춰 세운다.
죽음이 완벽한 자유라면, 그 자유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겠다. 온몸이 너덜너덜하다.

하지만 어떤 가치의 이름으로 행동하는 것이었기에 완벽한 웃음이 그곳에 있다. 


그래서 노인은 죽어가는 순간에도 홀로 웃는 것이었다. 


그는  처음이란 성씨와 시작의 이름으로 마침내, 끝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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