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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필휘지로 그려 낸 가을의 첫 배경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23.09.01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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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길어서 흔들리는 가을. 그 배경이 고요하기 때문에 가느다란 목이 보인다. 어느덧 찬바람이 나니 목을 불쑥 올라온다. 나락, 코스모스, 쑥부쟁이, 강아지풀이 달그림자까지 올라온다. 


누가 기다리지 않아도 기다릴 것 같은 초가을은 애잔한 슬픔이 밀려온다. 단조롭게 타전을 친 귀뚜라미는 현재의 고요함을 누구에게 전하고 싶은 것일까. 계절은 수많은 꽃을 피고 지게 하는데 그것은 아마 쓸쓸함을 알기 위해서다. 


시간에 쫓기지 않기 위해선 아주 천천히 단조롭게 걷는다. 마치 음악 캐론 코드처럼 단조로운 코드 진행으로 반복해서 듣는다고 해도 지겹지 않다. 초가을의 움직임이 단조롭지만 그 내용은 충만하다. 가을의 움직임을 보고 있으면 빈 마음이 된다. 농부가 열매만 보고 농사를 짓지 않는다. 곡식이 익어가는 배경을 본다. 그러므로 마음도 감사하게 익어간다. 강아지풀은 어린 날부터 잘 아는 풀이다. 


특히 강아지란 이름을 달아서 그런지 비교적 빨리 아는 편이다. 흉년이면 강아지풀 씨를 먹었다고 한다. 볏과에 속하며 이를 변형한 조 농사를 짓는다. 자연에서 야생화는 항상 그곳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우리의 삶처럼 그들도 길을 만들어 걷는다. 지난해에 그 꽃을 생각하고 찾아가면 안 보인다. 자연은 자유롭다. 자유의 길에서 생명을 담보로 움직인다. 아무 욕심 없이 무심히 걷고 있으면 무엇인가 새로움이 발견된다. 누구도 이해 못 하는 방법으로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언덕길, 산길, 들길을 가면서 자기만의 쓸쓸함을 느낀다.

 

눈물 없는 애잔한 슬픔이 오늘의 쓸쓸한 음악이 된다. 혼자만이 외로움은 오히려 앞으로 나아가는 동력이 될 수 있다. 바람에 서서히 움직이는 배경은 나를 바라보고 있고 산 넘어 느릿한 흰 구름이 방랑자의 길이 되어준다. 강아지풀은 허리가 가늘고 나약하다. 그러나 바람에 절대 쓰러지지 않는다. 잎과 모아지 그리고 하늘 끝에 열매를 달아 놓았다. 화폭에 일필휘지로 그려낼 수 있는 간소한 식물이다. 9월의 처음은 이렇게 간소하게 가을을 맞는다. 


간소함은 현재성이 강하다. 순간순간 선택하여 그 구체성을 보아야 한다. 현재 살아 있구나 하는 생생함을 느낄 수 있다. 가을의 첫소리는 바흐 G 선상의 아리아다. 


가장 맑고 깨끗한 소리가 느릿한 배경이 된다. 하늘 한가운데에 핀 가냘픈 코스모스 꽃잎도 음악이 된다. 목이 길어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음표를 달고 움직인다. 가을은 풍성하다. 그러나 소유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그 배경을 사랑하므로 마음이 풍요롭다. 초가을 느낌은 오감을 작동하게 한다. 그것은 모든 게 비워가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현재 감각이 전이되고 있는 상황은 부드러운 목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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