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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 먹으로 갈래? ‘완도 참전복’

지난해, 전남 어가소득 조사 결과
기후변화 어획량 감소 어선어업의
고소득 어가 수는 다소 줄었으나
어패류 양식 가공 유통 분야에서
큰 증가세 지역별로는 완도 26.7%
가장 큰 주력 상품은 완도 참전복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3.09.15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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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전남도 어가소득 조사 결과, 연 소득 1억 원 이상 고소득이 2천501어가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1인 가구 증가 추세에 따라 가정간편식 개발 등 소비유형 맞춤 전략과 판로 차별화와 양식시설을 규모화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업종별로 전복 굴 꼬막 등 패류 양식이 721어가로 가장 많았고, 김 미역 등 해조류 양식 622어가, 굴비 등 가공 유통 483어가, 넙치 우럭 등 어류양식 293어가, 어선어업 237어가 순이었다.
기후변화로 어획량 감소에 따른 어선어업의 고소득 어가 수는 다소 줄었으나 양식시설 현대화로 어패류 양식과 가공 유통 분야에서 큰 증가세를 보였다. 지역별로는 완도가 669어가(26.7%)로 가장 많았다. 주력 품목은 역시 완도 전복이었다.
그런데, 완도전복이 난데없는 수난시대에 직면했다. 최근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로 인한 수산물 소비 부진으로 소비가 급감하면서 전국 최대 생산량을 자랑하는 완도군과 전남지역의 전복양식 어가들은 파산을 염려하는 실정까지 이르렀다. 수산물 소비 부진은 양식어가와 유통 상인들에게도 피해가 이어지고, 판매 저조로 전복 가격은 연일 폭락에 폭락을 거듭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전남 남해안이 연일 고수온으로 어류 폐사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바닷물이 차가운 진도 연안까지 양식전복 피해가 확산 중이라고 한다. 추석 대목을 앞두고 피해가 속출하면서 전남도는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갔다고. 
전복은 비싼 가격으로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웠으나 수산양식으로 공급량이 늘어 가격이 저렴해진데다 건강식품으로 알려져 소비자로부터 꾸준히 관심을 받아 왔다. 다시마, 미역 등 갈조류를 먹고 자라서인지 내장이 검을수록 먹이가 잘 소화된 것으로 효능이 좋다고 한다. 
전복에는 타우린이 다량 함유되어 건장하면 표면에 흰 가루가 생긴다. 이것이 타우린이다. 타우린은 담석을 녹이거나 간장의 해독기능 강화, 콜레스테롤 저하, 심장 기능 향상, 시력 회복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완도군은 시력에 좋은 완도산 전복음료를 개발하기도 했다.
조선시대 어류도감인 자산어보에는 전복을 복어(鰒魚)로, 본초강목은 석결명이라 기록했고, 아홉 구멍이 난 소라라는 뜻인 구공라(九孔螺)라고도 불렀다.  
대부분 사람들은 전복을 조개 종류로 알고 있다. 그러나 조개류에 있는 좌각과 우각 두 장의 패각을 갖는 것이 특징인 이매패강이 아닌 복족류에 속해서 몸통 구조가 달팽이나 소라와 더 가깝다고. 
등살과 껍데기는 패각근이 강한 근육으로 이어져 있고, 발은 크고 넓으며, 보통의 조개에 없는 치설이 있는데, 이것 역시 달팽이나 소라, 고둥과 유사하다. 달팽이와 유사한 대촉각과 소촉각이 존재하는 것이 전복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오래전부터 중국에서는 전복을 말려서 먹었다. 건전복이다. 건전복은 한국에서도 먹지만, 그것보다는 중국인들이 매우 좋아하는 식재료이다. 대개 육수용으로 쓰이거나 며칠 동안 불려낸 다음 찜으로 쪄서 먹는데, 생전복 맛과는 확연히 구분되어 건전복을 사용한 요리가 훨씬 더 비싸고 더 값진 요리로 취급받는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말린 것은 건복, 살아있는 것은 활복으로 구분해 불렀다. 한양까지 공납품으로 전복을 잡아다 바치던 조선시대 이야기다.
말린 전복이 옛날부터 귀한 취급을 받은 이유는 전복 자체가 귀한 것도 있지만, 전복을 말리는 작업이 어렵기 때문이었다. 전복은 부패하기 쉬워 빠른 시간에 말리기 위해서는 날씨가 뒷받침 해줘야 했다. 과거에는 날씨 예측이 어렵고 날씨가 좋더라도 때맞춰 잡힌다는 보장도 없기에 전복을 말리는 작업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바다의 황재로 등극한 전복. 그렇다면 전복은 언제부터 사람들이 먹기 시작했을까?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려고 사신을 보내 구하고자했던 품목에 들어갈 정도로 전복은 귀한 존재였는데, 중화요리 확산으로 일반에 널리 알려진 것으로 대부분 인식한다. 
그런데, 지난 2005년 완도의 여서도 패총에서 신석기인들이 전복을 먹은 흔적을 발견했다. 거기에서 낚시도구, 질그릇, 각종 석기류, 토기류 등이 나왔고, 특이한 것은 전복 껍데기를 비롯해 패총과 어류의 뼈가 대량으로 발견된 것이다. 
6천년 전 신석기 시대 흔적으로 완도 사람들은 태초부터 전복을 즐겨 먹었다는 놀라운 발견이었다. 완도 체도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여서도 유적발견으로 완도는 옛날부터 사람이 거주하기에 완전한 지역이었음을 분명하게 알리는 증거가 됐다. 
이제, 완도산 전복은 역사적 유래가 가장 빠르다.  누가뭐라해도 전복의 고장은 완도가 유일하다.

정지승 문화예술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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