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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운동화를 신고왔다 천리행군의 전투화였다

  • 김형진 기자 94332564@hanmail.net
  • 입력 2023.09.27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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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같이 운동화를 신고 왔다.(사진 0)
노란바지에 보랏빛으로 물들인 머리결, 자유로운 마인드가 인상적인 맨토, 신은주 두다 대표. 


첫번째 워크샵(사진 1)에서 톡 까놓고 하는 말이 의회서 의전도 중시해달라는 주문이 있었다고. 그런데 그냥 보고만 가는 게 의미가 있겠는가! 정책을 결정하는 의원들의 마인드가 성숙한 지방자치를 이끈다면서 형식보다는 내용이 더 중요하다고 하자, 의원들 또한 하나같이 바라던 바라는 답변. 그렇게 계급장을 떼고 나서 토요일과 일요일 1박 2일간의 천리강행군. 


천리행군 끝에는 취재기자까지 포함해 단톡에 가장 인상에 남았던 장면 하나를 제출하라는 엄명이 내려졌다.
창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학사이자 출판사로  ‘창비 부산’은 동구 옛 백제병원 건물 2층에 있다. 


김양훈 의원이 입구에서 바라보고 있는 건물이 국가등록문화재인 백제병원으로(사진 2) 이곳은 1927년 최용해 의사가 건립한 부산 최초의 근대식 개인종합병원 건물이다. 계단과 건물 곳곳에 조심조심 걸어달라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사진 3) 외부는 물론이고 2층 창비 부산에도 문화재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사진 4 5)


작가의 방이 따로 꾸며져 있고 가운데 전시실에는 많은 책이 비치되어 있다. 그 중 아래에 흰 스티커가 붙은 책은 창비에서 마음껏,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다음은 세칭 ‘깡깡이마을’  부산 영도 대평동, 쇳내 나는 조선소와 부품상, 공구점이 밀집한 거리는 지금 ‘깡깡이예술마을’이라 불리는 산업 관광의 ‘핫 플레이스(hot place)’다. (사진 6 7 8 9) 


이곳 영도는 개항 이후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의 어업전진기지와 조선소가 속속 들어섰다. 그러자 피폐해진 전국 농어촌에는 “부산에 가서 깡깡이질이나 하여보세”란 한탄이 울려 퍼졌다. 다시 1970년대, 원양어업 붐으로 조선소들이 들어서자 ‘깡깡이 아지매’들의 망치소리도 함께 되살아났다. 홀몸이거나 무작정 도시로 나온 젊은 여성에게 그만한 일거리도 드물었다. 


‘깡깡이’는 힘겨운 노동이었다. 줄에 매달려 덜렁대는 디딤틀(‘족장’ ‘아시바’)에 걸터앉아 뱃전의 녹을 긁고 떨어내는 일은 극도로 위험했다. 자칫 디딤틀에서 떨어졌다간 십중팔구 불구 아니면 식물인간이었다고. 신 대표의 말은 대부분이 난청 환자였단다.


그리고 다대포 해수욕장.
이때가 저녁 무렵, 조영식 부의장이 이제 행군 초입인데 스트레스를 받아서인지 갑자기 멘토인 신 대표에게 "무척, 실망스럽다"는 말. 이어 조 부의장은 "우리는 화흥포와 당목항의 경관과 비슷한 곳을 벤치마킹해 그곳의 경관을 도입하고자 하는 것이 주목적인데, 이런 대도시의 경관이 무슨 목적에 부합하느냐"고 전했다. 


멘토로서 이런 경우는 경험하지 못했는지, 사자머리를 휘날리고 뛰어오던 신 대표의 얼굴이 1박 2일동안 가장 붉어지던 순간. 꺾이지 않을 것 같은 창창한 사자의 갈기가 금새 푸들의 부드러운 머리칼로 급변신. 


신 대표의 말은 "공공디자인에 대한 결정은 어느 한 두사람이 결정해선 안된다. 주민과 외국인근로자, 관광객들, 행정 의회 언론 거기에 역사성과 독창성 등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공공디자인의 완성도를 높게 한다"며 "그런 취지가 담긴 곳을 보러~왔~지~용" 


그 짱짱하던 사자후가 초가을날 새벽녘의 한줄기 바람에 목덜미에 맺힌 이슬을 털어내는 갈댓잎의 목소리로 변했다. 왕년, 한가닥했던 조 부의장의 계산이 이것인 것 같다. 사진 5에서 "옥상에서 만나요" 책을 보면서 뭔가 한 방이 계산된 듯한 미묘한 미소. 5-1 사진을 보면 정말 사심없는 순수한 조 부의장의 심성이 엿보이는데 반해 사진 5는 뭔가 다르다 .  


그 군기 잡던 신 대표의 빡빡함이 고분고분.(사진 10)
다음 날 아침 6시 30분 기상. 조식 후 부산항 친수공원,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아주 핫한 해운대 블루라인 파크(사진 11)를 둘러보고, 남해로 출발, 미조항과 스페이스 미조라는 복합문화공간을 답사했다.(사진 12 13 14)


사진 13은 조인호 의원이 35~6년 전, 28사단에서 현역 복무 당시 구타가 심했었는데, 자신이 이등병일 때 말년 병장의 선임이 구타가 일어날 때마다 "완도촌놈"이라 부르며 구해주던 선임을 35~`6년만에 해후하면서 우의를 다지는 모습.


그렇게 사진 14에서 마지막 컷을 남기고 각자 왔던 길로 돌아가 도착했던 시간이 밤 9시. 천리강행군으로 도착하자마자, 넉다운. 그대로 꿈나라. 
그런데 밤 열시쯤 신은주 대표의 단톡 문자.  


"주유소가 모두 문닫은 시간. 차에 기름이 한방울도 남지 않아 난감한 그때, 노숙하던 차 밖으로 속없이 너무도 좋게 들리던 완도읍 물양장의 파도소리처럼" 
"겉모양이 화려한 것보다 내면ㆍ내실이 중요한 진정으로 완도군민을 위한 고민과 실질행보에 기억의 끝자락에서나마 도움되는 시간이셨기를 바란다"는 문자. 
아, 끝까지 사자의 기개를 잃지 않는다. 


그리고 PS(추신)로 토의 시간의 과제, 진짜 목적을 드러냈는데 문제로 제시됐던 내용의 해결과 답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을 '직접' 선정하고 이유와 완도 적용 방안(장소ㆍ방법 등)을 메시지로 전송 바란다는 것. 

 

 

기자한테까지 이러나 싶다가 농으로 한 약속도 약속이니, 사진을 보내주고 난 후 꿈 속에서 쓴 글로 send(보냄). 


저럼, 저 말이 뭔 말인지 풀릴 때까진 더는 귀찮게 안하겠지. 은유는 풀릴 수 없는 마법이니까.

 

햇살이 껴안을 땐 환하게 부끄럽다가
달빛이 내려올 때면 뜨겁게 수줍어지겠죠
부끄럽지만 부끄러움이 없고 
교태롭지만 교태롭지 않아요
밤이 깨어나면 
눈에서 사라지겠지만
밤이 잠들면 
놀라운 특성은
온갖 발작을 일으켜 
당신을 기다리겠죠
파랑물결로 다가와 
보랏빛으로 껴안아주세요
별의 떨림이, 
모두 다 녹아내릴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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