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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랏빛 새벽창으로, 훌륭합니다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3.09.27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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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랏빛 야국 
 
보랏빛 향기
창 너머
별빛으로 오시네요 
 
딸깍,현관문이 열립니다.
현관 밖에 있는
신문을 집안에 들여 놓습니다.
식탁에 신문을 올려 놓으니
손님이 앉아 있는 것
같습니다. 
 


이른 새벽 내가 해야할 일에 집중하고 무엇이 중요한지 생각과 행동을 일치하기로 합니다. 먼저 침대 정리하고 힘차게 하루 엽니다. 
선물과 같은 순간입니다.
단순함으로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합니다.


생각을 줄이고 움직입니다. 머리속에 해야할 일의 순서를 세워봅니다.해야 할일을 하지 않으면 하고 싶은 일을 해도 행복하지 않고 마음 한구석이 불안해짐을 깨달았습니다.
마음이 무엇이기에 일단 마음을 먹으면 몸은 그저 따릅니다. 
보랏빛 새벽 창으로 밀려오는 가을의 고요를 살며시 눈감고 순간을 느껴 보기도 합니다. 
영혼의 양식을 흡입하는 것 같아요. 


풀벌레 울음소리 별들의 노래처럼 귀에 빛나게 들려오네요. 밝아오는 아침이 훌륭합니다. 슬슬 머리카락을 질끈 묶고 팔을 걷어부치고 부엌으로 들어가 볼까요.
행동의 다음 작동 스위치를 누릅니다. 
주변을 말끔히 정리하고 삶의 요리를 시작해 볼까요. 칼을 갈지 않아도 잘 썰리는 애호박이 무대의 주인공으로 싱싱해요. 호박볶음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요리는 재료가 진심이어야 해요. 시장에서 애호박 고르던 순간이 풋풋하네요.눈치 빠른 그녀가 내 눈길 가는 곳에 애호박 하나 더 얹어주셨어요. 발빠른 센스에 굳이, 양을 찾은 건 아니지만, "그 거 주세요" 빠른 선택을 했어요.
빨강 바가지를 엊그제 녹여 먹었어요.
집중이 너무 지나쳐 종종 있는 옥에 티죠.


어쩔 수 없이 차선으로 이쁜 분홍 바가지를 꺼냈답니다.재료들의 싱싱 함이 분홍처럼 좋아요. 
삶이 정성스러운 애호박이 훌륭해요.
애호박을 분홍바가지에 놓고 맑은 물에 씻었더니 이슬방울 맺힌 듯 뽀득하게 이쁩니다. 
도마에 애호박을 올려놓고 돌고래가 그려진 칼을 들고 다다닥다다닥... 동글동글 애호박을 썰어요. 호박이 도마에 차곡차곡 안착이 좋아요.하얀 양파 붉은 당근 체 썰고 육쪽 마늘도 껍질 벗겨 쓸어 넣었습니다.후라이팬에 올려진 호박이와  이쁜 그들입니다.


가스렌즈에 불을 켜고 새우젓 간을 맞추고 들기름 두르고 참깨를 듬뿍 넣어 마무리 하니 호박이 예술을 입었어요. 스스로 쓰담쓰담 칭찬을 합니다. 
부랴부랴 출근을 합니다. 같은 시간,같은 장소의 길을 지나다 보면 낯선 풍경 익숙하게 들어옵니다. 지하철 입구 사계절 군고구마와 옥수수를 파는 작은 가게가 있어요.
아침에는 남자가 문을 열고 오후에는 여자와 함께 장사하는 것을 보면 둘은 부부지 싶어요. 문을 여는 시간도 닫는 시간도 정해져있지 않는 듯합니다. 어느 때는 늦은 아침해가 떠도 문은 열려있지 않아요. 무표정한 그 남자 마음인가 봅니다.
손님이 오면 오는 갑다 가면 가는 갑다 친절함은  찾아보기 어려워요.


군고구마와 옥수수 자체가 물건이 좋으니 살 사람은 삽니다. 언젠가 늦은 아침 옥수수 10개를 "주세요."했는데 그날은 남자가 일진이 좋은지 해맑은 얼굴을 하고 "감사합니다"인사를 합니다.
옥수수 봉지를 받아들고 지하철을 탔습니다. 그날 10개의 옥수수를 함께 나눠 먹던 얼굴들보다 그 남자가 더 밝게 기뻐했던 기억이 남아요. 출퇴근 오가는 길에 그 남자의 표정을 살피는 게 자연스런 루틴이 됐어요.


'오늘도 간신히 나오셨군요.'
속으로 인사 합니다. 그 무표정한 남자가 일찍 나와 대빗자루로 주변을 싹싹 깨끗이 쓸어댑니다. 여전히 표정이 없습니다. 그 남자의 얼굴을 지나 다시 지하철을 탔는데 옥수수 10개 샀던 그날의 얼굴이 스칩니다.
"옥수수 10개 주세요"


빗자루질이 다 끝나면 첫손님이 되어 옥수수 웃음으로 개시를 해주고 싶습니다. 
평생을 장사만 하다 놀아가신 아버님의 기일이 어제였습니다.


게으름을 모르시던 아버님은 새벽보다 더 빨리  일어나셔 생선을 도매상에 떼어 트럭에실고 하루치 생선을 모조리 팔릴 때까지  종일 외딴길을 다니녔습니다. 
비가오나 눈이오나 치매 걸리셔 운전대를 놓으실 때까지 아버님은 유람하시듯 즐기시는 것만 같았습니다. 
어느 폭풍우 심한 날 버스와 부딪히는 교통사고로 생과 사의 경계에서 왼쪽 다리에 장애를 입으셨습니다. 그러고도 다시 운전을 하시며 새벽에 일어나 장사를 준비 하시고 밤이 되도록 다 팔고 집으로 오셨습니다.


아버님이 워낙 생활력이 강하셔 장애인이라는 걸 잊었습니다.
치매 걸려 운전을 하실 수 없는데도 늘 그때를 그리워 하셨습니다.
오랜만에 아버님 기일을 맞아 온가족이 한상에 둘러앉아 담소를 나눴습니다.
시집 식구는 10년 세월이면 가족으로 여겨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근 30년이 되어가니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거 같습니다.


내게는 더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큰 형님께서 제게 얼굴이 편안해 보인다고 하십니다. 정말로 마음이 편안해 졌지 말입니다. 지난 모든 시간까지 따뜻하게 여겨졌습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의 삶을 살다가신 아버님 위해 붓을 들어 보랏빛 야국을 그리고 싶습니다.

 

이의숙 필수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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