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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발걸음 잠시 멈춰섰을 때

신복남 기자의 ‘어젯밤 어느 별이 내려왔을까?’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23.10.12 15:39
  • 수정 2023.10.13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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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그리움에 젖는다. 옆에 있어도 그립게 보고 싶다. 많은 사람 속에서 사람이 사무치게 그립다. 


가을 하늘은 높고 푸른 데에는 그리움을 많이 채우라는 뜻도 있을 거다. 이제 오후 가을 햇살이 닿는 곳마다 그 느낌이 다르다. 10월에 햇살은 은유의 색깔이 있다. 그리움으로 칠해진 수채화가 날이 갈수록 다르다. 10월의 꽃 중에 제1막은 쑥부쟁이, 취나물 꽃, 산국화, 강활, 억새꽃이다. 이렇게 한데 모여 피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모두가 생명이 짧기 때문에 서로 어울려서 피는지도 모른다. 


꽃이 질 때보다 활짝 필 때가 더 서럽게 눈물이 난다. 많이 피어서가 아니라 하나의 꽃잎이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마음이 가깝게 다가가 그와 함께 있음은 얼마나 행복한가. 들판에 지는 해가 아름답다. 노랗게 채색한 들판을 보면서 황홀하기도 하고 왠지 그리움과 쓸쓸함도 밀려온다. 북향을 향하는 산자락에 야생화가 많다. 


그리고 천박한 땅에서 자란 야생화가 예쁘다. 물과 영양분이 부족한 땅에서 살면서 그들 스스로 터득한 삶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없으면 없는 대로 공유하면서 산다. 스스로 몸짓을 줄이고 꽃도 작게 핀다. 
자연이 주는 만큼 그것으로 최선의 삶을 추구한다. 오로지 물과 공기만으로 아름다운 꽃이 된다. 


논가에 쑥부쟁이를 보면 잎과 줄기가 너무 커서 꽃이 안 보일 정도다. 영양분이 많아서 필요 이상의 몸짓을 키운다. 현대는 물질 만능 시대다. 필요 이상의 영양분을 몸에 쌓이니 많은 병이 생긴다. 야생화는 오늘만 만족한다. 내일은 내일 일이다. 오늘은 최고의 날이다. 하늘이 주는 만큼 곡식을 거두면 되는 것이다. 


내일이 걱정돼서 많이 쌓아 둘려는 욕심이 큰 화를 부른다. 겨울에 가장 추운 곳에서 견뎌내야만 야생화가 된다. 먹고 살기 편하면 상상력이 고갈된다. 너무 물질에 의존하면 그리움이 생기질 않는다. 돌자갈 밭에서 하늘의 도움이 필요한 이들은 가장 예쁜 꽃을 피운다. 온갖 욕심을 부리어 몸짓을 키우지만 예쁜 마음이 생기질 않는다. 
제일 맛난 음식이 생기면 먼저 사랑하는 사람이 생각나면 그것이 들에 핀 꽃처럼 아름답다. 있으면 흘려보내고 없으면 물과 공기 그리고 햇빛으로 만족하면 된다. 가을을 타는 이들이 많을수록 좋다. 변해가는 가을을 노래하고 있을 터이니 풀벌레 소리의 끝 소절이 애잔하다. 


가을 길을 걷는 이들도 잠시 멈춰있을 땐 눈가에 애잔함이 보인다. 쑥부쟁이, 취나물 꽃, 강활 꽃이라고 다시 한번 보다가 흰 구름 떠가는 하늘을 본다. 그 아래 저녁나절의 풍경이 보인다. 풀숲 사이에서 여기저기 피어있는 꽃들 사이에서 그리움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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