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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탯자리에 들어서다

백두산 등정기 1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3.10.19 15:24
  • 수정 2023.10.20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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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다시 한 번 더 오리라고 마음 속으로 굳게 약속은 했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기회를 만들지 못해 계속 미루고 있었는데, 지난 칠월 어느 날 지인이 카톡으로 연락을 해와서 21년만에 다시 우리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에 올라 천지를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가을비가 대지를 촉촉하게 적시고 있는 한밤중에 칠흙같은 어둠을 뚫고 홀로 출발지인 청주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아침이 밝아왔는데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어 들뜬 마음을 식혀주고 있었다. 먼저 도착해있던 일행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서둘러 출국수속을 밟은 후 설레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처음 백두산을 찾았던 2002년 8월에는 우리나라에서 중국 길림성 내의 연변조선족자치주 주도(州都)인 연길로 가는 직항노선이 없었다. 그래서 광주공항에서 전세기를 타고 북경공항으로 갔다가, 북경에서 중국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연길로 이동하는 경로를 이용했었다. 이번에는 연길로 곧장 가는 직항로를 이용해서 빠르고 쉽게 이동할 수 있어 시간을 많이 절약할 수 있었다. 


비행을 시작한지 한 시간이 지났을 때 창문 아래로 아스라이 보이는 동해바다와 접한 지역을 지나고 있었는데, 호기심에 카메라에 담기는 했지만 나중에 사진기록을 봐도 위치 기록이 없어 정확히 어디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추측컨데 러시아나 중국의 해안 상공으로 비행했을 것이라고 생각만 할 뿐이었다. 


비행한지 두 시간이 조금 더 지나 목적지인 연길공항에 사뿐히 내려 입국수속을 밟았는데, 곳곳에 한글과 한자가 나란히 쓰여있어 중국에 왔지만 왠지 친숙함을 느끼게 한다. 수속을 끝내고 입국장에 들어서 팻말을 들고나와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던 현지가이드를 만나 공항 밖으로 나오니 비가 내렸던 우리나라와는 달리 가을빛이 살짝 묻어있는 맑은 하늘이었다. 대기하고 있던 버스를 타고 공항에서 멀지않은 곳에 있는 식당에서 물냉면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는데, 우리나라의 물냉면과는 같은 듯 다르지만 맛이 있어 그릇을 싹싹 비웠다. 


식사 후 먼저 찾은 곳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경도시 도문시로, 고속도로를 한 시간쯤 달려 도착했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희미해진 기억을 되살려보니 21년 전과는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도문시에서 마주한 두만강은 유행가 가사에 나오는 푸른 물이 넘실대며 흐르는 가미 아니고 변함없이 누런 황토빛깔의 물이 흐르고 있는 강이다. 중국과 북한을 잇는 유일한 통로였던 예전의 낡은 콘크리트 다리는 철조망에 가려 보이질 않았고, 대신 두 개의 다리가 있지만 중국인들을 제외한 외국인들은 다리에 접근이 허용되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도문대교 입구까지 갔지만 중국인 외에는 출입이 통제되어 있었고, 중국인도 입장료 25위안(4,500원)을 내야만 다리까지 갈 수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하는 수 없이 발길을 돌려 강가에 설치된 망원경으로 강 건너 북한 마을인 남양 마을(함경북도 온성시)을 볼 수 밖에 없었는데 건물들이 예전보다 규모가 더 커지고 현대식으로 보였다. 가이드는 1980년대에 큰 홍수로 피해를 입고나서 새롭게 마을을 건설했고, 주민들도 당성이 좋은 사람들만 이주시켜 살고 있다고 알려줬다. 


짧은 시간동안의 국경 구경을 끝내고 다음으로 찾은 곳은 연길과 인접해있는 용정시였다. 용정은 우리 민족이 일제강점기 때 만주로 이동하여 처음으로 정착한 조선족들의 탯자리와도 같은 도시다.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인 윤동주 선생이 졸업한 용정중학교는 1920년대부터 민족계몽운동의 요람이자, 반일 투쟁의 근원지가 되어 민족 해방 투쟁과 민족 문화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었다.

하지만 중국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 역사로 만들기 위해 2002년부터 중국이 추진한 동북쪽 변경지역의 역사와 현상에 관한 연구 프로젝트인 동북공정(東北工程) 정책의 영향인 듯 용정중학교를 방문할 수는 없도록 통제하고 있어 대신 용정시의 지명기원지인 용두레우물이 있는거룡우호공원을 잠시 찾았다. 


용정시를 출발하여 시내를 흐르는 해란강을 건너 이도백하진으로 가는 길의 왼쪽으로 산능선에 보이는 팔각정인 일송정을 스치듯 지나간다. 고속도로를 따라 두 시간을 달려 백두산으로 가는 관문도시인 이도백하진의 숙소에 도착해서 여장을 풀고 첫날 밤을 보냈다. 한국과 달리 중국에서 머무는동안 인터넷을 통한 뉴스나 정보 검색과 SNS 이용 등 스마트폰 사용이 쉽지않아, 본의아니게 스마트폰이 없는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처음에는 무척 불편하고 답답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체념상태로 현상을 받아들이니 그런대로 견딜만 했다. 


우리 일행이 찾은 백두산은 중국에서는 장백산으로 부르고 있는 중국 국가 5A급 여유경구인 최고 등급의 관광지이자 명승지로, 과거에는 전체의 90% 이상이 우리나라 관광객들이었지만, 지금은 반대로 관광객들의 대부분이 중국인들이라고 한다. 


백두산을 오르는 코스는 천지를 중심으로 동.서.남.북 네 개의 코스가 있는데 그중 동파를 제외한 세 개  코스는 중국 땅이다. 북파는 천지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천문봉까지 오르는 길이 경사가 가파른 험준한 지형이지만 도로와 편의시설들이 잘 정비되어있어 가장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고, 서파는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지형으로 접근이 쉬워 중국과 북한의 경계비가 있는 곳까지 올라가서 맞은편 장군봉에서 솟아오르는 장엄한 일출과 천지를 볼 수 있으며, 남파는 2018년에서야 일반에게 개방됐지만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하여 관광객들의 접근이 많지 않아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코스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현재까지는 북한 입국이 허용되지 않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중국 땅인 북파와 서파.남파를 통해서만 백두산을 오를 수 있다. 

 

 

이승창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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