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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함없이 가을에 만난 가장 오래된 친구

신복남 기자의 ‘어젯밤 어느 별이 내려왔을까?’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23.10.26 15:59
  • 수정 2023.10.27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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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과 나중 그리고 처음과 처음 사이는 꼭 걸쳐야 하는 시간이다. 생명이 시작하기 이전과 이제 생명이 시작하여 그 여정을 걸치는 동안 우리는 얼마나 가지려고 했는가. 고민이 깊었을 때 시간이 그 답을 가지고 있다. 이제 현재의 순간에서 수없이 시간을 나눈다. 


그만큼 하루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하루에 먹을 식량이 정해져 있고 하루를 살아갈 시간과 공간도 정해져 있다. 이 한계점에서 조용히 받아들일 일이 있는데 생명이다. 
이제 한해살이풀들도 그 짧은 기간에 맡은바 소임을 다했다. 들판에 추수가 한창이다. 그 시절 푸르던 날을 뒤로 하고 무한한 공간으로 흩어지고 있다. 우리의 삶도 길게 생각하면 길다. 


그러나 먼 우주에서 봤을 때 순간으로 간주한다. 온 산이 초록이었던 것이 이제 자기의 고유한 빛깔을 내고 있다. 계절은 태양을 바라보는 지구의 기울기다. 이 에너지 차이로 수많은 생명이 움직인다. 한 줄기의 빛이 경이로운 세계가 있다니 참으로 놀라울 따름이다. 죽음은 한 개인으로 봐서 멈춤이다. 그러나 인류 전체적으로 봐서 계속 이어짐이다. 


초록의 산들도 단풍으로 물들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저마다 다른 색을 띠고 있다. 유한한 생명은 모두 같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시각은 각각 다르다. 그동안 초록의 여정을 겪어오면서 앞서 떠나간 임들을 많이 보아왔다. 나이 들면서 고요하고 넉넉한 이들도 봤다. 아름다운 사람은 자기의 뜻 안에서 수없이 성찰하는 과정을 걸쳤을 것이다. 


변해가는 산빛은 작년과 다르다. 그것은 내 마음도 변해간다는 뜻이다. 너무 멀리도 아닌 가까운 산에서 무엇인가 상념에 젖는다. 그 상념은 멈춤도 있다. 여러 빛깔의 산 빛은 없음과 있음과 그리고 진행 행위다. 이제 습관적으로 흘려 보내는 시간보다 생각이 담아 있는 노력이다. 아직 움직임이 많아야 밥을 먹고산다. 


그러면서도 작은 텃밭을 가꾼다. 봄 산에서 피는 꽃도 지는 꽃도 아름답다. 떨어짐과 동시 생명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가을 산은 멈춤이다. 또한 내려놓은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내면을 지키기 위해서다. 가을 산 바로 아래 노랗게 핀 감국이 가을 햇빛을 맞는다. 서로 속사정을 알고 있는 듯하다. 이제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손이 아름답다. 가을의 풍경과 나무 그리고 늦가을 단풍은 눈을 감고 있어도 내 마음의 풍경이 된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도 물질적인 거래가 없어도 무엇인가 친숙함을 느낀다. 


가을 산은 늘 보아왔던 것들이 많다. 마음만 먹으면 금방 갈 수 있고 또한 나를 금방 알아챈다. 마른 소나무잎과 아슬아슬 피어 있는 산꽃이다. 지금은 구절초가 피어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오래된 친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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