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 알고 있는 조선의 진경산수화를 부르는 말이 동국진경이다. 우리만의 사상과 예술세계를 정립했다는 뜻이다. 중국의 사상과 예술세계를 그대로 받아들였던 이전 것을 벗어버리고 우리의 사상과 예술세계로 발전시켜 새롭게 하자는 것인데, 그 중 신지도의 원교 이광사가 완성한 것이 바로 우리의 글씨 동국진체이다. 이전에 없던 것을 원교는 우리만의 사상을 도입해 새롭게 완성했다. 

그뿐만 아니라 주자 성리학의 뿌리가 깊었던 조선 사회에서 원교 이광사는 양명학을 받아들였고, 그의 아들 영익에 의해 그것을 완성했다. 사상가 원교와 그의 아들이 연구한 양명학의 핵심은 인간 평등사상이다. 다산 정약용과 같은 실학자들에게 원교의 사상이 큰 영향을 미치면서 후기 조선 사회는 사상가와 예술가들에 의해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있었다.      

이들은 대다수가 남종화법과 문인풍의 격조 있는 화법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개성미를 작품에 표현하기도 했는데, 가장 한국적인 풍조를 이룬 조선 후기 우리의 사상과 예술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정치권의 보수적 성향이 득세함에 따라 추사 김정희가 중심이 된 사의적 문인화풍  영향으로 잠시 쇠퇴의 길을 걷는가 싶더니, 공재 윤두서의 맥을 이은 진도 운림산방의 소치 허련에 의해 남종화의 맥은 더욱 발전을 이룬다. 이후, 중국의 문인들에게 최고의 찬사를 얻은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 유배를 마치고 돌아와 원교 이광사의 예술혼에 깊은 감명을 받고 자신의 지난 잘못을 사죄하여 원교의 사상을 추켜 세웠다. ‘우리의 것은 우리가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동국의 시대가 완전히 열린 것이다.

“그 사상이 후대에 발전하여 동학사상을 이루고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뿌리가 됐다”며 도올 김용옥은 ‘호남학’ 강연에 빠짐없이 원교의 사상을 강조한다. 요즘 사상가의 눈으로 본 원교 이광사는 유배지 신지도에서 동국진체와 우리만의 사상을 완성한 것인데, 이것은 ‘한국학’의 시초다. 

앞서 양명학을 받아들인 해남의 공재 윤두서도 중국의 것이 아닌 조선의 것, 성리학의 관념이 아닌 백성들의 모습을 담은 풍속화와 대상을 그대로 표현한 사실주의 화풍을 남겼다. 공재 윤두서가 시대를 극복하고자 실험적인 화풍으로 접근했다면, 소치 허련은 공재의 남종화풍 사상의 그림을 그대로 수용해 발전시켰다. 그런 이유로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는 소치 허련이 예술혼을 펼쳤던 진도 운림산방과 그의 후손인 남농 허건이 활동했던 목포가 중심이 됐다. 

이에 해남군은 “공재 윤두서가 빠진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는 남종화의 도입 목적인 실험적 시대정신과 철학을 역행한 국제적인 행사”라며 적극적으로 행사에 합류하고자 하는 이유를 밝혔다. 그 주장대로 전남이 우리나라 남종화의 뿌리라고 한다면, 완도 신지도는 거기에서 예외가 될 수 없는 역사적인 현장이다. 남도에서 남종화의 숨결을 잇기 위한 실험 무대가 지금 눈앞에 펼쳐졌다. 이 행사는 전남에서만 열릴 수 있는 국제행사인 것이다.

그동안 목포와 진도를 주무대로 열리던 국제수묵비엔날레가 올해는 해남에서도 특별전 형식으로 열렸다. 공재 윤두서에게로 이어진 남도 수묵의 원류라며 평가받는 지역 사회의 위상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이다. 이번 열린 수묵특별전은 지극히 한국적인 자연환경을 간직한 지역에서 생명과 환경, 공존과 성찰을 주제로 전통수묵과 현대예술의 접목을 시도하는 의도로 기획했다고. 

특별전에서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붓과 먹으로만 그려낸 수묵화에서 벗어나 서양화, 설치미술, 판화를 비롯해 남도수묵의 역사를 영상으로 만든 미디어아트에 이르기까지 수묵의 고정관념을 깬 새롭고 다양한 작품을 시도했다.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흥미롭게 여기며 “한국의 노래, 춤, 영화, 드라마 등이 K컬쳐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세계의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며, “수묵 또한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자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한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지역사회에서 처음 시도한 ‘길 위의 인문학 수묵투어’가 눈길을 끌었다. 올해 4회 째를 맞는데, 관내 식당과 사무실에 걸려 있는 수묵의 가치를 알고 이를 특화해서 ‘지역상권의 음식 뿐 아니라 수묵을 감상할 수 있는 갤러리 제공’이라는 이미지를 부여하기 위해 마련했다. “일상의 공간에 걸린 수묵의 가치를 이해하고, 또 그 가치를 이해했을 때 지역에 대한 가치도 높아진다는 것을 경험한 기회였다”며 관람객들은 전했다.  

“종이와 먹, 그리고 물이 지닌 따스함, 특별한 묵향이 관람객의 지친 마음과 몸을 회복하게 하는 치유의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며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이건수 예술 총감독이 대회장에서 덧붙인 말이다. 

요즘 사람들에게는 치유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완도군도 해양치유센터를 신지도에 유치해 그랜드 오픈을 앞두고 있다. 치유의 목적이 최대 관건인 시대 흐름에 맞춰 문화예술을 접목한 해양치유사업에도 완도군이 더 관심을 갖기를 바란다. 지역의 문화예술가들도 사상가 원교 이광사의 정신을 받들어 ‘완도학’을 형성한 예술세계가 신지도에서 다시 펼쳐지기를 바라고 있다. 완도만의 보석을 캐내는 작업이 세계적인 행사인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합류로 진행되어야 할 터이다.

정지승 문화예술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