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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기운 느껴지는 천지에 올라

백두산 등정기 2

이승창
자유기고가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3.11.02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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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트레킹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북파를 오르는 셋째 날 아침이 밝았다. 주말이라 수많은 관광객들이 한꺼번에 몰려올 것으로 예상되어 서둘러 숙소를 출발하여 시내에 있는 셔틀버스 탑승장으로 향했다. 탑승장 광장에는 이미 수많은 관람객들이 몰려들어 서로 먼저 셔틀버스를 타기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전광판에는 이날 하루 입장객이 2만 명이라고 안내하고 있었는데,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성수기에는 최고 5만 명까지 입장이 가능하다고 했다. 가이드로부터 혼잡에 대비한 행동요령을 미리 들었고, 노련한 안내를 받아 다른 팀에 비해 비교적 빠른 시간에 쉽게 셔틀버스를 탈 수 있었다. 가이드가 알려준 주의사항은 한글로 쓰여진 펼침막이나 깃발 등은 일체 사용이 금지되어 있으니 천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때 단속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달라는 부탁이 있었다. 아마도 우리나라 관광객들의 백두산이라는 주장에 쐐기를 박으려는 속셈인듯 했다. 
숲길을 따라 50분 정도 달려 북파 환승센터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렸는데, 비가 내리고 있었고 천문봉 방향을 올려다보니 사방이 구름으로 덮혀있어 천지를 둘러싸고 있는 봉우리가 보이질 않아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일행은 우산을 쓰거나 비옷을 입고 서둘러 건너편의 또 다른 환승센터로 이동했다. 쉴새 없이 승합차들이 오가면서 관광객들을 실어나르고 있었다. 잠시 후 11인승 승합차를 타고 구불구불 갈 지(之)자로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천문봉으로 올랐다. 산을 오르면서 차창 밖을 내다보니 주변은 노랗게 단풍이 물들고 있어 가을이 깊어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20분 정도 위험천만한 산길을 달려 천문봉 아래 도착했다. 먼저 올라온 관광객들로 길이 빼곡히 차있어 앞사람의 꽁무니를 따라 밀려 올라가고 있는 형국이다. 
백두산 정상에는 746년 대분화로 생긴 칼데라 호수인 천지(天池)가 있다. 1962년에 체결된 조중변계조약)에 따라 북한과 중국의 국경선이 천지 수면 위를 나누면서 지나며, 전체 호수 면적 9.165 ㎢의 54.5%는 북한 땅이고 나머지 45.5%는 중국 땅이다. 천지의 수면은 해발 2,257m, 둘레 14.4km,평균 깊이 213.43m최대 수심은 384m이며, 수량은 19억 5500만 m³로 한반도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가장 깊은 호수로, 흑수(黑水)라는 별칭이 붙어있다. 빼곡히 들어찬 관광객들 틈을 비집고 좀 더 가까운 좋은 자리에서 천지를 내려다보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을 펼친 끝에 가까스로 천지가 제대로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구름으로 덮혀있던 천지가 어느 순간 구름이 걷히면서 검푸른 수면을 드러낸다. 
그때마다 관광객들의 환호소리가 울려퍼지고 천지를 카메라에 담느라고 분주하다. 나도 울타리를 따라 천천히 이동하면서 수시로 바뀌는 천지의 풍경을 눈에 담고 카메라로 찍느라 바쁘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천지를 볼 수 있다'는 말이 있을만큼 백두산 정상 주변의 변화무쌍한 날씨때문에 천지의 모습을 제대로 보기가 쉽지 않은데, 다행히도 우리 일행은 천운이 따랐는지 오랫동안 천지를 보면서 성스러운 기운을 얻었으니 백두산을 찾은 의미가 충분히 채워졌다는데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가슴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완벽한 그림은 아니었지만 천지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는데 만족감을 느끼고 다음 일정을 위해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산을 내려왔다. 
환승센터에서 차를 바꿔 타고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장백폭포(비룡폭포)와 세연담을 구경하기 위해 이동했다. 차에서 내려 폭포로 올라가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온 산이 노랗게 물들어가고 있어 가을이 깊어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폭포로 가기 전 한 개 먹을 때마다 10년을 더 살 수 있다는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고 온천물로 삶은 달걀 두 개를 먹었다. 광장을 지나 폭포로 가는 구간은 곳곳에서 지표면을 뚫고 보글보글 기포를 내고 하얀 김을 내뿜으면서 용천수가 솟구쳐오르고 있는데, 최고 온도가 83℃에 달한다고 한다. 
길을 따라 폭포와 가까운 곳에 있는 전망대로 이동했다. 천지의 물이 북쪽의 트여진 곳으로 흘러내려 68m의 장대한 폭포를 이루며 90도 수직으로 암벽을 때리며 떨어지는데, 그 소리는 멀리서도 들릴만큼 웅장하다. 폭포 옆으로는 천지로 올라가는 길이 열려있어 21년 전에는 천지 물가까지 갈 수 있었는데, 지금은 일부 구간이 산사태로 무너져내려 폐쇄됐다고 한다. 
21년 전 서파의 5호 경계비에서 출발하여 중국쪽 정상 주변의 봉우리 옆을 끼고 돌아 북파의 소천지(小天池)로 내려오는 종주트레킹을 했었고, 하산 후에는 시설은 허름하지만 양질의 온천수가 무한정 흐르는 온천에서 온천욕을 즐기면서 피로를 풀었었다. 하지만 그 종주코스는 자연환경보전을 위해 폐쇄되어 아쉽게도 일반 관광객들이 이용할 수 없다고 한다. 
장백폭포 구경을 끝내고 산을 내려오는 도중에 찾은 곳은 녹연담(사진)으로, 폭포에서 멀지않은 곳에 있었다. 세 갈래 물줄기가 하얀 띠를 이루면서 26m 아래 조그만 연못으로 떨어지는데, 물빚이 초록을 띄고 있었다. 장백폭포와 녹연담 구경을 끝내고 나서 셔틀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산문을 벗어나서 출발지인 이도백하진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하얀 눈으로 뒤덮힌 겨울의 백두를 찾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다시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북파에서 내려온 일행은 이도백하진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나서, 다음날 오전 귀국을 위해 버스를 타고 고속도로를 따라 마지막 밤을 보낼 연길로 향하면서 짧은 일정의 백두산 트레킹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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