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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할 말이 바다에 빠졌다

이의숙
필수노동자/에세이 필진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3.11.09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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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허름한 순간, 차갑지 않게 시원한 늦가을이 뒷골목에 꽉.차게 분다.낙엽이 이리저리 찾아든다.
무엇이든 주고 싶은 착한 가을인가.
가을이 오기전부터 가을앓이를 앓기도 하고 아무튼 어느 계절보다 어딘가 아파왔다.
가을이 좋아서 그랬나 보다.
어제보다 모든 면에서 좋고 좋아지고 있다. 이런 행복이 내게 어디서 온 걸까? 행복 조차 모르는평안. 내이름은 이 평안입니다.
가장 사치스러운 순간이라고 할까. 문득 사치스러움. 생각하다든 생각 하나. '사치스럽다'의 국어사전에 "나오는 뜻은 돈이나 물질을 필요이상으로 지나치게 분수에 맞지 않게 사용하다".쓰여 있다.
내게 사치스러운 것? 이 허름한 글을 쓰는 순간이다. 모든 감정을 한 데 모아 햇볕을 쪼이고 물을 주고 꽃을 피우게 하는 내생애의 최고 사치스러움. 내 허름한 영혼에 찾아온 빛과 같은 순간. 내안의 두려움을 벗는다.허름한 기억을 벗는다. 지금 평안에 이르러. 한 허름한 기억의 크리스마스 이븟날 밤. 허름한 집 앞으로  한 여자가 간다 겨울 한파가 난무하는 밤. 차갑게 내리는 한기를 느끼며 허름한 집에 수도가 얼어터질까봐 가고 있었다.
왜, 나만 이러고 살아야 하나. 
하얀 입김이 하악질 하며 품어내고 있었다.
그냥 걸었다. "도와주세요" 기도를 하면 누군가 도와줄 것같은 눈물이 왈칵. 쏠렸다. 거리의 불빛 조차 쓸쓸함으로 휘청거렸다.
종잡을 수 없는 불안덩어리 자체였다.
한파에 얼어버려라. 한파에 뇌를 얼리며 걸었다.진짜 두려움이 얼었을까. 
 그 허름한 집이 평안하다. 아득한 기억을 지나 오늘을 지금 여기에 산다. 춥지 않은 가을 밤이었다. 그럼에도 추울까봐 챙겨입은 옷이 조금 두터웠다. 작년 연말에 보고 올해 첫 모임이다. 내가 가장 힘들 때, 아니 가장 추울 때 만난 따뜻한 사람들이다.
"우리들은 일학년"
초등학부형들이다. 내 마음은 시도때도 없이 애들처럼 요동쳤고 나만 빼고 다들 평온해 보였다. 그것이 궁금했다. 
무엇이 나와 다를까.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마음이 평안할까. 교회 다녀서 그런가.
닮고 싶게 행복해 보였다.
따뜻한 햇살이 내게도 비추듯 좋은 사람을 만나면 내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것만 같았다.
나를 춥게 얼리던 허름한 집이 있고 그곳에서 함께 한 허름하지 않은 따뜻한 사람들이 있다. 사람과 흔적.
어떻게 지냈냐는 말에 스크린이 펼쳐진다.
올여름 태풍은 소문이 셌다. 게다가 지하방에 물이 샌다는 말을 듣자마자 마음과 몸이 그 집에 꽁꽁 묶여진 것 같았다.
해야할 일은 많고, 허리까지 아프고 천장에 물은 전기가 차단 될 정도로 뚝뚝 떨어지고 딸과 부산여행은 잡혀 있고. 
공사는 시급했다. 상황은 더 어수선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건 내가 겨울과 다르게 침착하게 어떻게 할까. 방법을 찾고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다. 한 번에 하나씩 하면 된다는 안정감이 있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 집만 생각하면 불안했고 도망치고 싶고 이내 우울했었다.
한번에 한가지씩 헤쳐나갔다.
여행을 진행하며 견적볼 설비기사와 약속 잡아놓았다. 기차를 타러가는 것도 걷거나  앉아 있는 것조차 불편한 몸을 끌고 딸과 함께 떠난 부산여행은 망쳤다. 딸은 속상에서 눈물을 감추는 게 보였고 나는 눈물조차 흘릴 여유가 없었다. 해운대 앞바다가 보이는 한의원에 침을 맞고 누워야했다. 서로가 해야할  말이 바다에 빠진듯. 삐걱대는 분위기로 끙끙대며 모래사장에 앉아 바다만 바라봤다.
이 기분은 어디서 오는 걸까. 바라만 봤을 뿐인데 왠지 나을 것만 같은 뜨거운 바다 기운이 느껴졌다. 몸이 따뜻했다. 한여름이 뜨겁지도 덥지도 않고 따뜻했다.
오랜 뼛속 냉기가 빠져나오는 것만 같았다. 
그 허름한 집에서 추위와 싸웠던 지난 시간들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꽃도 아니면서 유난히 차가움에 약하구나. 찬기운을 많이도 두려워하는구나.
하나도 즐겁지 않고 고통만 기억될 듯한 한여름 태풍오는 날 고질적으로 느껴왔던 깊은 우울감을 떨군듯하다.
몸이 조금씩 온기로 회복되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는 내가 얼었던 게다.
허름한 집의 낡은 기운에 내가 깔렸던 것이다. 태풍도 지나가고 허름한 집 공사가 마무리 되며 내 아픈 허리도 신기하게 깨끗이 나았다. 그 허름한 집은 나와 똑닮았다.
사람은 고쳐쓰는 것 아니라지만 그래도 고칠 때는 고쳐지는 게 있는 거다.
두껍아두껍아, 헌집 줄께 새집 줘라.
바라만 보았던 바다와 모래사장이 불안했던 내마음을 모조리 알아챘나보다.
허름한 집이 새 집 된다는 두꺼비같은 소식이 왔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의 하늘은 왜 그리도 맑은가.태양은 어찌 그리 따스한가. 
내마음은 이리도 평안한가.
이제 나도 행복이 어울리는 사람이 되는건가! 겨울 찬바람은 나를 강하게 만들었고 여름 뜨거운 바다가 나를 단단하게 했다.
내 삶의 바다가 별빛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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