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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목한천을 거쳐야 좀 더 정의롭게 눈물 나는 세상이 오고

신복남 기자의 ‘어젯밤 어느 별이 내려왔을까?’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23.11.16 15:11
  • 수정 2023.11.17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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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목한천의 계절이 다가 오고 있다. 아직은 낙엽이 달려 있어 늦가을 분위기는 있다. 계절의 징검다리에서 느껴오는 것은 개인의 감성 따라 다르겠지만 전체적 풍경은 그 계절에 따라 펼쳐질 것 이다. 

요즘 큰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덩굴성 식물은 담쟁이 잎과 송악이다. 송악은 사철나무다. 잎이 푸르지만 봄에 새잎으로 단장한다. 

물론 새순은 연하고 보기도 좋다. 우리의 삶에도 이렇게 살아도 손해 볼 것이 없다. 우리 어머니가 지나가는 자리는 늘 향기롭다. 어머니의 손때가 묻어나올수록 그 향기는 진나다. 낙엽이 지고 빈자리가 생긴다. 

이럴 때 어머니의 빈자리가 생각난다. 꽃이 지고 낙엽이 져도 그 향기와 꽃은 피어있다. 그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향기롭냐다. 흐린 가을 하늘 아래 그리움 하나 생각난다. 마음의 편지를 전하고 싶다. 

오늘처럼 느리게 가고 싶어진다. 강줄기가 굽이 돌아가듯 우리의 삶도 느리게 돌아가고 싶다. 정원에 잎이 떨어지면 쓸쓸하다. 그런데 빨간 명감나무 열매가 내 마음의 온도를 올린다. 살아가면서 마음의 온도를 올리면 그것이 건강하게 사는 방법일 것인데 그것이 쉽지 않다. 

느린 걸음으로 먼 산도 보고 그 산 넘어 누가 살고 있을까. 한참 가을의 언덕에서 감국이 피었다. 새벽의 찬 이슬로 아슬아슬하게 피어있다. 흰 돛단배가 멀리 사라져가는 우리의 삶처럼 애잔하다. 

서리가 내리면 기와지붕은 온도가 급 하강한다. 이런 와중에 꽃을 피운다. 와송이다. 낙목한천에 꽃이 된 것은 아마 외로움이다. 꽃잎이 빽빽이 차 있는 모양을 보니 봄에 꽃을 피우는 형국이다. 봄에는 꽃이 많아서 쓸쓸한 이 계절에 꽃을 피운다. 꽃이 없으면 그리움으로 피우면 된다. 

늦가을에 산 속으로 들어가면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다. 자기의 영역을 가감 없이 내어주고 최소한의 필요함만은 유지한다. 와송도 마찬가지다. 약간의 모래만 있으면 서식한다. 하늘만 쳐다보고 사는 이들은 깨끗하다. 욕심 없이 하늘이 주는 대로 살아간다. 바닷가에 해국도 그렇다. 

바위틈에서 하늘이 주는 대로 산다. 필수 영양소를 챙기고 건강식품을 먹는다. 그렇다고 삶이 풍요로운가요. 

옛날의 기와지붕에서 있었는데 지금은 땅으로 내려왔다. 지상에서 가장 깨끗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다. 좀 더 정의롭게 눈물 나는 세상을 살아보기 위해서다. 계절의 꽃은 건성으로 보고가면 안 된다. 꽃이 스스로 오게끔 관심을 주어야 한다. 

사람 사는 방법과 같다. 주는 것이 있어야 온다. 

그것이 물질이 아니다. 마음으로 주면 된다. 겨울이 올 무렵 와송이 나에게 눈길을 준다. 그것도 꽃모양을 제대로 하고 말이다. 늦가을에 꽃으로 왔지만 봄꽃처럼 새롭다. 이른 봄에 송악의 새순처럼 그런 기다림으로 연속 이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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